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김두완 기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형사처벌을 면제받거나 상속권을 자동으로 보장받던 법적 예외가 사라졌다. 친족이 연루되면 재산범죄가 ‘예외’로 취급되던 특례는 폐지됐고, 양육·부양의무를 중대하게 저버린 부모에게 상속권이 자동으로 인정되던 구조도 제한되기 시작하면서다. 그동안 가족 내부 문제로 간주돼 판단을 미뤄왔던 영역이 입법을 통해 사법적 대상이 됐다. 혈연이라는 관계 자체보다 그 관계 안에서 책임이 이행됐는지 여부를 살펴보겠다는 전환이다. 가족을 둘러싼 법의 기준이 형식에서 책임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 처벌 예외 ‘가족 범죄’, 법의 테두리로
국회는 지난해 12월 30일 친족상도례를 폐지하는 형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친족 간 재산범죄를 모두 친고죄로 전환하는 것이 골자다. 기존 형법은 친족의 범위를 나눠 부모·자녀 등 가까운 친족 사이 범죄는 처벌을 면제하고 그 외 친족에 대해서만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규정해 왔다. 개정 이후에는 친족의 원근을 불문하고 고소가 있어야 처벌이 가능하다. 형 면제라는 자동적 특례를 폐지하고, 형사 절차 개시 여부를 피해자의 의사에 맡긴 구조다.
이 개정으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그동안 형사 절차의 대상이 되지 못했던 가족 간 재산범죄가 제도적으로 수사·재판의 영역에 포함됐다는 점이다. 가족 내부 문제라는 이유로 국가의 형벌권 행사가 차단되던 구조가 해체된 것이다. 다만 처벌 여부를 일률적으로 강화한 것이 아니라 고소를 전제로 판단하도록 설계됐다는 점에서 피해자의 선택권을 중심에 둔 변화로 평가된다.
친족상도례 폐지는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후속 조치다. 헌재는 2024년 6월 해당 규정이 가족 간 재산범죄 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과 국가의 형벌권 행사를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입법 개선을 요구했고, 국회는 제시된 시한 내에 형법 개정을 마무리했다. 개정 규정은 헌재 결정 이후 발생한 사건부터 적용되며, 법 개정 전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도 일정 기간 내 고소할 수 있도록 특례를 뒀다.
형사 영역의 변화와 맞물려 상속 분야에서도 가족을 둘러싼 권리 구조가 달라졌다. 부양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한 부모의 상속권을 제한하는 이른바 ‘구하라법’(민법 제1004조의2)은 2024년 8월 국회를 통과해 2026년 1월 1일부터 시행됐다. 해당 조항은 피상속인에 대한 양육·부양의무를 중대하게 저버렸거나, 피상속인 또는 그 배우자·직계비속에게 중대한 범죄행위 또는 현저히 부당한 대우를 한 경우 법원이 상속권 상실을 선고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구하라법은 상속권을 자동으로 박탈하는 제도가 아니다. 피상속인이 생전에 공정증서(공증인이 법률에 따라 공증 내용을 기록한 문서) 유언으로 상속권 상실 의사를 표시하거나, 유언이 없는 경우 공동상속인이 가정법원에 상속권 상실 심판을 청구해야 한다. 상속권 상실 여부는 개별 사안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거쳐 확정된다. 다만 부모라는 신분만으로 상속권이 기계적으로 발생하던 기존 구조에 사법적 통제 장치가 처음으로 도입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 가족 문제에 개입하지 않던 법의 인식 변화
이 같은 법률 개정은 가족을 바라보는 법의 전제가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동안 형법과 민법은 가족을 하나의 보호 단위로 상정하고, 내부 문제에 대해서는 국가 개입을 최소화하는 태도를 유지해 왔다. 친족상도례와 상속의 자동성은 그 전제를 제도화한 대표적 장치였다. 가족 내부의 갈등이나 책임 문제는 법보다는 자율과 도덕의 영역에 맡겨야 한다는 인식이 오랫동안 작동해 온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제는 사회 현실과 점차 괴리를 드러냈다. 가족이라는 외형 아래에서 재산범죄가 반복되거나, 양육 책임을 사실상 포기한 부모가 법적으로는 동일한 권리를 행사하는 사례가 누적됐다. 때문에 ‘비개입’이 곧 ‘보호’가 아니라는 문제의식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법이 가족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 사이 재산범죄나 부모의 책임 회피가 제도적으로 걸러지지 않았다.
입법의 방향 전환은 이 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번 개정들은 가족을 무조건적인 보호 영역이 아니라 권리와 책임이 함께 작동하는 법적 관계로 재정의했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혈연이라는 지위 자체보다 그 관계 안에서 책임이 실제로 이행됐는지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이는 가족을 해체하거나 국가가 전면 개입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최소한의 책임에 대해서 법이 판단하겠다는 선 긋기에 가깝다.
특히 주목되는 점은 두 제도 모두 사법적 판단을 전제로 설계됐다는 점이다. 친족상도례를 폐지했지만 처벌을 일괄적으로 강화하지 않고 고소를 전제로 판단하도록 했다.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은 부모의 상속권 박탈 역시 법원이 판단하도록 했다. 이는 가족 관계를 획일적으로 재단하지 않겠다는 것과 더 이상 무조건적인 예외도 두지 않겠다는 절충적 선택으로 볼 수 있다.
앞으로 관건은 이 기준이 어디까지 구체화될 것인가다. ‘중대한’ 부양의무 위반이나 책임 포기의 범위는 아직 법문만으로 명확하지 않다. 결국 초기 판례에서 어떤 사안이 인정되는지가 사실상 기준을 형성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분명한 점은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판단을 유보하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가족간 권리의 근거가 신분에서 행위로 이동하는 흐름이다.
친족상도례 폐지와 구하라법은 그 전환의 출발점에 해당한다. 이제 가족을 둘러싼 법의 기준은 이제 형식이 아니라 책임을 중심으로 다시 재편되고 있다. 가족이란 테두리 안에서 어디까지 책임을 요구하게 될지, 그리고 그 선이 어떻게 그어질지는 앞으로 축적될 판례와 실무에서 결정하게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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