[프라임피플] 부산이 만든 첼리스트 양욱진…'말 너머의 노래' 독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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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세계적인 음악 교육기관 줄리어드 출신 연주자들의 활동 반경은 대체로 서울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주요 공연장과 오케스트라, 교육기관이 수도권에 집중된 국내 클래식 음악계의 구조를 감안하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그런 현실에서 첼리스트 양욱진은 다른 길을 택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줄리어드 예비학교와 줄리어드 음대, 메네스 음대를 거쳐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카네기홀과 링컨센터, 케네디센터 등 세계 주요 공연장을 누볐고 미국과 유럽의 첼로 페스티벌에도 초청됐다.

그런 그가 음악가로서 가장 긴 시간을 쌓아온 곳은 서울도 뉴욕도 아닌 부산이다. 2007년 귀국해 부산시립교향악단 수석 첼리스트로 재직한 뒤 지역에 터를 잡았다. 부산국제음악제와 부산마루국제음악제, 각종 실내악 무대를 거치며 활동을 이어왔다. 

현재 인제대학교 음악학과 교수이자 '인터내셔널 플레이어스 오브 부산(International Players of Busan)'과 첼로 전문 연주·교육단체 '원더 첼로(Wonder Cello)' 음악감독으로 후학 양성과 연주를 병행하고 있다.

양 교수는 오는 9월5일 오후 5시 부산콘서트홀 챔버홀에서 독주회 'Songs Beyond Words: 말 너머의 노래'를 연다. 피아노는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박민선 교수가 맡는다. 

프로그램은 파블로 카잘스의 '새의 노래'를 시작으로 새뮤얼 바버 첼로 소나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첼로 소나타로 구성됐다. 공연 제목인 '말 너머의 노래'에는 세월을 거치며 달라진 그의 음악관이 녹아 있다.

젊은 시절에는 첼로로 무엇을 더 보여줄 수 있을지, 자신이 가진 기량을 어떻게 드러낼지를 고민했다면 이제 시선은 자신보다 작품 속 내면으로 향한다.

◆ 11년 만의 라흐마니노프 소나타…"악보는 그대로지만 연주자는 더 살아"

이번 무대의 출발점에는 2023년 선보인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나그네'가 자리한다. 당시 양 교수는 본래 성악과 피아노를 위해 쓰인 전곡에서 성악 파트를 첼로로 옮겨 연주했다. 무대에는 빌헬름 뮐러의 시를 제시하되 사람의 목소리 대신 첼로의 음색과 호흡으로 시 속 정서와 서사를 전달했다.

반면 바버와 라흐마니노프의 소나타에는 음표만 남는다. 그 안에서 어떤 이야기를 길어 올릴지는 오롯이 연주자의 몫이다.

양 교수는 "'겨울나그네'가 주어진 말을 첼로로 노래하는 작업이었다면, 이번에는 말 없는 음악에서 어떤 노래를 발견할지를 고민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말 너머의 노래'는 결국 말이 끝난 자리에서 음악이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는지를 찾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라흐마니노프 첼로 소나타는 11년 만의 재회다. 그는 "악보는 그대로지만, 연주자는 그만큼의 삶을 더 지나왔다"고 말했다.

지난 세월은 음악을 바라보는 시선도 바꿨다. '어떻게 연주할 것인가'에서 '음악이 나를 통해 어떻게 들릴 것인가'로 무게중심이 옮겨졌다. 그는 "같은 곡도 살아온 시간만큼 다른 음악이 된다"고 설명했다.

◆ "결국 이 도시가 나를 바꿨다"

양 교수가 처음 자리 잡을 당시 품었던 목표는 세 가지였다. 부산에서 꾸준히 연주하고, 다른 지역 사람들이 음악을 배우기 위해 찾게 하며, 지역에서 공부한 학생들이 전국 무대에서 성과를 내도록 하는 것이었다.

2012년 지역 일간지의 '부산 문화 새 지킴이' 인터뷰에서도 밝힌 구상이다. 당시에는 일종의 오기도 작동했다. 좋은 공연과 교육을 위해서는 서울로 가야 한다는 인식이 당연시되던 시절, 그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바람은 하나둘 현실이 됐다. 국제 연주자 모임 '인터내셔널 플레이어스 오브 부산'을 중심으로 꾸준히 무대를 이어가자 서울에서 공연을 보기 위해 내려오는 관객이 생겼다. 제자들은 전국 규모 콩쿠르에서 1위를 비롯한 성과를 냈고, 서울에서 학부를 마친 뒤 그에게 배우기 위해 인제대 대학원을 찾는 학생도 늘었다.

국내 클래식 음악의 흐름이 작게나마 역류하기 시작한 셈이다. 한때 그는 '부산만의 소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굳이 그것을 규정하지 않는다. 연주자와 청중, 학생이 만나고 시간이 쌓이는 과정 자체가 도시의 음악적 색깔을 만든다고 보기 때문이다.

부산을 바꿔보겠다는 젊은 첼리스트의 패기는 세월과 함께 무르익었다. 무대와 강단에서 켜켜이 쌓인 시간은 그의 시선을 넓혔고, 음악과 삶을 함께 바라보는 원숙함으로 깊어졌다.

"제가 부산을 바꾸려고 왔는데, 결국 부산이 저를 바꿨습니다."

그가 부산에 뿌리를 내린 사이 도시의 문화 지형도 달라졌다. 지난해 부산콘서트홀이 문을 연 데 이어 내년엔 북항오페라하우스 개관을 앞두고 있다. 세계적 공연 인프라를 갖춰가며 부산은 글로벌 K-컬처의 새로운 거점으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좋은 공연과 교육을 위해 서울로 향해야 한다는 통념에 맞서 "부산에서도 가능하다"고 했던 젊은 첼리스트의 당돌한 생각은 어느덧 현실과 맞닿고 있다.

이번 '말 너머의 노래'는 그래서 한 차례 독주회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줄리어드에서 출발해 부산에 터를 잡은 양욱진 교수. 이 도시와 함께 쌓아온 세월과 그 시간이 숙성시킨 음악철학을 가을의 문턱에서 들려주는, 부산을 향한 오랜 음악적 고백과도 같은 무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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