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리다임 중복상장 해당”…금감원, SK 美 상장 구상 제동 건 이유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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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윤진웅 기자]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SK하이닉스의 미국 자회사 솔리다임의 기업공개(IPO)를 중복상장으로 판단하면서 SK그룹의 나스닥 입성 구상에 강력한 제동이 걸렸다. 금융당국이 해외 증시 상장 건에 대해 '중복상장' 판단을 내린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금융당국이 솔리다임 상장을 문제 삼은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상장 장소가 미국이어도 SK하이닉스 주주의 지분가치가 희석되는 경제적 효과는 국내 중복상장과 다르지 않다는 점 △SK㈜에서 SK스퀘어와 SK하이닉스로 이어지는 상장 고리가 한 단계 더 길어진다는 점 △해외 상장을 통해 국내 거래소의 심사를 비켜갈 수 있다는 점이다.

현행 제도로 솔리다임의 미국 상장을 국내 금융당국이 직접 불허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금융위원회가 솔리다임 IPO를 국내 증권신고서 제출 대상으로 판단하면 금감원이 상장 구조와 자금 사용처, 기존 주주의 경제적 이익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집중적으로 심사할 수 있다.

SK하이닉스도 상장을 그대로 추진하려면 주주 영향평가와 독립적 특별위원회 심의, 이사회 결의, 공시 등 강화된 절차를 밟아야 한다. 금융당국이 공개적으로 중복상장 판단을 내린 만큼 실질적인 주주보호책 없이 미국행을 밀어붙이기는 어려워졌다는 평가다.

◇나스닥 가도 ‘쪼개기 상장’ 본질은 동일

2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 원장은 전날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감원 국정감사에서 “솔리다임 상장이 중복상장에 저촉된다는 판단은 금융위도, 금감원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솔리다임 이슈를 계속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세밀하게 검토해 적절한 조치가 가능한 부분은 최대한 하겠다”고 말했다. 필요하면 SK하이닉스에도 주주보호와 관련한 우려를 전달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금융당국이 솔리다임 IPO를 중복상장으로 본 첫 번째 이유는 상장 장소보다 거래의 경제적 실질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솔리다임은 SK하이닉스가 2020년 인텔의 낸드플래시와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eSSD) 사업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출범한 미국 법인이다. 현재 솔리다임의 실적과 기업가치는 SK하이닉스의 연결 실적과 주가에 반영된다.

솔리다임이 신주를 발행해 외부 투자자를 유치하면 SK하이닉스의 보유 지분율은 낮아진다. 솔리다임의 이익과 미래 성장가치도 신규 주주와 나눠야 한다. 미국 나스닥에 상장하더라도 기존 모회사 주주의 경제적 몫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은 국내 자회사 상장과 동일하다.

솔리다임의 가치가 미국 시장에서 별도로 평가되면 SK하이닉스 주가에 반영됐던 낸드와 eSSD 성장 기대가 분산될 가능성도 있다. 모회사와 핵심 자회사가 각각 상장되면서 동일한 사업가치가 중복 계산된다는 이유로 모회사 주가가 할인되는 ‘더블 카운팅’ 우려다.

솔리다임은 인수 이후 낸드 업황 악화로 대규모 적자를 냈지만 최근 AI 데이터센터용 eSSD 수요가 급증하면서 SK하이닉스의 핵심 성장축으로 부상했다. 인수 초기의 손실은 SK하이닉스 주주가 부담했는데, 사업이 정상화된 뒤 성장가치를 외부 투자자와 나누는 구조가 공정하냐는 논란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솔리다임을 포함한 SK하이닉스는 올해 2분기 글로벌 기업용 SSD 시장에서 매출 기준 21.1%의 점유율로 삼성전자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금융당국은 이처럼 모회사 기업가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 핵심 자회사의 분리 상장을 단순한 해외 자금조달로만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의 금융감독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뉴시스

◇SK㈜→SK스퀘어→SK하이닉스…상장 고리 한 단계 더

두 번째 이유는 SK그룹의 다층 상장구조다.

SK그룹의 반도체 지배구조는 ‘SK㈜→SK스퀘어→SK하이닉스→솔리다임’으로 이어진다. SK㈜와 SK스퀘어, SK하이닉스는 모두 국내 증시에 상장돼 있다. 여기에 솔리다임까지 나스닥에 입성하면 상장회사 아래 상장회사가 연속해서 배치되는 구조가 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특수관계인이 SK㈜를 지배하고, SK㈜는 SK스퀘어 지분 약 30%를 보유하고 있다. SK스퀘어는 SK하이닉스 지분 약 20%를 가진 최대주주이며, SK하이닉스는 솔리다임을 지배한다.

각 회사의 주주 입장에서는 아래 단계 기업이 상장될 때마다 기업가치가 분리돼 평가된다. 솔리다임 상장으로 SK하이닉스에 할인이 발생하면 그 영향이 SK스퀘어 기업가치에도 이어지고, 다시 SK㈜의 지주회사 할인과 맞물릴 수 있다.

정치권과 일부 주주단체가 솔리다임 IPO를 ‘5단 중복상장’이라고 비판하는 것도 최 회장부터 SK㈜, SK스퀘어, SK하이닉스, 솔리다임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겨냥한 표현이다. 다만 지배주주까지 포함해 ‘5단’으로 부르는 것은 법률상 분류가 아니라 정치권과 시장 일각의 주장이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전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솔리다임이 상장하면 SK하이닉스 주주의 몫은 줄어드는 반면 솔리다임에 투자한 SK 계열사는 상장 이익을 가져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솔리다임 상장을 ‘5단 중복상장’으로 규정하고 이재명 대통령에게 모든 공적 수단을 동원해 막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만 솔리다임의 신주 발행 규모와 구주매출 여부, 상장 이후 SK하이닉스의 지분율은 확정되지 않았다. SK 계열사가 어떤 방식으로 투자금을 회수할지도 정해지지 않은 만큼 상장 이익이 특정 계열사나 지배주주에게 귀속된다고 단정할 단계는 아니다.

금융당국도 상장 자체만으로 주주 손실이 확정된다고 보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여러 상장사가 수직적으로 연결된 상황에서는 자회사 상장의 이익과 부담이 각 단계의 일반주주에게 공정하게 배분되는지 더 엄격하게 검증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다.

◇해외 IPO로 국내 심사 우회…규제 사각지대 우려

세 번째 이유는 해외 상장을 통한 국내 규제 우회 가능성이다.

금융위와 한국거래소가 지난 8월부터 시행한 중복상장 제도는 국내 상장 모회사의 자회사와 손자회사가 해외에서 상장하는 경우에도 모회사 이사회의 주주보호 책임을 적용한다.

모회사 이사회는 자회사 상장이 기존 주주에게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고 구체적인 보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주주와 소통하거나 동의 여부를 확인하고 이사회 찬반 결의와 단계별 공시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은 독립이사가 중심이 된 특별위원회의 사전 심의를 받아야 한다.

다만 국내 상장과 해외 상장 사이에는 규제의 실효성에서 차이가 있다.

국내에서 자회사를 상장하면 한국거래소가 상장예비심사를 통해 주주보호 방안이 충분한지 판단할 수 있다. 보호책이 미흡하면 보완을 요구하거나 상장 승인을 내주지 않을 수도 있다.

반면 솔리다임의 나스닥 상장은 미국 SEC와 현지 거래소가 심사한다. 한국거래소는 솔리다임의 상장 여부를 결정할 권한이 없다. SK하이닉스 이사회가 주주 영향평가와 공시 등 절차를 거치더라도 국내 거래소가 솔리다임 상장 자체를 막기는 어려운 구조다. 정치권과 시장 일각에서 국내 중복상장 규제가 강화되자 미국 증시를 선택해 거래소 심사를 피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다만 SK하이닉스가 규제 회피를 목적으로 미국 상장을 추진한다고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없다. 회사는 솔리다임의 경쟁력 강화와 투자재원 확보를 위해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으로서는 해외 상장이라는 이유로 국내 주주보호 규제가 작동하지 않으면 중복상장 억제 정책 자체에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다. 솔리다임의 미국행에 공개적으로 우려를 나타낸 것도 향후 다른 기업들이 해외 IPO를 규제 우회 통로로 활용하는 선례를 막기 위한 성격으로 해석된다.

◇국내 증권신고 대상 여부가 분수령…금감원 심사 가능

솔리다임 IPO의 첫 번째 관문은 국내 증권신고서 제출 여부다.

솔리다임이 미국에서만 신주를 공모하고 국내에서 투자 권유나 청약을 진행하지 않으면 국내 자본시장법상 증권신고서 제출 대상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금감원이 솔리다임의 공모 구조를 직접 심사할 권한은 제한된다.

반대로 국내 투자자에게 청약 기회를 제공하거나 국내에서 증권 모집·매출에 해당하는 행위가 이뤄진다고 판단되면 증권신고서 제출 의무가 적용될 수 있다.

이 원장은 국정감사에서 “국내 증권신고 대상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금융위의 유권해석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금융위가 제출 대상이라고 판단하면 금감원은 솔리다임의 상장 구조와 공모 규모, 신주·구주 비중, 자금 사용처, SK하이닉스의 지분율 변화 등을 신고서 심사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주주가치 훼손 가능성이나 정보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하면 신고서 정정을 요구할 수도 있다.

정정 요구가 반복되면 미국 상장 일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금감원이 해외 IPO를 직접 불허하지 않더라도 신고서 심사와 공시 보완을 통해 사실상 상장 구조와 일정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의미다.

국내 증권신고 대상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와도 금융당국의 감독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금감원은 국내 상장사인 SK하이닉스와 SK스퀘어를 상대로 이사회 절차와 공시, 일반주주 보호 의무를 제대로 이행했는지 점검할 수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SK

◇SK, 주주보호책 마련하거나 상장 구조 바꿔야

SK하이닉스는 솔리다임 상장과 관련해 확정된 사항이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회사는 지난 8월 해명 공시에서 “솔리다임은 경쟁력 강화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나 현재까지 확정된 사항은 없다”고 밝혔다. 최근에도 장기적인 기업가치와 주주가치를 모든 판단의 기준으로 삼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상장을 계속 추진한다면 기존 주주가 납득할 수 있는 보호 방안을 먼저 제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SK하이닉스 이사회는 솔리다임 상장이 모회사 주가와 지분가치, 배당수익에 미칠 영향을 분석해야 한다. 신주 발행으로 솔리다임에 유입되는 자금이 지분 희석에 따른 손실보다 큰 사업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도 설명해야 한다.

모회사 주주에게 솔리다임 공모주를 우선 또는 할인 배정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상장 과정에서 SK하이닉스가 구주를 매각해 현금을 확보한다면 이를 특별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소각 등 주주환원에 활용하는 선택지도 있다.

SK하이닉스의 솔리다임 지분율이 일정 수준 아래로 낮아지지 않도록 신주 발행 규모를 제한하거나 보호예수를 설정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상장 이후 솔리다임과 SK하이닉스 사이의 기술·고객·내부거래 조건을 투명하게 공개해 이해충돌 우려를 줄이는 장치도 필요하다.

상장 일정을 늦추거나 구조를 변경하는 방안도 배제하기 어렵다. 프리IPO와 전략적 투자자 유치를 통해 필요한 자금만 먼저 조달하거나, SK하이닉스가 자체 자금과 차입을 활용해 솔리다임 투자를 이어갈 수 있다. 다만 프리IPO 역시 신주를 발행하면 지분 희석이 발생하므로 주주가치 논란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솔리다임은 AI 데이터센터용 eSSD 수요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생산능력과 연구개발 투자를 늘려야 한다. SK하이닉스도 HBM과 용인·청주 생산시설, 미국 인디애나 첨단 패키징 공장 등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고 있어 외부 자본 활용의 필요성은 작지 않다.

업계는 솔리다임 상장의 향방이 자금조달 필요성보다 그 이익을 기존 SK하이닉스 주주와 어떻게 나누느냐에 달렸다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솔리다임 IPO를 중복상장으로 규정한 이상 단순히 미국에서 상장한다는 이유로 국내 주주보호 절차를 비켜가기 어려워졌다"며 "금융위의 증권신고서 유권해석과 SK하이닉스가 내놓을 주주보호 방안에 따라 솔리다임의 나스닥행 일정과 공모 구조가 전면적으로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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