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잣대로 대통령 재단하는 여권

시사위크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기자회견 '국민의 뜻, 국민의 삶 더 살피겠습니다'를 마친 뒤 인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기자회견 '국민의 뜻, 국민의 삶 더 살피겠습니다'를 마친 뒤 인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 뉴시스

시사위크=김두완 기자  이재명 대통령은 성난 민심 앞에서 남을 탓하지 않았다. 지난 18일 기자회견에서 “언제나 국민은 옳다”며 “모두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다음 날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도 정부에 부담을 줄 수 없다며 물러났다. 대통령과 후보자가 잇달아 책임을 자신의 몫으로 돌렸지만 여권은 수습보다 내부 공방에 몰두했다. ‘개혁’을 앞세워 대통령의 인사 판단을 재단하고, 서로를 향해 개혁과 반개혁의 딱지를 붙였다. 대통령이 어렵게 꺼낸 쇄신과 민생 메시지는 여권 내부의 충돌에 가려지며 다시 국정 부담을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 후보자 검증 넘어 대통령 ‘결단’ 요구

이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최근의 국정 혼선을 다른 사람의 책임으로 돌리지 않았다. 그는 “선명한 주장이나 선언이 아니라 실행을 통한 결과로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민생·개혁·통합 과정에서 발생하는 아픔과 갈등에 충분히 공감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인사 문제를 포함한 국정 운영도 다시 점검하겠다고 약속했다.

김승원 후보자는 이튿날(19일) 자진 사퇴했다. 그는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보며 결심을 굳혔다”며 “민생을 살피고 개혁을 완수해야 할 정부에 작은 부담도 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민심 수습에 나선 직후 후보자가 스스로 물러나면서 인사 논란을 정리할 계기가 마련된 셈이다.

그러나 여권의 관심은 쇄신보다 책임 공방으로 빠르게 옮겨갔다. 김 후보자의 낙마와 지지율 하락을 놓고 서로를 겨냥하는 발언이 이어졌고, 김지용 초대 중대범죄수사청장 후보자 지명을 둘러싼 충돌도 계속됐다. 대통령이 자신의 부족함을 말한 뒤에도 여권 내부에서는 상대의 잘못을 따지는 목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김지용 후보자를 둘러싼 문제 제기는 적격성 검증보다 대통령의 개혁 의지를 의심하는 단계로 번졌다. 추미애 경기지사는 김 후보자의 검찰 재직 이력을 들어 ‘친윤 검사’ 의혹을 제기했다. 대통령을 향해서는 “내란 세력을 징벌해야 하는데 왜 이들 세력에 업혀서 전전긍긍하는 것인가”라고 말했다. 후보자 한 사람의 자질을 문제 삼은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인사 판단을 개혁과 반개혁의 문제로 규정한 것이다.

추미애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지난 2월 2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과 대화하고 있다. 추 경기지사와 김 의원은 김지용 초대 중대범죄수사청장 후보자의 과거 이력을 문제 삼으며 지명 철회를 요구했다. /뉴시스
추미애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지난 2월 2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과 대화하고 있다. 추 경기지사와 김 의원은 김지용 초대 중대범죄수사청장 후보자의 과거 이력을 문제 삼으며 지명 철회를 요구했다. /뉴시스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통령에게 결론까지 요구했다. 그는 지난 17일 김 후보자 지명 철회를 촉구하면서 “차라리 초대 청장 자리를 비워두고 출범하는 한이 있더라도 제대로 된 인적 쇄신이 최우선”이라며 대통령의 결단을 요청했다. 중수청 출범에 차질이 생기더라도 대통령이 자신의 선택을 거둬야 한다는 주장이다.

박은정·정춘생 조국혁신당 의원과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도 김 후보자의 과거 행적을 들어 부적격 가능성을 제기했다. 지난 21일에는 이성윤 민주당 최고위원이 중수청 출범 준비 인력과 청와대 담당 비서관에 이어 청장 후보자까지 검사 출신이라는 점을 문제 삼았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도 김 후보자가 과거 수사·기소 분리에 반대했다며 추가 검증 필요성을 거론했다.

후보자의 과거 판단과 정치적 중립성을 검증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권이라고 대통령이 지명한 후보자를 무조건 감쌀 이유도 없다. 다만 의혹과 반론이 맞서고 추가 검증까지 진행되는 상황에서 자신의 판단을 ‘개혁’의 결론으로 못 박고 대통령에게 지명 철회를 요구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의견을 제시하는 수준을 넘어 자신들의 선택을 대통령의 선택보다 앞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권 내부에서도 공개 압박이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왔다. 전용기 민주당 최고위원은 인사에 대한 의견 개진과 공개적으로 전선을 확대하는 것은 다르다며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송영길 의원도 추 지사의 반발이 과도하다며 대통령이 검증을 거쳐 임명하면 강경파도 승복해야 한다고 밝혔다.

여권의 역할은 대통령을 향한 모든 비판을 막는 것이 아니다. 문제가 있다면 이를 지적하고 바로잡는 것이다. 다만 집권 세력의 문제 제기는 국정 수습과 대안으로 이어져야 한다. 대통령에게 공개적으로 결단을 요구하고 그의 선택을 개혁과 반개혁으로 가르는 데 그칠 경우 정치적 부담은 대통령에게 남고 여권에는 내부 충돌만 쌓일 뿐이다.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김의겸 여당 간사 모니터에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름이 검색되어 있는 모습이다. / 뉴시스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김의겸 여당 간사 모니터에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름이 검색되어 있는 모습이다. / 뉴시스

◇ 중수청 출범 앞두고도 여전히 개혁 공방

이재명 정부에서 검찰개혁은 구호에 머물지 않았다. 공소청법과 중수청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검찰청은 다음 달 2일 폐지된다. 같은 날 수사와 기소를 각각 담당하는 중수청과 공소청이 출범한다. 중수청은 본청과 6개 지방청, 총정원 2,874명 규모로 조직을 갖추고 있다. 역대 민주정부가 완수하지 못했던 수사·기소 분리가 시행을 앞둔 것이다.

개혁이 중단된 것이 아닌데도 여권 일각은 초대 기관장의 출신과 이력을 근거로 정부 전체의 개혁 의지를 의심한다. 개혁의 성패를 제도의 변화가 아니라 자신들이 승인한 인사의 등용 여부로 판단하는 모습이다. 대통령이 다른 결론을 내리면 그 선택은 곧바로 개혁 후퇴의 징표가 된다.

이런 충돌은 대통령의 지지 기반이 약해진 시기에 이어졌다. 리얼미터가 21일 발표한 조사에서 이 대통령의 국정수행 긍정평가는 전주보다 1.0%포인트 오른 34.8%였다. 9주 연속 하락한 뒤 10주 만에 반등했지만 10주 전의 48.9%와 비교하면 14.1%포인트 낮다.

지지율 하락을 여권 내부 갈등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인사 논란과 부동산·민생 문제, 야당의 공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번 조사도 김승원 후보자의 사퇴 전인 지난 18일 종료돼 사퇴에 따른 여론 변화는 반영되지 않았다. 다만 대통령의 지지 기반이 약해진 기간에 여권 인사들이 국정 동력을 뒷받침하기보다 공개 충돌을 거듭하며 갈등을 키운 점은 따로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수행 긍정평가는 9주 연속 하락한 뒤 10주 만에 반등해 34.8%를 기록했다. 부정평가는 63.4%로 집계됐다. /그래픽=이주희 기자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수행 긍정평가는 9주 연속 하락한 뒤 10주 만에 반등해 34.8%를 기록했다. 부정평가는 63.4%로 집계됐다. /그래픽=이주희 기자

논쟁은 지지층을 향한 자격 심사로도 번졌다. 조국 조국혁신당 혁신정책연구원장은 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을 “‘문조털래유’를 적으로 쳐내고 ‘뉴이재명’을 중심으로 한 ‘구조적 다수’ 구성 전략의 결과”라고 규정했다. 이어 “‘뉴이재명’만으로 국정 성공과 총선 승리, 정권 재창출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자가 바로 간신”이라며 “민주정부 이어달리기를 부정하고 진영 내부 갈라치기를 일삼는 자가 역신”이라고 주장했다.

유시민 작가는 일부 이 대통령 지지자들을 ‘신발 속 돌멩이’에 비유하며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고립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검찰개혁은 대통령이 원하지 않지만 국민이 신겨줘 신고 가는 ‘불편한 신발’에 빗댔다. 대통령은 개혁의 목표와 가치를 포기한 적이 없다고 밝혔지만 여권 주변 인사들은 대통령의 설명보다 자신들의 해석을 앞세웠다. 대통령의 속내는 물론 지지율 하락의 원인까지 대신 규정한 것이다.

대통령은 민심 이반과 국정 혼선을 자신의 부족함으로 돌렸고, 김승원 후보자도 정부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며 물러났다. 그러나 여권에서는 누구의 개혁이 옳은지, 어떤 지지층이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는지를 놓고 다시 충돌했다. 대통령이 책임을 인정한 직후 또 다른 내부 전선이 형성되면서 기자회견에서 제시된 쇄신과 민생 메시지가 충분히 부각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여권 인사들은 대통령에게 직언하고 후보자의 지명 철회를 요구할 수 있다. 다만 자신의 판단만을 개혁의 기준으로 삼아 대통령의 다른 선택을 반개혁으로 규정할 경우 문제 제기는 사실상 인사권에 대한 압박으로 이어진다. 검찰청 폐지와 수사·기소 분리가 법제화된 상황에서 여권 일각의 요구가 제도 완수를 위한 것인지, 자신들의 기준을 관철하기 위한 것인지는 이번 논란이 남긴 또 다른 쟁점이다.

이번 조사는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4일부터 18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2,507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무선전화(100%) 자동응답 방식과 무작위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0%포인트다. 응답률은 4.1%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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