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동자동=이민지 기자 건물 안으로 발을 내디딘 순간, 매캐한 탄내가 코를 찔렀다. 지난 23일 서울시 용산구 후암로에 위치한 A교회 건물에서 발생한 화재는 이곳에 머물던 쪽방촌 사람들이 함께 사용하던 공용 주방을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화재 발생 이틀이 지난 26일 기자가 현장을 찾았을 땐 까맣게 타버린 현장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깨진 창문과 타버려 갈기갈기 찢긴 벽지는 그날 화재의 위력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싱크대와 한데 모여 있는 식기들이 아니었다면, 이곳이 주방이었다는 사실조차 짐작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2003년식 딤채 김치 냉장고에서 시작된 불은 쪽방촌에 살고 있던 이들을 위협했다. 해당 건물 쪽방에서 거주 중인 박영준(68) 씨는 “주방 옆 첫 번째 방에서 살고 있는데, 밤 9시쯤 누워 있다가 연기 냄새를 맡았다”며 “작은 창문으로 까만 연기가 밀려 들어왔다. 급히 문 밖으로 뛰어나왔는데 통로가 시커매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이어 “주민센터에서 인근 숙박시설에 숙소를 마련해줘서 열흘 정도는 지낼 수 있을 것 같다”며 “이후에는 새롭게 머물 곳을 찾아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 명확한 기준 없는 ‘쪽방’… 쪽방 건물 사각지대
화재가 발생한 A교회 건물은 2021년 정부가 발표한 ‘동자동 공공주택지구’ 구역 안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는 여러 주민들이 모여 살고 있지만, 해당 건물은 공식적으로 ‘쪽방’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쉽게 말해 ‘사각지대 쪽방’인 셈이다.
현행 법률상 ‘쪽방’의 개념은 명확하지 않다. 관련 법령에 ‘쪽방’에 대한 정의 규정은 없다. 서울시 조례 역시 ‘쪽방 주민이랑 시장이 별도로 정한 쪽방 밀집지역에 거주하는 자’라고만 규정하고 있다.
이 같은 제도적 공백은 사각지대 쪽방에 거주하는 이들의 주거 환경에서도 드러난다. 2023년 홈리스주거팀이 동자동 사각지대(비인정) 쪽방 거주자 20명을 대상으로 설문 및 심층 면접을 진행한 결과, 이들의 개별 방 면적은 평균 4~5㎡에 불과했다. 냉방시설이 설치된 곳은 한 곳도 없었고, 부엌이 갖춰진 경우도 절반 수준에 그쳤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쪽방으로 인정되면 구청 등을 통해 안전 점검과 개보수, 소방안전 사업 등이 이뤄지지만 사각지대 쪽방은 이런 지원이 전혀 없다”며 “그만큼 안전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쪽방에 대한 개념 정의가 없다 보니 행정이 재량에 따라 인정 여부를 결정하는 구조”라며 “서울시의 무원칙한 폐쇄적인 쪽방지원, 선택된 소수 쪽방 주민에게만 여러 정책을 쏟아 부으면서 이걸 선전 정책으로 활용하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 자활지원과 관계자는 “화재가 발생한 장소는 과거 쪽방촌 상담소로 사용되던 곳으로, 정황상 불법 증‧개축을 거쳐 쪽방으로 활용된 것으로 추측된다”며 “이런 곳을 쪽방으로 지정할 경우 불법 증‧개축을 부추기고 쪽방 수가 증가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기존에 지정된 쪽방 건물에도 공실이 적지 않은 상황”이라며 “이 같은 점을 고려해 신규 지정 여부를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Copyright ⓒ 시사위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