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윤석열 재구속 날 ‘계엄 피해자’라는 국민의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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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위크=손지연 기자  윤석열 전 대통령이 10일 재구속됐다. 지난 1월 15일 헌정사상 첫 현직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이 이뤄진 지 176일 만이다. 윤 전 대통령은 6개월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수사를 받는 상황이지만 국민의힘의 태도는 180도 변했다. 

국민의힘은 앞서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으로 향해 온몸으로 윤 전 대통령의 체포를 막아내는 모습을 연출했다. 반면 윤 전 대통령이 재구속된 이날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우리는 결국 계엄 피해자”라는 발언이 나왔다.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이 추진하는 내란 특별법은 정적 제거를 위한 정치보복 법안”이라며 “내란죄 유죄자가 소속됐던 정당은 국고보조금을 박탈한다는 내용은 결국 국민의힘을 내란죄 정당으로 몰아 해체하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그 누구도 계엄을 사전에 알지 못했고 계엄에 찬성한 바도 없어 오히려 결과적으로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지난 탄핵 정국에서 ‘탄핵 반대 당론’을 내세우며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일부는 윤 전 대통령 개인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당을 위해서’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또 일부는 ‘계엄령은 계몽령이다’, ‘중국 부정선거 의혹을 당에서 전면으로 띄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헌법재판소 앞에서는 의원들이 조를 짜 ‘탄핵 반대 릴레이 시위’를 펼치는 진풍경도 나왔다.

그 모든 과거가 국민들의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와 ‘계엄 피해자’임을 호소하는 것이다. 민주당에서 윤 전 대통령의 내란 혐의를 고리로 ‘내란 특검’을 비롯해 ‘내란특별법’ 발의하는 등 전방위 압박이 계속되자 “탈당한 윤석열은 자연인”이라는 절연을 넘어 계엄의 책임은 온전히 윤 전 대통령에게 있고 국민의힘은 책임 없이 피해만 입었다는 취지의 주장이다. 

앞서 국민의힘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혐의 수사를 위한 체포영장 집행을 맹렬히 비판했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이지만 ‘집권여당’ 국민의힘의 현직 대통령이라며 적극적으로 비호했다. 계엄의 위헌성은 차치하고 현직 대통령의 구속이 부당하다며 오히려 ‘내란’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공수처의 1차 체포영장 집행은 실패로 끝났지만 해당 시도는 ‘부정선거를 일거에 척결하려다 체포당하는 불쌍한 우리 대통령을 지키자’며 윤 전 대통령 강성 지지층이 결집하는 요인이 됐다. 국민의힘은 지난 22대 총선의 패배로 108석으로 쪼그라든 상황에서 ‘여당’의 지위마저 빼앗길 위기에 처하자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쉽사리 선택하지 못했다. 또 당장의 지지율 상승에 도움이 되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를 수용했다.

국민의힘의 ‘우리 당 대통령 지키기’는 말에서 그치지 않고 행동까지 이어졌다. 윤 전 대통령의 체포영장 기한 마지막 날인 지난 1월 6일에 국민의힘 의원 40여 명이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 결집했다.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 등 소위 ‘극우’ 세력의 윤 전 대통령 체포 반대 시위가 관저 앞에 큰 소리로 울려 퍼지는 가운데 한 명 한 명이 모두 헌법을 수호하는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이 윤 전 대통령의 체포영장 집행을 저지하기 위해 맨몸으로 관저 입구를 막아섰다. 

국민의힘은 탄핵 국면에서 어떻게든 ‘탄핵 대통령을 두 번 배출한 정당’이라는 꼬리표를 붙이지 않기 위해 ‘탄핵 기각’에 골몰했다. 자당의 논리에 심취해 진실로 ‘탄핵 인용’이 아니라 ‘기각‧각하’가 될 것이라고 믿어버리는 지경까지 갔다. 그간 보수의 정도를 걷는 국민의힘과는 결이 다르다며 선을 그어온 극우 세력의 도움으로 지지율을 결집시켜 민주당과 오차범위 내 접전에 이르는 혁혁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12월 3일 밤 ‘아닌 밤중 홍두깨’ 식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를 ‘몰랐다’고 항변한다. 국민의힘을 출입하는 기자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정말 ‘몰랐다’는 게 믿어진다. 실제로 계엄 당일 국회의사당에서 스쳤던 국민의힘 의원들의 낯빛은 흙빛이었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비판받는 부분은 ‘계엄을 사전에 왜 알지 못했냐’, ‘어떻게 계엄에 찬성할 수가 있냐’는 게 아니다. 비상계엄이 ‘위법적인 계엄’이라고 인지했고 “지금도 왜 계엄을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권성동)”면서도 강성 지지층의 눈치를 살피며 ‘계엄 옹호’에 편승한 것을 문제 삼는 것이다. 정당의 미래에 더 나은 선택지인 ‘빠른 계엄 손절’을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피해자’라고 호소하는 것이 때늦은 한탄으로 보이는 이유다. 

반년이 지난 지금 국민의힘의 성적표는 ‘대통령 파면’과 ‘대선 패배’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41%의 득표를 얻었다며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고 위안을 삼는 모습도 보이지만, 대선 이후 지지율은 계엄 직후보다 더 하락세를 보이며 19%로 내려앉았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7~9일 무선 100% 전화면접 방식으로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에 따른 국민의힘 정당 지지도.)

국민의힘이 ‘통렬한 반성과 쇄신이 필요하다’는 혁신의 목소리를 계속 묵살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우여곡절 끝에 혁신위가 출범했지만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라는 자성이 아니라 윤 전 대통령 탓, 민주당 탓, 특정 계파 탓을 하다가 끝나게 된다면 정당 지지율은 더욱 낮아질 것이 자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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