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위크=권신구 기자 한미 관세 협상 타결에도 정치권 안팎에선 농축산물 시장 개방 관련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쌀과 소고기 시장을 추가 개방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했다는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과 미국의 반응이 엇갈리는 탓이다. 농산물 관련 협의가 비관세 영역에서의 의제로 남겨질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정치권 안팎에선 우려가 고조되는 분위기다.
송언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4일 국회에서 ‘한미 관세 협상 농업 분야 간담회’를 열고 “한미 관세 협상이 끝나고 난 이후에 농업계에서 여러 가지 문제 제기가 있어왔다”며 “그런데 농민들의 애로 사항에 대해 정부가 아직 납득할 만한 정확한 설명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31일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체결한 정부는 줄곧 농산물 시장 개방은 없다고 밝혔다. 미국 측의 요구가 있었지만, 우리 농산물 시장의 민감성 등을 고려해 미국을 적극 설득했다는 설명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이미 농업 분야의 99.7%가 개방돼 있음 등을 근거로 내세웠고 미국 측도 이를 공감했다고 전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전날(3일) KBS ‘일요진단’ 인터뷰에서 “쌀과 소고기 추가 개방은 없다”며 “그건 분명한 사실”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미국의 반응이 우리와는 다른 탓이다. 지난달 31일 관세 협상 타결 후 트럼프 대통령은 SNS에 “자동차와 트럭, 농산물 등을 포함한 미국 제품을 수용하기로 했다”는 글을 올렸다. 우리 정부가 농산물 시장을 개방하지 않겠다는 입장 이후에도 미국 백악관에서는 “한국이 자동차와 쌀 등 미국산 제품에 대해 역사적 개방을 할 것”이라는 입장이 나왔다. 농축산물 시장 개방을 둘러싸고 두 협상의 주체가 서로 다른 말을 내놓은 것이다.

◇ 농산물 ‘검역 완화’ 논의 가능성
우리 정부는 이러한 미국 측의 주장이 자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정치적 수사’라고 평가하고 있다. 사실상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이 사실이라는 데 힘을 실은 것이다. 전문가들 역시 이러한 정부의 입장을 신뢰하는 분위기다. 협상에서 나오지 않은 이야기로 외교적 파장을 일으킬 가능성은 전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미국 측이 연일 농수산물 시장 전면 개방을 언급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가 의문으로 남게 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을 지낸 김흥종 고려대 국제대학원 특임교수는 이날 YTN 라디오 ‘조태현의 생생경제’와 인터뷰에서 “추측하기에, 양국이 전부 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우리 입장에서는 ‘쌀 수입 추가 개방을 막았고 소고기 30개월을 막았다’ 그 말이 사실일 수가 있다”고 했다. 이어 “미국 입장에서는 농산물에 대해 추가 개방을 약속했다고 할 수 있는데 결국 거기서 나오는 ‘제3지대’가 있다”며 “농산물에 대한 비관세 장벽 부분”이라고 했다.
정부도 이를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분위기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1일 미국 워싱턴DC 현지 브리핑에서 “비관세 장벽과 관련해 앞으로 검역 절차 개선, 자동차 안전 기준 동등성 인정, 상한 폐지 등을 포함하여 기술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앞으로 협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쌀과 소고기 등 민감 품목에 대한 개방은 막았지만, 사과·복숭아 등 일부 품목에 대한 ‘검역 절차 개선’ 논의가 이번 정상회담 등을 계기로 이뤄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결과적으로 시장 개방의 효과를 낼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는 점이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지난 1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검역 단계를 완화해 준다고 해서 당장 들어오는 건 아니다”라면서도 “중장기적으로는 국내에 농축산물이 들어올 수 있다”고 평가했다. 쌀·소고기 등에 대한 시장 개방을 막았다는 정부의 발표에도 농민단체를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야당은 정부가 협의 내용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압박했다. 송 위원장은 이날 앞선 간담회에서 “비관세 장벽을 비롯해 이번 관세 협상으로 정리된 부분에 대해 디테일한 부분까지 정확하게 국민에게 설명하고 농민들의 피해가 없도록 해야 하는데, 정부가 명확한 설명이 되지 않는 게 문제”라고 했다.
다만 대통령실은 이와 관련한 갑론을박이 협상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입장이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추가 개방은 없다고 말씀드릴 수 있는 상황”이라며 “굳이 디테일하게 들어가지 않는 부분이 협상 결과에 더 부합하는 명실상부한 상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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