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활동 중인 여섯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북에디터 정선영] 얼마 전 주말 본가에 갔다가 엄마와 다퉜다.
별것 아닌 일로 투덕이기 시작했는데, 내가 쓴 접시를 설거지하려던 내게 엄마가 말했다. “둬, 내가 하게.” 순간 그 말투에서 짜증이 느껴졌다.
평소에도 엄마가 내 집안일 상태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걸 아는 나도 기분이 상해 한마디 보탰다. “아니 왜 짜증을 내고 그래!” “아니 뭔 말만 하면 짜증 낸다고 해. 짜증 안 냈다니까!” 짜증 냈다, 안 냈다, 한참 실랑이가 이어졌다.
말이라는 게 참 어렵다. 처음부터 서로 싸우자고 든 건 아닌데 금세 싸움으로 번진다. 말로 인한 갈등이 비단 우리 집, 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엄마와 나의 말은 무엇이 문제였을까?
<신지영 교수의 언어감수성 수업>에 따르면, 가장 큰 문제는 ‘아니’로 시작한 말이다. 저자에 따르면 “생각보다 우리는 말의 시작을 ‘아니’로 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 ‘아니’에 어휘적 의미가 담겨 있든 아니든 상대에게 부정적인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먼저 내가 사용한 ‘아니’는 딱히 엄마 말을 부정하려는 뜻은 아니었다. 말 첫머리에 습관적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내게 그런 의도가 없었다 하더라도 듣는 엄마 입장에서는 분명 부정적인 느낌을 받았겠다.
돌이켜보니 나는 평소에도 ‘아니’로 대화를 시작하는 일이 잦다. 단순히 수다를 떨고자 친구에게 카톡으로 말을 걸 때도 ‘아니, 내가 말이야’로 시작했다.
나뿐만은 아닌 듯하다. ‘아니시에이팅’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니. 아니시에이팅은 “‘아니’라는 말에 ‘개시를 뜻하는 initiating’을 붙여서 만든 말로 특히 게임 사용자 사이에서 남 탓의 시작을 알리는 말”이라고 한다.
대화 중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를 쓰는 일도 잦다. 내 말을 내 의도와 다르게 상대가 받아들이는 경우, 내 딴에는 오해를 남기지 않기 위해 바로잡으려 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내가 일단 상대 말을 부정하고 든다는 느낌을 받았겠다. 그러니 대화가 점점 더 불가능해졌겠지. 말이란 게 참 어렵다.
책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담화 표지 ‘아니’는 화제가 바뀌는 위치에서는 사용되지 않고, 기존 화제를 지속하는 과정에서만 사용되며, 세 가지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첫째 화제의 내용이 예상에서 벗어남에서 오는 의아함이나 당황 등의 감정 표현을 위한 것, 둘째 자신의 의도를 해명하고 부연하기 위해 화제를 지속하기 위한 것, 셋째 발언권을 획득하고 청자의 주의를 집중시키기 위한 것이다.”(책 86쪽)
저자는 ‘아니’만 주의해서 써도 대화 중 갈등이 줄어든다고 말한다. 대화 중 튀어나오는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를 신경써야겠다. 상대 말을 부정하고 보니 말이다.
이 외에도 책에는 자신 말버릇을 돌아보고 ‘언어감수성’을 높여 불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실려 있다. 대화 자체와 이로 인한 관계의 어려움이 고민인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
흔히 말에는 온도가 있다고 한다. 나아가 저자는 ‘우리는 말에서 다양한 감촉을 느낀다’고 말한다. “내 말은 어떤 감촉으로 상대에게 다가가고 있을까? 나는 어떤 감촉을 느끼게 하는 말을 주로 사용하고 있을까?”(95쪽) 이런 질문만으로도 소통이 한결 수월해지겠다.
다시 엄마와 나의 대화를 돌이켜본다. 지난 주말은 더웠다. 더위에 둘 다 살짝 짜증이 난 상태였고, 더구나 나는 알레르기로 예민했다. 엄마는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을수록 떨어지는 청력에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모든 상황을 그때도 인지했으면 좋으련만.
역시나 말과 대화에서는 상호 간 이해와 존중이 가장 중요하다.
|북에디터 정선영. 책을 들면 고양이에게 방해받고, 기타를 들면 고양이가 도망가는 삶을 살고 있다. 기타와 고양이, 책이 행복하게 공존하는 삶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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