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왜 남의 삶에 이토록 과몰입하게 됐을까…타인의 감정에 기대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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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조예원 인턴 기자] 최근 시청자들의 시선은 익숙한 얼굴들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예능 프로그램 구조에서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있다. 대신 시즌마다 새로운 개성을 가진 전혀 다른 인물이 등장하고, 짧은 시간 안에 주목받았다가 또 새로운 인물로 바뀌는 방식에 더 강하게 반응하는 흐름이 자리 잡았다. 이처럼 빠르게 생성되고 사라지는 마이크로 셀러브리티들은 '새로움'을 계속 공급하며 관찰 예능의 핵심 매력으로 작동하고 있다.

솔로지옥4, 환승연애4, 체인지데이즈2 포스터. / 넷플릭스, 티빙, 카카오 엔터

특히 연애 관찰 예능 프러그램은 이러한 구조와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장르다. '환승연애', '솔로지옥', '체인지 데이즈'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대부분의 출연자는 방송 전까지 대중에게 거의 알려진 적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방송이 시작되면 곧바로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되고 SNS 팔로워는 순식간에 늘어난다. 시즌이 끝날 즈음에는 하나의 작은 스타가 된다. 대중적인 유명인은 아니지만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단기간에 강한 집중을 받는 새로운 유형의 영향력 있는 존재들이다.

고정된 스타가 오래 등장하는 방식보다, 끊임없이 새로운 얼굴이 등장해 신선함을 유지하는 구조는 관찰 예능 특유의 흡입력을 만들어낸다.

연애 관찰 예능 프로그램이 특히 강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이유는 '감정'이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출연자들의 설렘, 질투, 망설임 등 대부분의 시청자가 한 번쯤 경험해 본 감정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장면을 지켜보는 동안 자연스럽게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거나 지금의 자신과 비교하게 되는 순간이 생긴다.

특히 출연자가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이기 때문이 감정 이입이 훨씬 쉽게 일어난다. 익숙한 상황들이 반복되며 화면 속 선택과 감정을 마치 자신의 일처럼 느끼게 되고, 이는 곧 강한 몰입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시청자들은 응원·실망·분노 등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게 된다. 방송이 끝난 뒤에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의견이 이어지며 프로그램 밖에서도 감정적 참여가 지속된다. 연애라는 소재가 지는 친숙함과 높은 감정 밀도는 과몰입을 자연스럽고 빠르게 유발한다.

오은영의 금쪽상담소, 금쪽같은 내새끼 포스터 / 채널A

감정 대리 체험은 연애 장르에만 머물지 않는다. '오은영 리포트', '금쪽같은 내새끼'처럼 문제 상황을 다루고 그 해결 과정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난다.

아이를 키우지 않는 사람이어도 '금쪽같은 내새끼'를 보는 이유는 단순한 육아 조언 때문이 아니다. 어른이 되며 겉으로는 사라진 것 같지만 마음속에 남아 있던 불안정한 어린 시절의 기억을 화면을 통해 다시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도 충분히 설명 받지 못했던 감정이나 상처를 프로그램 속 전문가가 해석해 주는 장면에서 '대신 이해받는 느낌'을 경험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의 문제를 지켜보는 행위가 곧 나의 과거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고 누군가의 감정이 정리되는 모습을 보며 '나도 언젠가 괜찮아질 것 같다'는 위로를 얻는다.

게다가 인간관계가 느슨해지는 시대, 관찰 예능은 "다들 이런 고민 가지고 사는구나", "나만 이렇게 힘든 게 아니구나" 같은 감정을 떠올리게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쉽게 털어놓기 어려운 시대일수록 타인의 감정을 통해 해소와 안정을 얻는 방식이 더 익숙해지고 있다.

이런 흐름은 분명 긍정적인 면이 있다. 현대인이 직접 경험하지 못한 것들은 안전하게 간접 체험하게 해주고 복잡한 감정을 대신 건드려주며 더 다채로운 감정의 스펙트럼을 느끼게 해준다. 또한 스스로 설명하기 어려웠던 마음을 타인의 이야기를 통해 정리해 볼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려도 남는다. 비슷한 형식이 지나치게 반복되면 시청자는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자연스럽게 기대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타인의 감정이 콘텐츠로만 인식되면서 현실과 화면의 경계가 흐려질 수 있다. 감정을 따라가는 즐거움이 어느 순간 피로로 바뀌고 나도 모르게 누군가의 고통을 가볍게 소비하는 태도가 자리 잡을 가능성도 있다.

한국의 콘텐츠 소비가 하나의 형식에 빠지면 빠르게 변형하고 확장해 끝까지 밀어붙이는 특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지점은 더욱 주의 깊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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