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윤진웅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취임 4주년을 맞아 경영 성과의 지속성을 시험받는다. 반도체 불황에도 투자를 유지하고 로봇·공조·전장으로 사업 기반을 넓힌 지난 4년을 지나 이제는 기술 경쟁력 회복과 인수 자산의 사업화를 통해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구축해야 할 시점에 놓였다.
◇적자에도 지킨 투자…AI 메모리에서 성적표 받는다
26일 재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27일 회장 취임 4주년을 맞는다. 삼성전자 이사회는 2022년 10월 27일 글로벌 경영환경 악화에 대응할 책임경영과 신속한 의사결정이 필요하다며 당시 이 부회장의 회장 승진을 의결했다.
별도 취임식 없이 시작한 이재용 체제는 반도체 불황과 AI 시장 급성장이라는 상반된 변화에 직면했다. 주력 사업의 수익성이 흔들리는 가운데 새로운 수요를 선점하기 위한 기술 경쟁까지 치러야 했다.
취임 후 첫 연간 실적이었던 2023년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6조5700억원에 그쳤다.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은 14조880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메모리 수요 감소와 고객사 재고 조정, 가격 하락이 한꺼번에 주력 사업을 압박했다.
삼성전자는 이 와중에도 시설투자를 전년 수준인 53조1000억원으로 유지했다. DS부문에만 48조4000억원을 투입하며 평택 생산시설과 첨단공정 생산능력 확대를 이어갔다. 당장의 적자 속에서도 다음 수요에 대응할 기반을 지키겠다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대규모 투자가 모든 시장에서 우위를 보장하지는 않았다. AI 시장의 핵심 제품으로 떠오른 고대역폭메모리(HBM)는 삼성의 기술 경쟁력을 다시 묻는 계기가 됐다. 범용 메모리에서 쌓은 생산 역량을 고객이 요구하는 성능과 공급 능력으로 전환하는 일이 시급해졌다.
2024년 5월 전영현 부회장이 DS부문장을 맡은 것도 이러한 재정비의 흐름에 놓여 있다. 설비 확충과 함께 개발·양산·고객 대응 전반의 실행력을 높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올해는 반등의 결과가 구체화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월 최선단 1c D램과 파운드리 4나노 공정을 적용한 HBM4의 양산 출하를 발표했다. 당시 올해 HBM 매출이 지난해보다 3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며 생산능력 확대 계획도 제시했다.
올해 3분기 잠정실적은 매출 195조원, 영업이익 107조4000억원이다. 전년동기 대비 각각 126.59%, 782.50% 증가했다.
다만 실적 반등에는 AI 투자 확대와 메모리 업황 개선도 작용한다. 이 회장 체제의 투자 성과를 가늠할 기준은 호황기에 얼마나 벌었는지에만 있지 않다. HBM 경쟁력을 장기적인 고객 신뢰로 연결하고, 업황이 둔화한 뒤에도 수익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로봇·냉각·전장 확보…M&A 이후 통합이 승부처
반도체 밖에서는 기존 사업과 연결할 수 있는 기술과 고객 기반을 확보하는 데 무게를 뒀다. 로봇과 공조, 전장 분야의 인수합병(M&A)이 대표적이다.
삼성전자는 2023년 레인보우로보틱스에 투자한 뒤 2024년 말 콜옵션을 행사해 지분을 35%로 확대하는 결정을 발표했다. 로봇 기술을 외부 협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내부 사업과 결합할 기반을 마련한 셈이다.
지난해 5월에는 독일 플랙트그룹 지분 100%를 15억유로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고, 같은 해 11월 절차를 마무리했다. 데이터센터와 병원, 공항 등에 공조 설비를 공급하는 기업을 확보하면서 AI 반도체에서 냉각 인프라로 사업 접점을 넓혔다.
전장 분야에서는 하만을 통해 지난해 12월 독일 ZF의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사업을 15억유로에 인수하는 계약을 맺었다.
향후 과제는 인수한 자산을 삼성의 사업 역량과 결합하는 일이다. 로봇은 제조현장에서 생산성과 경제성을 입증해야 한다. 공조는 삼성의 판매망과 플랙트의 기술·고객 기반을 연결해 수주를 확대해야 한다. 전장 역시 확보한 기술을 고객사 수요와 맞물리는 사업으로 키워야 한다.
이 회장이 이르면 이번 주 서울 우면동 RX사업추진실을 방문해 로봇 개발 현황을 점검할 것이라는 전망도 이와 무관치 않다. 사업 확장의 무게중심이 기술 확보에서 제품과 서비스의 완성도로 옮겨가는 흐름이다.
◇사법 불확실성 해소…현장 경영의 결과에 쏠리는 시선
이 회장에게는 장기간 이어진 사법 부담을 덜었다는 점도 전환점이다. 지난해 7월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 관련 부당합병·회계부정 사건에서 무죄를 확정했다. 2020년 9월 기소 이후 4년 10개월 만이다.
경영 판단과 대외 활동에 집중할 여건이 마련된 만큼, 앞으로는 현장 행보가 구체적인 사업 성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에 관심이 모인다.
이 회장은 지난 21일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의 알 다프라 가스화력발전소 건설현장을 방문했다. 공정과 안전관리 상황을 확인하고 삼성물산·삼성E&A 경영진과 중동 사업 전략, 신규 사업 기회를 논의했다.
해외 현장과 미래사업을 잇는 경영은 계열사 간 협력을 성과로 만드는 과제와도 맞닿아 있다. 각사가 보유한 기술과 고객, 인재를 연결해 개별 사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실행력이 요구된다.

◇다음 4년의 기준은 ‘호황 이후에도 버는 삼성’
취임 이후 4년이 반등과 확장을 위한 기반을 다지는 과정이었다면, 앞으로는 그 기반이 실제 경쟁력으로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시간이 될 전망이다.
메모리는 HBM4 출하를 안정적인 공급과 지속적인 수익으로 연결해야 한다. 파운드리는 첨단공정의 기술력과 생산 안정성을 고객 수주로 입증해야 한다. 로봇·공조·전장은 반도체 경기 변화에 따른 실적 변동을 줄이는 수익원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투자 규모만큼 사업의 우선순위와 성과 관리가 중요하다. 성장 가능성이 있는 분야에 자원을 배분하고, 사업부와 계열사의 협력을 이끌며, 성과에 따른 보상과 책임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
재계 관계자는 "이 회장 취임 4주년의 과제는 축적한 기술과 넓어진 사업 영역을 지속 가능한 이익으로 바꾸는 데 있다"며 "호황기의 반등을 넘어 다음 불황에도 경쟁력을 지킬 수 있는지가 향후 경영을 평가할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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