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김두완 기자 트럼프의 공화당이 패했다. 상·하원 선거에서 모두 패하면서 민주당에 의회 주도권을 내준 결과가 이재명 정부의 대미 협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의회의 견제가 강화되면 한국도 대미투자와 군사적 기여의 속도를 조정할 여지가 생길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앞세워 합의 이행을 재촉할 가능성도 남아 있다. 달라진 미국의 정치 지형 속에서 협상 여지를 확보할 이재명 정부의 대응이 주목된다.
◇ 투자 약속과 집행은 별개… 한국이 확보한 조정 권한은
3일(현지시간)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하원 다수당 지위를 모두 확보했다. 내년 1월 3일 새 의회가 출범하면 트럼프 행정부는 예산과 입법 과정에서 야당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민주당은 청문회를 열고 자료 제출을 요구할 권한도 갖는다. 대통령과 합의하면 의회의 지원도 기대할 수 있었던 기존의 협상 환경이 달라진 것이다. 한국의 대미 협의에서도 행정부의 약속과 의회가 허용할 범위를 구분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를 잃었다고 기존 정책이 모두 멈추는 것은 아니다. 관세가 대표적이다. 미국 의회는 ‘무역확장법’ 제232조와 ‘무역법’ 제301조 등을 통해 대통령에게 관세 권한을 위임해왔다. 민주당이 이를 제한하는 법안을 추진하더라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선거 패배로 국내 입법이 어려워진 트럼프 대통령이 오히려 행정부 권한을 활용한 대외 압박에 집중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한국으로서는 민주당의 승리만으로 통상 부담이 줄었다고 보기 힘든 이유다.
대미투자는 사정이 다르다. 한미가 합의한 3,500억 달러는 사업 선정과 인허가, 공사 진행 등을 거쳐 집행된다. 이미 자금이 투입된 사업과 검토 중인 사업도 환경이 달라지게 된다. 미국 의회의 감독으로 사업 조건이 바뀌거나 행정 절차가 지연되면 필요한 자금과 투입 시점도 달라질 수 있다. 투자 약속을 유지하는 것과 개별 사업에 예정대로 돈을 보내는 것은 별개의 판단이 되는 셈이다.
이 지점에서 한국의 협상 여지가 생긴다. 미국 측 인허가와 지원이 확정되지 않은 사업이라면 그에 맞춰 자금 집행 조건을 협의할 수 있다. 반대로 이미 계약이 체결되고 공사가 진행 중인 사업을 정치 상황을 이유로 늦추면 비용이나 계약상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 ‘투자를 서둘러야 한다’거나 ‘일단 기다려야 한다’는 일괄적인 대응으로는 사업별 차이를 설명하기 어렵다. 집행을 조정할 수 있는 조건과 지연에 따른 책임이 어디까지 정해져 있는지가 협상의 기준이 된다.
미국 의회의 견제가 한국에 협상 시간을 벌어줄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사업 검증이 길어지더라도 트럼프 행정부는 투자 이행을 재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집행 시점을 조정하려면 인허가 지연이나 사업성 변화에 따라 조건을 바꿀 수 있는 근거가 필요하다. 결국 투자 약속을 유지하면서도 실제 자금 투입은 사업 진행에 맞춰 조정할 수 있느냐가 이재명 정부의 협상력을 가를 것으로 보인다.
◇ 미국 전쟁 정책도 변수… 군사적 기여 범위 정할 한국 국회
안보 협의에서도 미국 의회의 권력 교체가 변수로 꼽힌다. 미국 민주당은 이란 전쟁에 반대하며 의회의 승인과 예산 통제를 요구해왔다. 지난 5월 미국 하원에는 이란에 대한 군사력 사용에 자금을 쓰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도 발의됐다. 의회가 예산을 제한하면 행정부의 작전 수행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다만 법안 처리와 대통령 거부권 등의 절차가 남아 있어 민주당의 승리를 곧바로 종전이나 군사활동 축소로 연결하기는 어렵다.
미국의 향후 전쟁 수행 방향이 불확실한 가운데 한국 정부는 군사적 기여 범위를 구체화하고 있다. 5일 정부 차관회의를 통과한 청해부대 파견 연장 수정 동의안은 작전구역을 기존 아덴만 일대에서 오만 남방 외해까지 확대하는 내용이다. 해상초계기와 폭발물처리반, 무인 소해장비 등을 추가하고 파견 인원은 320명 이내에서 395명 이내로 늘린다. 정부는 국무회의 심의와 대통령 재가를 거쳐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다만 정부는 호르무즈 해협 파병에는 선을 그었다. 확대 구역에 호르무즈 해협과 맞닿은 오만만은 포함되지 않으며 전쟁에 관여하거나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새 임무에 추가된 ‘국제 해상교통로 상 항행의 자유 회복 지원’은 종전이나 미국·이란 간 합의 등으로 활동이 가능한 여건이 조성될 경우를 대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국방부는 호르무즈 해협에서 별도 임무를 수행하려면 추가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진보당은 이를 ‘우회 파병’으로 규정했다. 노정현 수석대변인은 이날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에서 해적 대응이 목적이라면 기뢰 제거 장비와 폭발물처리반, 대잠 초계기가 왜 필요하냐고 따졌다. 정부가 직접 참여를 부인하더라도 전력 보강 자체가 분쟁 개입을 준비하는 조치라는 주장이다. 청해부대 파견의 근거로 제시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와 헌법에 위배된다는 주장도 제기하며 동의안 철회를 요구했다.
이제 판단은 한국 국회로 넘어오게 된다. 헌법 제60조는 국군의 해외 파견에 대한 국회 동의권을 규정하고 있다. 정부가 제시한 작전구역과 추가 임무가 전쟁 비개입 원칙에 부합하는지, 향후 호르무즈에서의 활동과는 어떻게 구분되는지가 심의의 쟁점이 될 전망이다. 미국 의회가 전쟁 수행을 제약할 가능성이 제기된 만큼 한국의 기여 범위를 확정하는 시점도 중요해졌다. 미국의 정책 변화에 따라 임무를 조정할 수 있는 조건을 어디까지 마련할지는 정부와 국회의 판단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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