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혜영’을 만나 비로소… ‘파과’

시사위크
배우 이혜영이 영화 ‘파과’로 대체 불가 존재감을 입증했다. / NEW, 수필름
배우 이혜영이 영화 ‘파과’로 대체 불가 존재감을 입증했다. / NEW, 수필름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관록의 배우 이혜영이 영화 ‘파과’(감독 민규동)로 관객 앞에 섰다. 독보적인 카리스마로 유례없는 캐릭터를 완성한 그는 “쓸모 있는 배우로서 모두와 함께 가는 걸 경험한 현장이었다”고 ‘파과’ 그리고 ‘조각’과 함께한 순간들을 떠올렸다. 

이혜영은 영화 ‘소설가의 영화’ ‘당신얼굴 앞에서’ 등 스크린은 물론,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카지노’, 드라마 ‘우리, 집’ 등과 연극 무대까지 종횡무진 활약하며 대체 불가 연기력과 존재감으로 대중을 매료해 왔다. 

‘파과’에서도 이혜영의 내공을 확인할 수 있다. 바퀴벌레 같은 인간들을 처리하는 조직에서 40여 년간 활동한 레전드 킬러 ‘조각(이혜영 분)’과 평생 그를 쫓은 미스터리한 킬러 ‘투우(김성철 분)’의 강렬한 대결을 그린 영화에서 그는 모든 킬러들이 열광하면서도 두려워하는 전설적인 킬러 ‘조각’으로 분해 강렬한 에너지로 스크린을 압도한다. 

‘조각’은 40여 년간 바퀴벌레 같은 인간들을 방역하며 ‘대모님’이라 불리고 전설로 추앙받지만 시간이 흐르며 점차 한물간 취급을 받는 인물이다. 자신을 쫓는 미스터리한 킬러 ‘투우’의 등장으로 생애 마지막 방역을 준비하게 된다. 

이혜영은 특유의 카리스마와 존재감으로 전에 없던 강렬하고 독보적인 여성 캐릭터를 빚어낸 것은 물론, 노련미 넘치는 액션까지 완벽 소화하며 장르적 쾌감을 더했다. 이혜영은 최근 시사위크와 만나 개봉 소감부터 작품을 택한 이유, 촬영 비하인드 등 ‘파과’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강렬한 캐릭터를 완성한 조각 역의 이혜영. / NEW, 수필름
강렬한 캐릭터를 완성한 조각 역의 이혜영. / NEW, 수필름

-개봉 소감은. 

“베를린영화제에서 처음 공개했을 때 기세등등했는데 국내 시사회 때 긴장되고 초조하고 불안하더라. 다행히 쏟아지는 모든 것들이 칭찬 일색이라 감사한 마음이다. 한국 관객이 영화를 보는 수준이 높잖나. 어떻게 봐줄지 궁금하다.”

-말한 것처럼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스스로 만족도는 어떤가.

“난 사실 한 게 없다. 조각은 감독님이 꼭 이혜영으로 해야겠다 상상한 대로 만든 거다. 옷 입는 것부터 걸어가는 것까지 모든 걸 제약받았다. 어떤 대사를 하면 너무 귀엽다고 안 된다고 하고 어떤 장면에서 분노하면서 울려고 했더니 울지 말라고 하고 모든 면에서 절제시켰다. 일일이 코치받고 계산된 연기였다. 촬영 내내 불안했다. 부상을 계속 입는데 다치기만 하고 보람이 없으면 어떡하지 싶기도 했다. 나이를 먹어서 부상 회복이 더디거든. 이 도전이 어떤 결과를 맞게 될까 싶었고 일지도 매일 썼다. 주로 감독님에 대한 원망과 현장에서의 어려움, 나를 괴롭히는 열 가지도 넘는 상황들이었다.(웃음) 그런데 한구석에는 나의 원망이 마지막에는 미안함으로 바뀌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엄살을 떨고 그랬지만 그러길 강하게 원했다. 베를린영화제에서 처음 영화를 보는데 감독에게 미안해지고, 다 생각이 있었구나 싶더라. 내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좋았다.”

-쉽지 않은 캐릭터, 작품이었다. 택한 이유는. 

“원작 소설을 알지 못했는데 민규동 감독이 이런 영화를 할 거라고 책을 읽어보라고 해서 읽었다. 그때 읽고 나서는 별로 이런 할머니 하고 싶지 않은데 싶었다. 잘 어울리지도 않을 것 같고. 다만 한 가지 느낀 매력은 ‘파워’였다. 그 여자가 가진 파워가 궁금했고 수수께끼 같았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민규동 감독의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를 되게 좋아했다. 그 작품을 보면서 굉장히 버라이어티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사실 뮤지컬 영화가 하고 싶어서 배우를 한 건데 그때는 한국이 그런 시절도 아니었고 지금도 익숙하지 않잖나. 그런데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를 보면서 민규동 감독이 뮤지컬 영화를 할 수 있는 유일한 감독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지점에서 민규동 감독이 ‘파과’도 다른 결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또 배우로서 새로운 도전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결정했다.”

-액션도 큰 도전이었다. 어땠나. 

“모든 게 다 힘들었다. 스턴트가 다섯 바퀴 구르면 난 세 바퀴는 굴러야 감정이 맞잖나. 그 친구(대역)는 그 친구대로 힘들었을 거다. 그 친구는 빠르고 나는 ‘엉금’하니까 그 ‘엉금’을 맞추는 게 쉽지 않았을 거다. 그런 어려움이 있었지만 ‘피도 눈물도 없이’(2002) 할 때 정두홍 무술 감독에게 훈련된 기억이 있었던 것 같다. 류승완 감독도 액션이 되는 사람이고 정두홍 무술 감독도 최고잖나. 최고들에게 맨 처음 학습된 게 있었다. 다만 이 작품에서는 아파도 너무 아파하면 안 되고 쿨하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야 했다. 모든 걸 조용하게 해야 했다. 그 지점이 힘들었다. 감정을 기술적으로 하면서 액션을 순간적으로 해야 하는 것들. 나는 순발력이 떨어지고 한참 연습 후에 발휘되는 사람인데 여기서는 갑자기 요구되는 것들을 바로 표현해야 하는 것들이 많았다. 그런 것들을 이번에 아주 새삼 경험했다.”

이혜영이 액션 비하인드를 전했다. / NEW, 수필름
이혜영이 액션 비하인드를 전했다. / NEW, 수필름

-가장 힘들었던 액션 신을 꼽자면. 

“로프 타고 내려오는 것도 힘들었고 맞고 넘어지는 것도 힘들었다. 갈비뼈가 나가기도 했다. 부딪혔는데 부딪히고 나서 계속 촬영을 강행해야 했다. 낮은 포복 자세 비슷하게 쪼그려 앉아야 하는데 원래 그 장면에서 내가 못할 것 같아서 나를 태우고 가려고 썰매를 만들어놨는데 리허설을 했는데 내가 한 번에 된 거다. 그래서 촬영도 하게 됐는데 뒷일 생각 안하고 그냥 했더니 무릎이 나가서 정형외과 갔다.(웃음) 제압하는 장면도 손에 힘줄이 안 나오니까 더 세게 하래서 더 세게 했다가 또 정형외과에 가고. 하하. 그런 게 힘들었다. 체력의 노쇠함을 느꼈다.”

-자연스러운 연기를 추구하는 홍상수 감독과 작업을 많이 했는데 민규동 감독의 현장은 어떻게 달랐나. 

“홍상수 감독은 아예 대본이 없으니까 아무런 선입견도 없이 그냥 눈곱만 떼고 나가는 거다. 화장하지 말라고 하니까. 그런데 민규동 감독은 완전 강철 콘티다. 어떨 때는 수정에 수정을 해서 3개의 수정본이 쌓인다. 전날 그러면 그걸 다 봐야 하니 너무 피곤한 거다. 그래서 그냥 대충 어떤 분위기일 거라고 생각하고 내 머릿속에 다른 시나리오를 갖고 현장에 나간다. 현장에 가면 벌써 세팅이 다 돼 있고 대역하는 친구가 연기를 다 한다. 그러면 나는 인형처럼 딱 들어가서 대역이 한 것처럼 해야 하는 거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못한다고 했다.

처음에 감독과 되게 부딪혔다. 감독이 대본을 꼭 보고 나오라고 하더라. 100명 가까운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할 거라고 약속하고 나왔는데 나 혼자만 안 하고 나와서 ‘나 여기 앉아 있기 싫은데’부터 시작을 하니까. 이 감정이 맞냐 틀리냐가 아니라 혼자 시작부터 다른 이야기를 하니까. 감독이 ‘나도 선배가 정해진 프레임 안에서 인형처럼 하는 거 싫다, 그러니 그 안에서 최선을 찾으라’고 하더라. 내가 어떤 배우인지 알았으니 자신도 신경 쓰겠다고. 모든 걸 완벽하게 해야 하니까 대역이 있었고 배우가 힘들까 봐 그렇게 한 거라는데 배우는 고통이 있어야 액팅이 나오는 거거든. 너무 편하면 안 된다. 나는 어떻게든 고통을 느끼기 위해 노력하거든. 우리 영화에도 ‘쓸모’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내가 쓸모 있는 배우가 되려면 민규동 감독과 지금 이 프로세스 안에서 살아남아야겠다 싶더라. 민규동 감독 작품을 통해 이 프로세스 안에서 내가 살아남는 것, 쓸모 있는 배우로서 모두와 함께 가는 걸 경험했다.”

-‘조각’의 마지막 촬영이 끝나고 민규동 감독이 현장에서 오열을 했다고. 

“내가 제일 먼저 울었다. 잘 기억은 안나는데 신나고 좋아서가 아니라 방향성을 잃은 듯한 느낌이었다. 조각을 완성하기 위해, 오로지 그 생각만 하고 무사히 완수하겠다는 의지로만 왔는데 끝나니까 폭발했나 보다. 어디로 가야 하지 그런 생각을 한 것 같다.”

-평소에도 일지를 쓰는 편인가. 

“‘우리, 집’ 할 때부터 일지를 썼다. 일기는 쓴 지 오래됐는데 일종의 정신질환인 것 같다. 일지는 기록하는 느낌, 기억하는 느낌으로 쓰는데 일기는 내 마음을 막 쓴다. 그리고 그다음 날 읽으면 아주 이상하다. 그것 때문에 기분이 더 나쁘다. 기분 좋아지기 위해서 쓰는 건데 나를 더 불쾌하게 하면 다 태워버렸다. 다 태워버리고 다시 쓰고 후회되는 것은 찢어버리고 감정적으로 그랬다. 남기지 않는 게 좋은 것 같긴 하다.”

어떤 캐릭터를 만나도 전형성이 벗어난 연기를 보여주는 이혜영. / NEW, 수필름
어떤 캐릭터를 만나도 전형성이 벗어난 연기를 보여주는 이혜영. / NEW, 수필름

-배우는 남기는 직업이잖나. 

“그래서 내가 연극을 좋아하는 것 같다. 연극은 일회성이잖나. 영화는 감독예술로 완성된 것만 들어가지만 연극은 공연 중에도 계속 바뀐다. 연출가가 참견을 못한다. 통제를 못한다. 완벽하게 배우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연극은 아무리 기록해도 그 현장의 감동을 전할 수 없다. 매번 새로운 관객이 올 때마다 익숙한 것을 다 버리고 새로운 컨디션으로 하게 된다. 연극이야말로 노련함과 청초함이 동시에 요구된다. 관객에 따라 잘 될 때가 있고 안 될 때가 있다. 그때그때 다르다. 그 현장성과 일회성이 너무 마음에 든다.”

-매 작품, 어떤 캐릭터를 만나도 전형성을 벗어난 연기를 보여준다. 그 힘은 무엇일까. 

“‘조각’의 힘이 원천이 무엇인가에 대해 수수께끼 같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혜영의 연기 원천을 묻자면 말 안 듣기다. 열심히 막 준비를 해서 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대충 무드만 머릿속에 가지고 다른 시나리오를 들고 나가는 것, 통제를 받지 않는 액팅. 그런데 민규동 감독은 그런 스타일이 아니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자른 거다. 잘 잘리면 좋은 게 나올 것이고 너무 잘리지 않으면 다른 세계에서 혼자 하고 있는 걸 거다. 누가 통제하려고 한다고 해서 잡히는 것도 아니고 쉽지 않은데 이번에는 어떻게 통제가 잘 돼서 영화가 성공적으로 나온 것 같다.”

-‘날 것’의 연기에 대한 믿음, 자신감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사실 나는 언제나 나를 통제해 주길 바랐다. 늘 마음대로 살 수 있는 게 두려웠다. 나는 결혼과 자식, 안정된 가정 속에서 연기도 안정적이 된 것 같다. 오히려 되게 필요했던 것 같다. 굉장히 심리적으로 불안했다. 그나마 직업이 배우라 그런 걸 들켜도 용서가 되고 이해가 되는 것들이 있어서 넘어온 거지 사실은 굉장히 불안하고 힘들게 살았다. 그런 지점에서 연기가 나를 살아남게 했을 수도 있고. 다만 그렇다고 통제만 당하는 것은 내 삶을 더 불편하게 하는 거다. 나는 내 방식대로 살았을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연기도 한 거다. 그러다 보니 그런 연기가 나왔을 거다. 연기만 따로 떼어놓고 볼 수는 없는 거다. 그렇다고 내가 연기하면서 ‘난 신이야, 잘났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영화는 ‘조각’을 통해 인간의 ‘쓸모’와 ‘나이 듦’, ‘존재 이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떤 생각, 공감을 했나. 

“내가 배우를 시작한 그 시절에는 여자배우의 역할, 여자배우의 존재는 남자의 상대적 존재였다. 욕망의 대상 같은. 그 외의 롤은 코믹한 역할이라든가 세고 귀신 같은 거였다. 그런데 한참 전부터 남자의 상대적 역할이 아닌 독립적인 여성 캐릭터로 다양해지긴 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멜로 여자 주인공이 웃긴다고 볼 순 없는 거다. 우리가 그때보다 훨씬 더 대단해진 것처럼 착각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 그래서 나는 여자 역할을 하는 여배우로서의 늙음, 여자로서의 나이 듦을 다 떠나서 한 인간으로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할도 마찬가지고. 여자의 한계를 넘어선 한 인간으로서, 늙든 젊든 여자든 남자든 다 떠나서 한 인간의 존재로 생각해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조각’을 하면서도 특별히 늙은 여자라는 생각을 한 적은 없고 그녀가 놀랍게도 지니고 있는 힘, 그것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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