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동남아에서 벌어진 국제 범죄를 추적하던 국정원 블랙 요원 조 과장(조인성)은 휴민트 작전 중 희생된 정보원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그가 남긴 단서를 따라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한다. 그곳에서 그는 북한 식당 종업원 채선화(신세경)를 새로운 정보원으로 포섭하고, 마약 및 인신매매 네트워크에 연루된 북한 총영사 황치성(박해준)을 감시한다. 동시에 북한 보위성 조장 조건(박정민) 역시 사건의 배후를 추적하기 위해 이 도시에 모습을 드러내며, 남과 북 정보 요원 사이에 팽팽한 긴장이 형성된다.
류승완 감독의 ‘휴민트’는 타격감 있는 액션과 절제된 멜로 감성이 맞물리는 작품이다. 소중한 이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거는 인물들의 비장미는 홍콩 느와르의 대표작인 '영웅본색'과 '첩혈쌍웅'을 떠올리게 한다. 동시에 살이 터지고 뼈가 부러질 듯한 거친 육탄전은 액션의 현실성을 극대화한다. 음모가 교차하는 첩보전과 스타일리시한 총격 장면이 긴장을 끌어올리는 가운데 박정민과 신세경의 절제된 눈빛에서 전해지는 미묘한 감정선은 블라디보스토크의 차가운 공기와 맞물려 처연한 정서를 형성한다.

낯선 타국을 배경으로 남과 북이 대립과 공조를 반복한다는 점에서 ‘휴민트’는 '베를린'과 '모가디슈'을 잇는 류승완 감독의 ‘분단 3부작’을 완성하는 작품이다. ‘베를린’의 표종성(하정우)이 독일을 떠나 블라디보스토크까지 흘러들어왔다는 설정, 그리고 ‘모가디슈’에서 국정원 요원을 연기했던 조인성이 다시 비슷한 위치의 인물을 맡았다는 점은 세 작품을 하나의 세계관 안에 배치하려는 연출 의도를 짐작하게 한다. 무엇보다 이들 영화는 분단이라는 구조적 현실 속에서 타국으로 밀려난 인물들이 극한 상황 속에서 생존을 도모한다는 공통된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모가디슈’에서 한신성(김윤석)은 “살 사람은 살아야겠죠?”라고 묻고, 림용수(허준호)는 “이제부터 우리 투쟁 목표는 생존이다”라고 선언한다. 탈출을 도모하며 “오로지 이 전쟁통에서 살아나가기 위해 모인 것”이라던 그들의 다짐은 ‘베를린’의 표종성과도 겹친다. 표종성은 호텔을 급습한 무장 세력의 총탄이 빗발치는 순간, 임신한 아내(전지현)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셋은 살아남는다”고 말한다. 이처럼 류승완의 인물들은 이념이나 국가보다 앞선 ‘살아남음’의 본능을 선택한다.
‘휴민트’ 역시 러시아 범죄 집단과의 치열한 총격전 속에서 “살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외침과 “살고 싶다”는 마지막 고백이 교차한다. 감독이 세 작품에서 일관되게 강조해 온 화두는 결국 ‘생존’이다. 이는 분단의 경계 바깥으로 밀려난 이들의 디아스포라 운명을 상징한다. 베를린, 모가디슈, 블라디보스토크라는 타국의 공간은 더 이상 배경에 머물지 않고, 뿌리 뽑힌 존재들이 삶을 연명하는 생존의 현장으로 기능한다. 폭력적 현실을 벗어나 이국의 밑바닥에서 다시 삶을 이어가려는 채선화의 선택은 한반도의 비극적 자장 속에서도 끝내 삶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읽힌다. 역사적 상처를 딛고 서려는 몸부림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비극적이면서도 동시에 희망적이다.
Copyright ⓒ 마이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