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한 남극, 쿨한 한국①] 남극의 외침: 빙하가 울고 있다

시사위크
남극의 눈이 사라지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남극의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남극 생태계가 변화하고 있다. 이제 지구 시스템 구성의 핵심축인 남극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야 할 시간이다. 사진은 마리안 소만 빙벽을 촬영한 모습이다. / 사진=남극특별취재팀, 드론촬영 협조=방성규 대원
남극의 눈이 사라지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남극의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남극 생태계가 변화하고 있다. 이제 지구 시스템 구성의 핵심축인 남극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야 할 시간이다. 사진은 마리안 소만 빙벽을 촬영한 모습이다. / 사진=남극특별취재팀, 드론촬영 협조=방성규 대원

시사위크|남극=김두완·박설민 기자  하얀 남극이 사라지고 있다. 하얀색 눈과 빙하로 뒤덮인 얼음의 땅 남극은 이제 옛말이다. 눈이 녹아내린 자리에는 시커먼 땅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 틈을 비집고, 이끼와 풀이 자라나며 ‘녹색화’가 빠르게 진행중이다. ‘빙하의 눈물’이 만들어낸 ‘녹색의 역습’이다.

남극은 단순한 극지가 아니다. 남극은 지구 시스템 구성의 핵심축이자 기후 안정성의 지렛대 역할을 한다. 남극에서 빙하의 붕괴는 해수면 상승으로 이어져 우리의 집과 도시를 위협할 수 있고, 바다 수온의 상승은 해양 생태계에 영향을 미쳐 우리 식탁에서 익숙하던 해산물을 사라지게 할 수 있다. 이제는 지구의 과거이자, 미래의 열쇠인 남극의 외침에 귀기울여야 할 시간이다.

◇ ‘핫’한 남극이 만든 ‘녹색 남극’

남극이 ‘핫’하다. 올해 1월 남극장보고과학기지는 영상 8.1°C를 기록했다. 이는 2021년 6.7°C로 관측된 역대 최고 1월 기온을 1°C 이상 넘어선 수치다. 특히 한 달 동안 일 최고기온이 7°C를 넘은 날이 4번이나 있었다. 연구자들은 가속화되고 있는 기후변화가 남극까지 깊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한다.

남극세종과학기지는 장보고기지보다 기온이 더 높다. 남극이라는 극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남극 대륙의 서쪽 끝에 위치한 세종기지는 비교적 온화한 해양성 기후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시사위크 취재진이 머문 세종기지는 ‘하얀 얼음의 땅’과는 거리가 멀었다.

눈이 녹아내린 남극의 대지는 초록 이끼로 가득했다. 온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발생한 녹색화 현상이다. 기후변화가 만들어낸 남극의 새로운 풍경이다. 사진은 취재진이 남극을 방문했을 당시 포터소만 인근에서 발견한 말라버린 고래의 사체 모습을 촬영한 장면이다. / 사진=남극특별취재팀
눈이 녹아내린 남극의 대지는 초록 이끼로 가득했다. 온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발생한 녹색화 현상이다. 기후변화가 만들어낸 남극의 새로운 풍경이다. 사진은 취재진이 남극을 방문했을 당시 포터소만 인근에서 발견한 말라버린 고래의 사체 모습을 촬영한 장면이다. / 사진=남극특별취재팀

세종기지에서 체험한 남극은 바람은 거세고 땅은 메말라 있었다. 체류하는 동안 눈보다 비를 더 많이 만났고, 눈이 녹아내린 대지는 초록 이끼로 가득했다. 기후변화가 만들어낸 현장이었다. 영국 엑서터대와 하트퍼드셔대의 남극연구소(BAS) 공동 연구팀이 지난해 10월 네이처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식물이 자라는 식생 면적이 1986년에서 2021년 사이에 12배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남극도 다른 극지방과 마찬가지로 온난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녹색화가 광범위하게 진행됐다”며 “하지만 무엇보다 향후 온난화로 인해 남극 지역의 생물과 경관이 근본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라고 대응의 필요성을 시사했다.

남극을 오래 경험한 남극 ‘베테랑’ 월동대원들도 하나같이 “남극의 눈이 많이 없어졌다”고 입을 모았다. 2007년 남극 세종기지에서 첫 월동을 시작해 다섯 번째 월동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세종기지 제38차 월동연구대 이성수 기계설비 대원은 “예전에는 여름이라도 맨땅이 드러나는 일은 드물었다”며 “요즘은 정말 눈이 많이 사라졌다. 기후변화를 실감한다”고 전했다.

남극세종과학기지가 설립된 이래 2022년이 가장 높은 기온인 13.9°C를 기록한 바 있다. 대체적으로 평균 기온이 연(年)마다 등락을 보이고 있으나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 그래픽=이주희 기자, 사진=남극특별취재팀, 드론촬영 협조=방성규 대원
남극세종과학기지가 설립된 이래 2022년이 가장 높은 기온인 13.9°C를 기록한 바 있다. 대체적으로 평균 기온이 연(年)마다 등락을 보이고 있으나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 그래픽=이주희 기자, 사진=남극특별취재팀, 드론촬영 협조=방성규 대원

세종기지에서 1988년부터 측정한 기온 변화 데이터를 살펴보면, 2022년엔 13.9°C로 관측 이래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했다. 연도별 평균 기온에서도 연(年)마다 다소 등락의 차이는 있지만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또 최고 극값(가장 높은 기온)과 최저 극값(가장 낮은 기온) 역시 상승 추세다. 남극이 ‘더 더워지고, 덜 추워지는’ 상황에 놓여 있는 셈이다.

극지연구소는 이런 고온 현상의 원인으로 △적은 적설량 △여름철 맑은 날씨의 지속 △그로 인해 뜨거워진 땅 △땅에서 발생한 지열 △고온건조한 바람 등을 꼽았다. 결국 남극이 보여주는 변화는 지구온난화가 실시간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 남극 빙하를 삼켜버린 데워진 바다

남극세종과학기지가 위치한 킹조지섬의 마리안 소만(Marian Cove) 빙하에서는 자주 들리는 소리가 있다. “우르르 꽝” “우르르 꽝”. 빙벽이 무너져 내릴 때 바다와 부딪쳐 생기는 파열음이다. 기후변화의 현실을 실제로 체감하는 순간이다. 세종기지 인근에 위치한 마리안 소만 빙하는 웅장하고 멋진 경관을 자랑한다. 때문에 세종기지의 자랑이기도 하다. 하지만 서남극에서 가장 빠르게 빙하가 후퇴하고 있는 해역으로 꼽혀 긴장감이 감돌기도 한다.

2004년 세종기지 월동대원으로 남극과 인연을 맺었던 김정한 극지연구소 해양대기연구본부 책임연구원은 세종기지에서 취재진과 함께 마리안 소만 빙벽을 바라보며 “2004년과 비교하면 빙벽 크기가 많이 작아졌고, 암반까지 드러났다”며 “계속 후퇴하는 모습이 씁쓸하다”고 말했다.

남극세종과학기지 인근에 자리한 마리안 소만 빙벽은 2016년 11월부터 2025년 3월까지 약 8년간 420km 뒤로 후퇴했다. / 그래픽=이주희 기자
남극세종과학기지 인근에 자리한 마리안 소만 빙벽은 2016년 11월부터 2025년 3월까지 약 8년간 420km 뒤로 후퇴했다. / 그래픽=이주희 기자

베테랑 극지 연구자의 주관적 평가로 치부하기엔 위성 영상 분석 결과는 더 심각했다. 위성 서비스 토탈 솔루션 기업인 ‘텔레픽스’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마리안 소만 빙벽은 2016년 11월부터 2025년 3월까지 약 420m나 뒤로 물러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축구장 4개 이상을 일렬로 놓은 길이에 해당한다. 이 기간 동안 소실된 단면적은 약 1.6㎢로, 축구장 약 224개가 바다로 사라진 셈이다.

텔레픽스 위성활용팀 김지희 선임연구원은 “(마리안 소만 후퇴는) 육지로 생각하면 바닷물이 밀려와 해안가가 없어지는 것과 다름없다”며 “짧은 기간 안에 눈(目)으로 식별이 가능할 정도로 마리안 소만의 빙하가 변화한 것을 보면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체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극지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18년간 남극에서는 해마다 약 1,200억 톤의 빙하가 사라졌다. 그중 약 70%는 서남극 지역에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세종기지가 위치한 서남극이 동남극에 비해 상대적으로 온난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남극세종과학기지 앞바다 인근에서 1996년부터 지속 관측한 표층 수온을 살펴보면 평균 수온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 그래픽=이주희 기자, 사진=남극특별취재팀
남극세종과학기지 앞바다 인근에서 1996년부터 지속 관측한 표층 수온을 살펴보면 평균 수온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 그래픽=이주희 기자, 사진=남극특별취재팀

남극 바다의 평균 표층 수온은 0°C 이하다. 우리나라 바다의 평균 표층 수온인 약 16°C와 비교하면 남극 바닷물은 얼음물에 가깝다. 하지만 이마저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세종기지에서 1996년부터 지속적으로 관측하고 있는 수온 변화 데이터를 살펴보면 평균값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남극의 수온 변화는 일반적인 바다에서 일어나는 수온 변화에 따른 피해와 마찬가지로 같은 위험에 노출된다. 즉 해양생물의 서식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남극의 경우에는 먹이사슬에서 중요한 위치를 담당하는 ‘크릴새우’와 ‘옆새우’가 그 예다.

지난 1월 세종기지에 만난 ‘하계연구대 저서팀(인하대 해양동물학연구실과 한국해양대 해양생태학실험실 연구원들로 구성된 팀)’에 따르면 최근 남극 기온 상승으로 크릴새우와 옆새우를 포함한 저서생물들이 큰 피해를 입고 있다.

기온 상승은 수온의 상승을 동반함과 동시에 빙하를 녹이고, 이 경우 담수 유입으로 인근 바다의 염분 농도를 낮추는 현상을 발생시킨다. 이렇게 되면 삼투조절로 체내 염분 균형을 맞추던 저서생물들이 문제가 생긴다. 저서생물의 몸에서 염분의 감소와 과도한 수분 흡수로 인해 세포 파열이 발생한다. 결국 남극의 동물 생태계 먹이사슬에 영향을 미치는 결과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 남극 기온 상승으로 크릴새우와 옆새우를 포함한 저서생물들이 큰 피해를 입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사진=고종빈 서울대학교 농림생물자원학부 연구원

신영철 극지연구소장은 “남극바다는 열과 이산화탄소의 저장고다. 그동안 흡수원 역할을 하는 것으로 기후변화 완충기 역할을 했지만 이 역할이 예전같지 않다는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며 “남극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적도와 중위도까지 전달하는 원격상관 과정을 이해하는 것은 현실과 미래기후의 예측성 향상에 중요한 단서다. 저온극한환경에 적응 생존한 남극생태계의 생물다양성은 인류에게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남극의 기후변화 이야기는 단지 먼 극지방의 일이 아니다. 기온의 상승은 단순히 더워진 것이 아니라 해수면 상승을 일으켜 우리의 집을 위협할 수 있고, 뜨거워진 바다는 생태계를 붕괴시켜 우리의 식량주권을 빼앗을 수 있다. 결국 우리 모두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인 셈이다. 남극의 외침에 우리는 더 이상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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