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욱의 포인트] 강제집행 부담에 ‘기여도’ 논쟁까지…최태원, 고심 끝 재상고 택한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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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6월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재산 분할 파기환송심 2차 변론기일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6월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재산 분할 파기환송심 2차 변론기일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포인트경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9440억원 규모의 재산분할 사건을 다시 대법원으로 가져간 배경에는 단기간 내 거액의 현금을 마련해야 하는 부담과 함께, 강제집행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이 고육지책으로 재상고를 결정하며 재산분할 사건의 법리 다툼이 재점화한 가운데, SK그룹 기업가치를 크게 끌어올린 하이닉스 인수 당시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오히려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는 정황이 알려지면서 재산 형성 과정에서 양측의 ‘실질적 기여도’를 어떻게 평가할지도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16일 법조계와 재계 등에 따르면 최 회장 측은 파기환송심 이후 재상고 없이 9440억원을 지급하고 소송을 끝내는 방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선고 이후 재상고 여부를 결정하기까지 약 3주 만에 1조원 가까운 현금을 마련하는 데 현실적인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 핵심 자산 상당 부분이 주식인 만큼 현금 마련을 위해서는 SK㈜ 지분 매각이나 금융권 차입 등이 불가피하다. 이 경우 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SK㈜ 지분을 단기간에 대규모 처분할 경우 주가와 일반 주주, 경영 안정성에 미칠 영향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 측 법률대리인단이 지난 14일 재상고 사실을 밝히며 “여러 사정을 고려해 고심 끝에 상고장을 제출했다”며 “주주들과 그룹 경영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겠다”고 강조한 것도 이 같은 고민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최 회장 측은 노 관장 측에 현금과 주식을 혼합해 지급하고, 주가가 떨어질 경우 차액을 보전하는 방안까지 제안했으나 노 관장 측은 전액 현금 지급 입장을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이 지급 방식에서 접점을 찾지 못한 점도 재상고 결정에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 거론된다.

무엇보다 이번 재상고 과정에서 영향을 미친 부분은 강제집행 가능성에 대한 우려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 측이 재상고하지 않았다면 파기환송심 판결이 확정되고 9440억원 지급 의무도 현실화한다. 판결을 받아들이더라도 실제 현금을 마련하려면 주식 매각이나 대출 등에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지만, 지급 시기와 방식에 대한 별도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지급이 지연될 경우 지연손해금과 함께 강제집행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한다.

특히 충분한 현금 조달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강제집행 절차가 진행될 경우 최 회장 보유 자산의 처분 시점과 방식을 스스로 정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핵심 자산인 SK㈜ 주식이 압류나 집행 대상이 될 경우 개인 간 재산분할 문제가 상장회사 주가와 그룹 지배구조로 확산될 여지도 있다.

재계에서는 최 회장 측이 판결을 수용하려는 의사가 있더라도 1조원에 가까운 현금을 마련할 시간이 필요한 상황에서, 지급 시기 협의가 이뤄지지 않고 강제집행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했다면 최 회장 측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선택지는 더 크게 줄어들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와 더불어 최 회장이 대법원행을 결행한 배경에는 파기환송심 판결 자체를 재검토 받기 위한 목적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파기환송심이 앞선 대법원의 환송 취지를 살려 재산분할 비율과 기여도 산정에 충실히 반영했는지를 다시 판단받을 필요가 있다는 점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이 SK그룹의 하이닉스 인수 과정이다.

SK는 2012년 하이닉스를 인수했다. 당시 반도체 업황 불확실성과 대규모 투자 부담으로 그룹 안팎에서도 우려가 적지 않았지만 최 회장은 인수를 추진했다. 이후 SK하이닉스는 그룹의 핵심 성장축으로 자리 잡으며 SK 기업가치 상승을 이끈 대표적인 경영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 재계에서는 당시 노 관장이 하이닉스 인수에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다는 정황도 전해지고 있다. 재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당시 그룹에서 공식 경영 직책을 맡고 있지 않았던 노 관장이 주요 경영진에게 하이닉스 인수를 만류하는 취지의 의견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물론 특정 사업에 대한 투자에 찬성하거나 반대했다는 사실만으로 혼인 기간 전체의 재산 형성 기여도를 판단할 수는 없다. 배우자의 기여도는 혼인 기간과 생활 공동체 유지, 재산 관리 등 여러 요소를 종합해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하이닉스 인수가 현재 SK 기업가치에 미친 영향이 큰 만큼, 상당한 위험을 감수하며 경영 판단을 내린 주체와 해당 결정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거나 오히려 반대했던 배우자의 기업가치 상승에 대한 기여를 어느 수준까지 동일하게 평가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논쟁이 될 수 있다.

최 회장이 개인적으로 보유한 SK실트론 지분 29.4%도 비슷한 맥락에서 거론된다. 최 회장 측은 해당 지분이 두 사람의 관계가 사실상 파탄에 이른 이후 형성됐고, 취득과 가치 상승 과정에서 노 관장의 실질적인 기여가 없었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번 재산분할 사건의 재상고를 바라보는 포인트는 두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9440억원을 단기간에 현금으로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서 강제집행까지 고려해야 했던 현실적인 문제다. 나머지 하나는 SK의 기업가치가 크게 증가한 과정에서 양측의 실질적인 기여를 어떤 기준으로 평가해야 하느냐는 법리적 문제다.

특히 하이닉스 인수 당시 의사결정 과정과 SK실트론 지분 형성 시점 등이 재조명되면서, 향후 대법원 판단의 초점이 단순히 양측이 ‘얼마를 나눌 것인가’를 넘어 ‘그 재산을 만드는 데 누가, 어느 정도 기여했는가’라는 문제로 다시 옮겨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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