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지고, 다가가고, 전율하는 공연 '슬립노모어 서울' [MD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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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립노모어 서울' 스틸컷 / 미쓰잭슨

[마이데일리 = 이승길 기자] "공연장에 들어서면 빛 한 점 없는 어두운 터널을 지납니다. 벽을 짚고 촉감에 의지한 채 더듬더듬 한동안 걸어가면, 현실 세계를 떠나 새로운 이야기의 공간이 펼쳐집니다."

건물에 들어서는 순간, 익숙했던 현실과의 연결고리는 순식간에 끊어진다. 영국의 유명 공연제작사 펀치드렁크의 대표작이자 이머시브 시어터(Immersive Theater)의 대명사인 '슬립노모어'가 서울 충무로에서 공연 중이다.

'슬립노모어'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를 1930년대 필름 누아르 분위기와 미스터리한 서스펜스, 초자연적인 요소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스코틀랜드의 용맹한 장군 맥베스가 마녀들의 예언과 아내 레이디 맥베스의 부추김에 넘어가 왕을 살해하고 파멸해가는 욕망의 서사를 대사 없이 오롯이 배우들의 몸짓과 무용, 감각적인 음악, 그리고 몰입감 넘치는 공간 연출만으로 전달한다.

'슬립노모어 서울'은 제작·주최사 미쓰잭슨이 충무로 대한극장을 7층 규모의 '매키탄 호텔(The McKithan Hotel)'로 탈바꿈시키며 역대 최대 규모 프로덕션으로 탄생시켰다.

관객들은 입장 시 일률적으로 제공되는 하얀 가면을 착용해야 한다. 이 흰 가면은 어둡고 협소한 복도 속에서 배우(가면을 쓰지 않은 존재)와 관객을 구분하는 유일한 장치로 작용한다. 즉, 관객은 '익명의 관찰자'가 된다.

이 공연에는 정해진 동선도, 따라야 할 가이드도 없다. 100여개의 방에 달하는 호텔 공간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배우의 턱밑까지 다가가 연기를 감상하거나, 마음에 드는 비어있는 방의 소품을 만져보며 공간 자체를 탐험하게 된다.

'슬립노모어 서울' 스틸컷 / 미쓰잭슨

공연의 가장 커다란 매력은 하나의 시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같은 시간, 7개 층에 달하는 서로 다른 장소에서 다채로운 장면이 동시에 펼쳐지기 때문에 누구를 따라가느냐에 따라 관람 경험이 완전히 달라진다.

이야기의 중심축을 따라가고 싶은 입문자라면 맥베스나 레이디 맥베스를 끈질기게 추적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설령 길을 잃거나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더라도 전혀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 무대의 한 귀퉁이에서 우연히 목격한 배우의 눈물, 붉은 조명 아래서 펼쳐지는 기이한 춤, 어두운 방 안에 남겨진 서늘한 편지 한 장을 발견하는 그 찰나의 전율이야말로 이 공연이 선사하는 진정한 묘미다.

지난해 7월 프리뷰 개막 이후 1년 동안 '슬립노모어 서울'은 약 1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뜨거운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16만 원에서 20만 원대에 달하는 프리미엄 티켓 가격에도 불구하고 100회 이상 재관람한 열성 팬덤이 등장할 만큼 독보적인 경쟁력을 증명했다.

수동적으로 앉아서 무대를 바라보는 틀을 깨부수고, 직접 걷고, 만지고, 다가가며 온몸의 감각을 통해 완성하는 경험. 빛 한 점 없는 어두운 터널 끝에서 만나는 매키탄 호텔의 몽환적인 전율은, 그동안 국내에서 쉽게 접하기 힘들었던 진짜 '이머시브 시어터'의 매력이 무엇인지를 직관적이고 강력하게 각인시켜 준다.

'슬립노모어 서울' 스틸컷 / 미쓰잭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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