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수백 년 동안 충남 청양군 화성면 화강리를 지켜온 노송들이 소나무재선충병 앞에 무너졌다. 선조 대부터 마을을 감싸던 울창한 솔숲은 집단 고사와 대규모 벌채로 자취를 감췄고, 주민들은 단순히 나무를 잃은 것이 아니라 고향의 풍경과 삶의 터전을 함께 잃었다고 말한다.

청양군에 따르면 올해 지역에서 확인된 소나무재선충병 피해목은 모두 3만1717그루에 달한다. 군은 약 37억원을 투입해 피해목 제거와 예방나무주사, 조림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피해가 집중된 화강리 일대는 편백과 낙엽송 등을 심는 수종 전환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하지만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 동안 자란 소나무를 베어내는 데는 하루면 충분해도, 다시 숲을 만드는 데는 한 세대에 가까운 시간이 필요하다. 화강리 주민들에게 소나무는 단순한 조경수나 목재가 아니었다. 마을을 지켜온 역사이자 선조들의 유산이었다.
외지에서 거액을 제시하며 소나무를 사가려 해도 주민들은 한 번도 응하지 않았다. 안길수 화강리 새마을지도자(72)는 "외지 사람들이 좋은 집을 지어 놓고 소나무를 옮겨 심겠다며 여러 번 찾아왔지만 선조 때부터 내려온 나무라며 팔지 않았다"며 "그렇게 지켜온 소나무들이 재선충병으로 한순간에 죽어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2010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화강리로 귀촌한 안 지도자 역시 울창한 소나무 숲에 매료돼 이곳을 선택했다. 그는 "서울을 떠나 이곳으로 온 이유가 바로 소나무였다"며 "16년이 지난 지금 그 소나무가 거의 사라져버렸다"고 말했다.
피해는 작은 이상징후에서 시작됐다. 산속에서 소나무 한두 그루가 말라가기 시작하자 안 지도자는 약 2년 전부터 군의원과 도의원 등을 찾아다니며 조기 방제를 요청했다. "한두 그루 보일 때 빨리 막아야 한다고 계속 이야기했습니다. 한번 번지면 감당하기 어렵다고 했는데 결국 현실이 됐습니다." 그러나 예산 확보와 행정 절차가 진행되는 사이 재선충병은 빠르게 확산됐다.
산발적으로 나타나던 피해는 지난해부터 급속히 늘었고, 결국 화강리 일대는 집단감염 지역으로 변했다. 안 지도자는 "행정기관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겠지만 재선충병의 확산 속도가 너무 빨랐다"며 "예산이 마련되는 동안 숲은 이미 크게 무너졌다"고 말했다.
현재 청양군은 화강리를 단순한 개별 피해 지역이 아닌 집단감염 지역으로 판단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감염목만 제거하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숲을 지키기 어렵다"며 "일정 구역의 소나무를 모두 벌채한 뒤 편백과 낙엽송 등을 심는 수종 전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벌채가 끝난 산에는 어린 편백 묘목이 심어졌으며, 일부 지역에는 낙엽송도 함께 식재됐다. 이는 재선충병뿐 아니라 산불과 기후변화에도 상대적으로 강한 숲을 조성하기 위한 조치다.
피해는 화강리에만 그치지 않았다. 보령시 청라면과 맞닿은 화성면 일대를 비롯해 36번 국도 주변에서도 잎이 붉게 변하거나 말라 죽은 소나무가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청양군은 피해가 공주시 경계까지 확산되지 않도록 차단 방제에 집중할 계획이다.
청양군은 오는 9월부터 고사목 제거와 파쇄, 예방나무주사 등 하반기 집중 방제를 시작한다. 특히 피해가 가장 심한 화강리는 연중 방제가 가능한 특별방제구역 지정도 추진하고 있다. 감염목은 모두 파쇄 처리해 매개충의 추가 확산을 막고, 조림 이후에도 생육 관리와 사후 점검을 지속적으로 실시할 계획이다.
군 관계자는 "좋은 소나무를 잃는 것은 매우 안타깝지만 집단감염 지역은 벌채와 수종 전환이 불가피하다"며 "공주시 경계까지 피해가 확산하지 않도록 방제와 예방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확인된 피해목은 3만1717그루. 37억원의 방제 예산이 투입되고 있지만 주민들이 잃은 것은 숫자로 환산하기 어려운 세월이다. 수백 년 동안 마을을 지켜온 소나무는 하루 만에 사라졌고, 그 자리를 메운 어린 편백이 울창한 숲으로 자라기까지는 다시 수십 년이 필요하다.
안길수 지도자는 "제가 살아 있는 동안 지금 심은 편백이 울창한 숲으로 자라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며 "소나무는 잃었지만 새로운 숲이 다시 주민들에게 쉼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재선충병은 나무만 쓰러뜨린 것이 아니었다. 화강리 주민들이 평생 바라보며 살아온 고향의 풍경과 기억까지 함께 바꿔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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