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위크|거제=박설민 기자 ‘해양연구선(RV)’은 일명 ‘바다 위의 연구실’이라 불린다. 각종 첨단장비를 싣고 해양 자원, 생물, 수온, 기상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진행한다. 때문에 해양연구선 성능은 곧 국가 해양과학 연구·산업 경쟁력과 직결된다고 볼 수 있다.
현재 국내선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이 해양연구선 운영의 중추 역할을 맡고 있다. KIOST는 이사부호부터 온누리호, 이어도호에 이르기까지 여러 해양연구선을 운용 중이다. 특히 ‘이어도호’는 1992년 3월 취항 이후 33년, 6,894일간 68만km를 항해하고 지난해 11월 퇴역했다. 말 그대로 한국해양과학의 역사 그 자체다.
이런 이어도호의 정신을 이어받는 ‘이어도2호’가 5월 20일 공식 취항했다. 기존 이어도호보다 대폭 강화된 성능의 선체와 장비를 갖췄다. ‘시사위크’에서는 거제 KIOST 남해연구소를 방문, 이어도2호가 그려 갈 한국의 해양과학연구의 미래를 확인했다.

◇ 이어도2호, 韓해양과학 미래 안고 취항
‘쨍그랑!’
거제시 장목면 KIOST 남해연구소 부두 앞. 배에 부딪힌 샴페인병이 경쾌한 소리와 함께 하얀 거품을 내뿜으며 산산조각났다. 이어도2호의 취항을 알리는 ‘샴페인 브레이킹(Champagne Breaking)’이었다. 새로운 배의 탄생을 알리고 안전운항을 기원하는 의식이다.
20일 오후 2시 열린 ‘이어도2호 취항식’ 현장이다. 이날 행사에는 해양수산부 김명진 해양정책관, 거제시의회 신금자 의장, KIOST 현정호 이사장, KIOST 이희승 원장, 이어도2호 진성일 선장 등 정부, 지역사회, 유관기관의 관계자와 KIOST 직원 등 약 200여명이 참석했다.
이번에 취항하는 이어도2호는 노후화된 기존 연구선 이어도호를 대체해 건조된 신규 연구선이다. 이어도호의 운용 기간이 길어지면서 안전성, 기능성 등이 저하되자 2015년 KIOST는 이어도호 대체 선박 건조를 경영성과계획서에 반영, 본격적 건조 논의를 시작했다.


대체 선박 건조 논의를 마친 KIOST는 2018년 12월 ‘한국선박기술’과 이어도2호 설계용역계약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2019년 9월 설계용역이 종료될 때까지 9개월 간 총 38차에 걸친 설계 및 기술 검토를 진행했다. 이후 2022년 9월 KIOST 수요기관으로 조달청과 ‘아시아조선’간 건조계약이 체결돼 건조가 시작됐다.
박정기 KIOST 첨단인프라운영센터장은 “지난 33년간 지구를 15바퀴 도는 대장정을 마치고 명예롭게 퇴역한 이어도호를 대체하기 위해 KIOST는 총력을 기울였다”며 “이번 이어도2호 취항의 의미는 KIOST의 오랜 숙원인 전문연구선단 운영체제의 한 축이 완성됐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이희승 KIOST 원장은 “오늘날 바다는 단순히 자원의 보고를 넘어 인류의 생존과 지속 가능한 번영을 위해 가장 중요한 근간으로 재조명되고 있다”며 “이러한 사황에서 새로운 역사를 향해 출항하는 이어도2호는 한 척의 연구선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말했다.
이어 “새롭게 출항하는 이어도2호는 새로운 30년간 한국의 해양과학기술 미래를 이끌 주역이 될 것”이라며 “해양 주권의 확보를 넘어 해양 지식 주권을 선전해야 하는 지금, 이어도2호와 KIOST는 그 중심에서 국가 해양 정책의 방향을 과학 기술로 제시할 것”이라고 전했다.

◇ 한층 진화한 ‘이어도2호’… 첨단장비로 중무장
오랜 기간 신중한 기술 검토를 마치고 완성된 이어도2호는 기존 모델보다 대폭 향상된 성능을 자랑한다. 기존 이어도호는 357톤급 선박으로 승선인원 32명, 항해속도 12노트, 전장 49m, 선폭 8.6m이다. 반면 이어도2호는 732톤으로 두 배 이상 커졌다. 전장은 62m, 선폭은 11.6m다. 또한 최대 항해속도도 13.5노트로 빨라졌다. 승선인원은 32명으로 동일하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연구장비다. 이어도2호는 34종의 연구·관측장비를 탑재했다. 기존 이어도호(20종)보다 14종 많다. △지구물리·해저지형 탐지장치(Multibeam Echosounder for Shallow/deep water) △중음향·수중생물 밀도·분포탐지장치(Scientific echosounder) △실시간 화학·항해 측정시스템(Underway CTD System) △극저온 냉동 시료 보관(Ultra-low-temperature freezer) 등이다.

선박 운행 능력도 대폭 향상됐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동적위치제어시스템(Dynamic Positioning, DP)’이었다. 이는 첨단 프로펠러 및 전방위 추진기(Azimuth Thruster) 이용, 선박의 위치와 방향을 자동으로 유지하는 컴퓨터 제어시스템이다. 이를 활용하면 거친 바다 위에서도 이어도2호는 지정된 위치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1,000톤 이하 연구선 중 이 시스템을 적용한 것은 이어도2호가 처음이다.
이어도2호 운행 책임자인 진성일 선장은 “동적위치제어시스템은 두 개의 스러스터와 컴퓨터 시스템을 이용해 오차범위 3m 이내로 바다 위에서 배가 움직이지 않게 유지시켜준다”며 “해양 연구선은 시료 채취, 수온 측정, 해저 탐사 등 작업 때문에 제자리에서 머무르는 경우가 많아 동적위치제어시스템 성능이 연구 성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어도2호는 ‘고정식 예인체 수중 위치 측정 시스템’도 갖췄다. 이는 잠수정, 수중 글라이더, 시료 채취 장비 등 수중과 해저에서 운용하는 장비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장치다. 해수 및 대기 순환 특성과 해양기인성 기후 변화를 규명하는 데 한층 정확한 관측 자료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KIOST 측 설명이다.
20일 취항식을 마친 이어도2호는 21일 오전 11시 거제 남해연구소에서 공식 출항했다. 진성일 선장에 따르면 첫 번째 임무는 서해 해양위성센터 작업이다. 이후 제주해협으로 이동해 난류 연구를 나설 예정이다. 8일 간 임무를 마친 후 29일 다시 연구소로 복귀한 후, 보급을 받아 30일 다시 출항할 계획이다.
진성일 선장은 “해양과학연구의 성과를 결정 짓는 요인 중 하나는 넓은 바다에서 얼마나 정확히 중요한 곳을 찾아 관측하는가라고 볼 수 있다”며 “연구자들이 원하는 위치에서 시료를 채집하고 조사할 수 있도록 이어도2호는 최적의 연구환경을 갖춘 연구선”이라고 말했다.

◇ 해양연구선, “과학연구 넘어 경제적 가치도 막대”
이어도2호의 출항에 해양과학계가 거는 기대도 매우 크다. 넓은 바다는 무한한 발전 가능성이 잠들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해양 연구는 곧 미래 에너지, 과학, 기후, 국방 등의 국가 경쟁력과 연결된다. 글로벌시장조사업체 ‘폴라리스마켓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해양 경제 시장 규모는 2025년 2조838억7,000만달러에서 2034년 3조7,829억 6,000만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해양연구선 성능은 국가 해양기술산업 발전, 연구 성과와 직결된다. 해양연구선 성능이 높으면 국가 경제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는 연구 사례도 있다. 루마니아의 ‘오비디우스 대학교(University Ovidius, Romania)’ 대학교 연구진이 2023년 발표한 보고서가 대표적 예다.
오비우스 대학교 연구진은 “흑해 지역에서 운용되는 해양연구선에 대한 경제성을 분석한 결과 연구선은 다양한 환경에서 해양 환경을 연구하고 지원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며 “흑해 유역에서 연구선 활용이 많아지면 고품질 교육, 연구 기회가 확대될 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와 관련된 해양 경제에 귀중한 혜택을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국내 기술로 건조된 이어도2호의 안정적 운행은 곧 한국 선박 기술력을 글로벌 시장에 알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실제로 해양연구선 시장은 매년 성장하는 추세로 새로운 과학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글로벌시장조사업체 ‘베리파이드마켓리서치’에 따르면 해양연구선 시장 규모는 2033년 81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이에 따라 KIOST는 이번 이어도2호를 시작으로 ‘온누리호’의 대체선 건조 사업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온누리호는 지난 1992년 취항해 33년간 운용되고 있는 한국 최초의 종합해양조사선이다. 이어도호와 동갑이다. 때문에 부품 부족, 장비 노후화 등으로 대체선 건조가 필요한 시점이다.
박정기 KIOST 첨단인프라운영센터장은 “이어도2호는 최소 20~25년 이상을 항해하게 될 배”라며 “향후 해양연구선의 건조는 미래 연구수요를 예측해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희승 KIOST 원장은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이어도2호는 우리나라 주변 해역의 급변하는 해양 환경, 기후, 해양 생태계를 감시하고 데이터를 수집하게 될 것”이라며 “이를 통해 단순 연구를 넘어 국가 정책과 해양산업의 과학적 근거를 제시할 떠다니는 연구소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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