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김두완 기자 ‘매관매직’의 대가는 중형이었다. 재판부는 김건희 씨의 ‘매관매직’ 사건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대통령 배우자는 공무원은 아니지만 국정 운영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위치라고 판단했다. 특히 “공무원 신분이었다면 수뢰액 규모상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형 대상”이라고 언급했다. 공무원은 아니더라도 대통령 배우자의 영향력에 상응하는 책임은 엄중하게 물어야 한다는 것이 이번 판결이 던진 메시지다.
◇ 대통령 배우자 영향력… 거래 대상 삼은 대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조순표 부장판사)는 26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된 김건희 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우환 화백의 그림과 반클리프 아펠 목걸이, 티파니 브로치, 디올 파우치 등 압수된 물품을 몰수하고 6,480만원 추징과 가납을 명령했다. 김씨와 함께 기소된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서성빈 로봇개 사업가에게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최재영(최아브라함) 목사에게는 벌금 800만원을 각각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에서 ‘청탁은 언제 성립하는가’에 가장 긴 시간을 할애했다. 재판부는 명시적인 청탁이 없더라도 장래 공무원 직무와 관련한 도움을 기대하며 금품을 건넸다면 알선수재죄의 대가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특정 현안이 발생한 뒤 부탁과 함께 금품을 전달하는 경우만 청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향후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 미리 관계를 형성하는 행위 역시 알선수재의 범주에 포함된다는 취지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의 귀금속 제공이다. 재판부는 윤석열 전 대통령 당선 직후 이 회장이 5,560만원 상당의 반클리프 아펠 목걸이를 전달한 행위를 두고 “미리 친분을 확실히 해두기 위한 보험적 성격이었다”는 이 회장의 법정 진술에 주목했다. 당시 구체적인 현안은 없었지만 건설업 특성상 세무조사와 인허가, 행정규제 등 공무원 직무와 관련한 문제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만큼 대통령 배우자의 영향력을 이용하려는 묵시적 청탁이 내포돼 있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이후 이 회장이 사위 박성근 씨의 인사를 청탁하고 김씨가 “회사에 도와드릴 것은 없느냐”고 먼저 묻거나 박 씨에게 직접 연락한 일련의 과정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했다. 결국 처음 전달된 목걸이부터 이미 청탁의 대가성이 존재했고 묵시적 청탁은 이후 명시적인 인사청탁으로 이어졌다고 판단했다.
다른 혐의에서도 판단 기준은 같았다. 재판부는 이배용 전 국가교육위원장이 국가교육위원장 임명을 요청하며 금거북이와 ‘세한도’ 복제품을 전달한 행위에 대해서도 단순한 취임 축하나 답례 선물이 아니라 인사 청탁의 대가라고 판단했다. 위원장직에 대한 의사를 지속적으로 전달하고 관련 자료를 건네는 과정과 금품 전달 시점이 맞물린 점을 근거로 들었다.
서성빈(로봇개 사업가) 씨의 바쉐론 콘스탄틴 시계 역시 구매대행이 아니라 금품 제공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시계 구매 비용을 모두 서씨가 부담했고 김씨가 대금을 지급했다는 객관적 자료가 없는 점, 대통령경호처 사업과 관련한 청탁 정황 등을 종합하면 대통령 배우자의 영향력을 기대한 금품 제공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김상민 전 부장검사의 이우환 화백 그림도 같은 논리였다. 재판부는 김 전 부장검사가 김씨와 지속적으로 연락하고 관저를 출입하는 등 밀접한 관계를 형성했고 그림 역시 김씨에게 전달됐다가 수사 이후 다른 장소로 옮겨진 정황 등을 근거로 공천 등 장래 정치적 도움을 기대한 청탁으로 인정했다.
최재영(최아브라함) 목사의 디올 가방과 향수, 화장품 등도 단순한 선물은 아니었다. 재판부는 제공 과정과 이후 이어진 대화, 청탁 내용 등을 종합하면 대통령 배우자의 영향력을 전제로 한 금품 제공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최 목사가 디올 가방 제공은 김씨의 ‘매관매직’ 실태를 확인하기 위한 언더커버 형식의 잠입 취재 또는 공익적 문제 제기 목적이었다고 주장한 부분은 일부 사실로 인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실제 존재하지 않는 사실을 꾸며낸 것이 아니라 실제 이뤄진 금품 제공과 대화, 접촉을 토대로 한 것이며 최 목사가 단순히 이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안과 관심 사항을 언급하며 직접 요청까지 한 만큼 청탁금지법상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가 공통적으로 본 것은 금품 자체가 아니라 금품을 둘러싼 관계와 이후 이어진 행위였다. 구체적인 청탁이 금품보다 먼저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장래 영향력을 기대하며 관계를 만들고 이후 실제 청탁으로 이어졌다면 처음 금품을 받은 시점부터 대가성이 인정된다는 것이 이번 판결의 공통된 판단이었다.
재판부는 양형 이유에서 김씨가 일반 국민이라면 평생 한 번도 쉽게 취득하기 어려운 고가의 물품을 별다른 거리낌 없이 반복적으로 수수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통령 배우자는 공무원은 아니지만 누구보다 국정 운영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위치라며 공무원이었다면 수뢰액 규모상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형 대상이라고 밝혔다.
이번 판결은 대통령 배우자가 공무원은 아니더라도 국정에 미치는 영향력만큼은 형사책임 판단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재판부가 제시한 ‘묵시적 청탁’과 ‘장래 영향력 확보’라는 기준은 앞으로 권력 주변에서 벌어지는 청탁 사건의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Copyright ⓒ 시사위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