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더발리볼 = 케손 시티 김희수 기자] 대회 초반부터 필리핀이 심상치 않다. 이곳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이사나예 라미레스 감독이 이끄는 한국 남자배구 국가대표팀이 한국 시간 14일 필리핀 케손 시티 스마트 아라네타 콜리세움에서 프랑스를 상대로 2025 국제배구연맹(FIVB) 남자 세계선수권 C조 예선 1차전을 치른다. 11년 만에 복귀한 세계선수권에서의 첫 경기다.
객관적인 전력 차는 상당하다. 13일 기준 FIVB 세계랭킹만 봐도 한국은 26위, 프랑스는 4위다. 게다가 올림픽을 두 차례 연속으로 제패했을 정도로 국제대회 경험과 성과도 풍부한 프랑스다. 절대 다수의 팬 및 전문가들은 한국의 완패를 예상하고 있다.
그런데 대회 초반부터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13일 치러진 G조 예선 경기에서 튀르키예가 우승 후보 일본을 3-0(25-19, 25-23, 25-19)으로 완파하는 대이변이 발생했다. 일본은 이시카와 유키, 미야우라 켄토, 오노데라 타이시 등 주전 선수들이 모두 나섰음에도 튀르키예를 상대로 한 세트도 따지 못했다.
결국 이 경기 결과로 인해 튀르키예는 한 번에 랭킹 포인트 20.99점을 챙기며 세계 랭킹을 15위로 끌어올렸고, 일본은 5위에서 7위로 내려앉았다. 현장 분위기도 술렁였다. 경기가 종료된 뒤 경기장을 빠져나오는 일본 팬들의 표정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이처럼 스포츠에 절대라는 것은 없다. 물론 튀르키예와 일본의 전력 차보다 한국과 프랑스의 전력 차가 더 큰 것은 사실이나, 이제 막 대회가 시작되는 만큼 변수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세계선수권 예선에 대한 분석을 위해 <더발리볼>과 유선으로 이야기를 나눈 토미 틸리카이넨 전 대한항공 감독(현 폴란드 플러스리가 프로옉트 바르샤바 감독) 역시 “기회라는 것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것이 작든 크든 말이다”라며 한국이 거함 프랑스를 흔들 수 있는 가능성은 미약하지만 분명히 존재함을 강조했다.
이후 그와 프랑스에 대한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도 나눴다. 틸리카이넨 감독은 “프랑스의 팀 스피릿은 주목할 만하다. 그들은 마치 친구들끼리 모여서 경기를 치르는 듯 즐겁고 활기차게 코트를 장악한다. 여기에 선수 개개인의 기량까지 더해져 하나의 쇼를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을 가진 팀”이라고 프랑스를 고평가했다.
틸리카이넨 감독은 프랑스가 가진 인 게임에서의 최대 강점으로 수비를 꼽았다. 그는 “팀적으로 수비가 좋다. 그 중심에 제니아 그레베니코프가 있다. 그는 후위 수비 라인을 놀라운 방식으로 조율하며 팀 수비를 조립한다”며 세계 최고의 리베로라 평가받는 그레베니코프를 극찬했다. 그레베니코프의 짐승 같은 반응속도와 이를 기반으로 한 압박 수비는 공격수들을 답답하게 해서 결국 무리한 플레이를 시도하게 만든다. 한국의 공격수들이 이에 말려들지 않고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그레베니코프와 함께 수비를 조율하고, 공격에서도 제몫을 다하는 공수겸장 트레버 클레베노 역시 눈여겨봐야 할 선수다. 현역 아웃사이드 히터 중 가장 영리하게 경기를 풀어가는 선수고, 국제대회에서 유독 강한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에르벵 은가페나 앙투안 브리자드 같은 팀 내 최고의 스타들에 비해서는 이름값이 좀 떨어질지 몰라도, 코트 안에서의 존재감과 활용도만큼은 대체불가한 선수다.

한편 미들블로커 바르텔레미 치넨예제는 한국의 미들블로커들을 골치 아프게 만들 선수다. 현역 미들블로커 중 플라비오 헤젠데(브라질)와 함께 가장 날카로운 속공수로 평가받는 치넨예제는 한국 블로커들이 조금이라도 사이드 쪽으로 쏠리는 순간 한국의 코트를 폭격할 것이다. 치넨예제와 전위에서 맞붙을 한국의 미들블로커가 누가 될지도 중요하다.
이 외에도 쟝 패트리, 니콜라스 르 고프, 벤자민 토니우티 등 슈퍼스타들이 즐비한 프랑스는 분명 한국으로서는 무척 벅찬 상대가 될 것이다. 그러나 경기는 치러봐야 아는 법이다. 틸리카이넨 감독은 “동료들을 믿고, 시작부터 끝까지 100%를 쏟아 부어라. 상대의 허점을 찾는 게 아니라, 이렇게 우리의 최선을 다하는 것이 놀라운 결과를 만드는 방법이 되는 법”이라며 한국 선수들을 격려했다.
드디어 세계 최고를 가리는 무대에 한국이 출격한다. 상대는 백투백 올림픽 챔피언이다. 이런 상대에게 지더라도 잃을 건 없다. 한국의 배구를 제대로 선보이고, 최선을 다해 맞서 싸운다면 그 자체로 박수 받을 일이다. 그 과정에서 어쩌면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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