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일본이 탐낸 '한국형 워케이션' 지방소멸 해법 되나

프라임경제
[프라임경제] 지난 10일 오전 7시 50분, 광명역을 출발한 열차가 부산역에 닿자, 습기를 머금은 바닷바람이 플랫폼을 스쳤다. 부산역 광장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춘 순간 늦여름 바다의 냄새가 진하게 스며왔다. 그러나 본지의 목적지는 관광지가 아니었다. 곧장 영도의 부산관광기업지원센터로 향했다. 이미 모여든 '한국·일본 워케이션 팸투어' 참가자들의 얼굴에는 호기심·긴장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국내 지방 인구는 빠르게 소멸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국 228개 기초지자체 중 118곳이 '소멸 위험지역'으로 분류됐다. 특히 군 단위 지역 절반 이상은 30년 내 사라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청년층은 수도권으로 몰린다. 출산율은 바닥을 치고 있다. 고령화 속도는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간 정부는 △혁신도시 조성 △공공기관 이전 △지방교부세 확대 등 다양한 정책을 내놨다. 하지만 성과는 제한적이었다. 혁신도시는 초기 인구 유입에는 성공했으나 자족 기능 부족으로 장기 정착에 실패했다. 공공기관 이전도 지역 기업 생태계와 결합하지 못했다. 이처럼 지방 소멸은 더 이상 '예고된 미래'가 아닌 현재진행형이다.

일본이 먼저 주목한 '한국형 워케이션'

이런 상황에서 주목받는 것이 바로 워케이션(Work+Vacation)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원격·재택근무가 확산됐다. 이제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보편화됐다. 단순한 복지 차원이 아니라 △기업△지자체 △스타트업을 연결해 지역 체류·소비·관계를 동시에 창출할 수 있는 전략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번 '워케이션 교류 시찰 투어'는 그 가능성을 시험하는 현장이었다.팸투어는 워케이션 브랜드 '더휴일'의 운영사 스트리밍하우스(대표 신동훈)와 일본 칸자시(대표 마사히데 아키야마)가 공동 주최하고 △한국관광공사 △충남도청 △충남문화관광재단이 공동 주관한 행사다. 본지는 10일부터 12일까지 사흘간 진행된 이번 일정에 이틀간 동행했다. 일정에는 일본 기업과 지자체 관계자, 한국 지방정부와 스타트업이 한자리에 모여 워케이션의 구조와 미래를 논의했다.

아키야마 마사히데 칸자시 대표는 행사장에서 "일본 역시 인구 감소, 계절별 관광 수요 편차, 낮은 소비 단가라는 삼중 과제에 직면해 있다"며 "한국형 모델이 강조하는 ESG·관계인구 전략을 일본에도 적용하고 싶다"고 말했다.

칸자시는 숙박업소 대상 △서비스형소프트웨어(SaaS) △HR테크 △관광테크를 축으로 지방 경제 프로젝트를 운영한다. 온라인 여행사(OTA)를 기반으로 항공사·호텔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상장 이후에는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투자로 기업간거래(B2B) 사업을 확장 중이다.

아키야마 대표는 "워케이션은 단순 체류가 아니라 지역 관계 인구를 늘리고 기업 유치로 이어질 수 있는 모델"이라며 "한일 양국 협력을 통해 오픈이노베이션 기회가 확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울산에 본사를 둔 HD현대중공업(329180)은 대기업 차원의 워케이션 도입 사례를 공유했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조선업 특성상 휴양지 근무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았다"며 "그러나 불황 장기화로 직원 피로가 누적됐고, MZ세대 입사 이후 스마트워크 요구도 커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HD현대중공업은 2022년 7명을 대상으로 첫 워케이션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이어 2023년에는 우수 직원 15명에게 포상 차원으로 기회를 제공했다. 지난해에는 공모제를 도입해 △주말부부 △암 환자 가족 돌봄 직원 △태교 여행을 희망하는 직원 등 특별한 사연을 가진 근로자까지 참여 대상을 넓혔다. 현재는 연간 약 200명이 스트리밍하우스의 '더휴일' 워케이션 서비스를 이용한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워케이션은 생산성 향상 수치보다는 밀린 과제 수행과 리프레시 효과 중심으로 운영된다"고 설명했다.

회사 내부에서도 인식 변화가 나타났다. 관계자는 "직원들이 다녀온 뒤 더 집중하는 모습에 감사하다는 피드백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보안 문제는 가상사설망(VPN) 접속과 유선망으로 보완했다"며 "현장 기밀 업무는 제외해 운영한다"고 덧붙였다.

이어진 순서에서는 신동훈 대표의 스트리밍하우스 '더휴일' 워케이션 프로그램의 소개가 이어졌다. 스트리밍하우스는 숙박·오피스 제공을 넘어 마을 주민과의 교류를 핵심에 둔다. 특히 '어촌 워케이션' 프로그램에서는 주민과 함께 낚시·해루질을 하고, 저녁에는 마을 식탁을 공유한다. 

신동훈 대표는 "이 과정에서 지역 애착이 생기고 재방문 의지가 커진다"고 말했다.

한국관광공사는 부산에서 서핑·하이킹 등 체험형 관광을 안내한다. 공공은 거점과 인프라를, 민간은 지역 깊이 있는 콘텐츠를 담당한다. 특히 울산에서는 출장과 워케이션을 결합한 '블레저(Bleisure)' 모델도 시도됐다. 이는 출장자가 업무를 마친 뒤 이틀 이상 머물며 워케이션을 즐기는 구조다.

간담회에서 일본 지자체 관계자들은 "언제 기업을 불러야 하는가, 무엇을 하게 할 것인가, 어떻게 다시 오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홋카이도 나카후라노초 관계자는 "라벤더 축제 기간에는 수백만 명이 몰리지만, 비수기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며 "교통·숙박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이에 한국 측은 "카셰어링 등 공유 모빌리티로 2차 교통을 보완하고 있다"고 답했다.

공주 콘퍼런스 : 제도와 문화의 결합

이튿날 11일 일정은 이른 아침부터 이어졌다.

호텔 로비 한켠, 참가자들이 삼삼오오 모인 자리에서 팸투어의 둘째 날 일정이 시작됐다. 인원들은 먼저 스트리밍하우스가 운영 중인 '더휴일 영도 오피스'와 '더휴일 송도 오피스'를 차례로 방문하며 워케이션 인프라를 직접 확인했다. 중간에는 지역 소상공인이 운영하는 카페를 들러 휴식을 취하며 지역 상권에 기여했다. 이후 부산의 대표 관광지인 송도 케이블카 탑승을 끝으로 부산 일정을 마무리했다.


다음 팸투어 일정은 충남 공주 고마아트센터에서 열린 '워케이션 컨퍼런스'로 이어졌다. 이 자리에는 △한국관광공사 △충남도청 △충남문화관광재단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들이 함께했다.

신두철 충남도청 관광산업팀장은 "워케이션은 단순 체류가 아니라 지역 자원을 지속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야 한다"며 "관광·문화·산업을 연결하는 플랫폼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지스자산운용은 2022년부터 도입해 온 자체 워케이션 사례를 공유했다. 이철우 이지스자산운용 팀장은 "워케이션은 단순 복지가 아니라 조직 문화와 소통, 생산성을 연결하는 중요한 제도"라며 "4년간 운영하며 임직원 만족도와 효과를 검증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임직원 스스로 신청하고 즐기며 네트워킹하는 과정에서 회사에 대한 애정과 소속감이 커졌다"며 "앞으로도 워케이션을 지속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진 순서로 참여자 간담회를 개최했다. 간담회에서는 많은 일본 참가자의 질문이 이어졌다.

야마다 카즈세이 ISCO 전무는 "오키나와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섬 지역 특성을 살린 워케이션 수요가 크다"며 "이번 팸투어에서 본 모델이 지역 경제 활성화에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관심 있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콘도 카즈유키 나가사키현 주임은 "나가사키는 이미 관광지로서 강점이 있지만, 업무 공간과 지역 자원을 연계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며 "한국형 워케이션 운영 사례를 참고해 지자체 차원에서 협력 방안을 고민해 보겠다"고 전했다.

본지의 취재는 11일 공주에서 마무리됐다. 반면 일정은 마지막 날 12일까지 이어졌다. 한·일  양국의 참가자들은 충남 보령에서 커피박 체험 등 지역 밀착형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사흘간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짧지만 밀도 있는 일정은 "워케이션은 복지인가, 생산성인가"라는 질문을 넘어, 지방을 다시 설계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남겼다.

지방 소멸 대응은 단순히 '사람을 옮기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머무를 이유, 관계, 생활 기반을 만드는 설계가 필요하다. 워케이션은 그 실험장이다. 기업에는 포상과 성과 관리, 직원 리텐션 수단으로 작동하고, 지역에는 비수기 체류와 재방문 유인을 만든다. 공공은 제도와 인프라를, 민간은 콘텐츠와 연결을 담당한다.

또한 지방 소멸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 아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전환할 수 있는 문제다. 일본이 한국형 워케이션 모델에 먼저 주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역은 여행지가 아니라 플랫폼이다.

워케이션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지역을 다시 설계하는 첫 단추다. 이제 남은 것은 시범을 넘어, 실제 제도로서 뿌리내리게 만드는 선택이다.

신동훈 스트리밍하우스 대표는 "워케이션은 휴식이 아니라 지역과 기업, 공공을 잇는 연결 구조"라며 "직원들에게는 새로운 일·생활 균형을, 지역에는 지속적인 체류와 소비를 만들어내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번 팸투어에서는 한국형 워케이션 모델이 단순 이벤트가 아니라 지방의 생활 기반을 재설계하는 실험이자, 기업과 직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며 "앞으로도 민간 기업으로서 지역과 긴밀히 협력해 워케이션이 한·일 양국에 뿌리내릴 수 있게 적극 지원하겠다"고 첨언했다.

아키야마 마사히데 칸자시 대표는 "이번 팸투어는 일본과 한국이 워케이션을 매개로 지역 문제를 함께 풀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며 "칸자시도 ESG와 지역 상생 전략을 강화해 양국 간 협력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철호 한국관광공사 선임 차장은 "워케이션은 관광객을 단순히 유치하는 수준을 넘어, 장기 체류와 재방문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도 공사 차원에서 지역 인프라와 프로그램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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