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김하영 기자]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신드롬을 일으킨 유인식 감독이 김유정과 함께한 '100일의 거짓말'로 또 하나의 인생작을 만들어가고 있다.
tvN 20주년 특별기획 토일드라마 '100일의 거짓말'이 빈틈없는 완성도와 차별화된 작품성으로 연일 호평받고 있다. 특히 '작감배'의 시너지가 회를 거듭할수록 빛을 발하는 가운데 유인식 감독은 특유의 디테일하고 감각적인 연출로 드라마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에 중반부로 접어드는 7회 방송을 앞두고 유인식 감독이 작품과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전했다.
3년 전 기획안과 초고를 처음 접했다는 유 감독은 "독특한 설정과 장르에 마음이 끌렸다. 원래부터 시대의 격랑 속에서 벌어지는 러브스토리나, 레지스탕스가 등장하는 첩보 장르에 대한 동경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며 "그런데 기획안의 문구를 읽어 나가면서 가슴속에서 뭔가 뜨끈하게 번져오는 것이 느껴졌다. 장르의 클리셰에 갇혀 있지 않은 인물들, 매 순간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치열한 선택을 해 나가는 인물들이 거기 있었다. 이 인물들을 따라가다 보면 서서히 달아올라 마지막에는 아주 뜨거운 이야기가 만들어질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특히 경성역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그리고 주인공 이가경이 그곳에서 소매치기로 등장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며 "기차와 철도는 근대화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침략과 식민 지배의 수단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당시의 경성역은 일제강점기의 조선, 특히 경성을 보여줄 수 있는 상징적 공간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육중한 기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흰 증기 속에서 멀리서 온 낯선 사람들과 떠나는 사람들, 그들이 떠드는 여러 언어가 뒤섞이는 공간이 낯설면서도 흥미롭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증기 속에서 주인공들과 악인이 모두 등장하는 시작이 근사할 것 같았다"고 떠올렸다.
이가경이라는 인물에 대한 첫인상에 대해 유 감독은 "그곳에서 소매치기로 등장하는 주인공 이가경의 캐릭터도 무척 매력적이었다. 재능 있고 똑똑하고 짓궂고 통통 튀는, 그러나 이 땅에서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절망에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하는 인물이 선명하게 그려졌다"며 "그녀의 캐릭터야말로 이 시대를 다룬 종전의 시대극과는 다른 궤적으로 이 드라마를 쏘아 올리게 하는 강력한 추진력이 될 거라는 느낌이 왔다"고 밝혔다.
'100일의 거짓말'만의 차별점으로는 '첩보 로맨스'라는 장르적 재미를 꼽았다. 유 감독은 "밀정이라는 설정에서 비롯되는 긴장감, 적의 마음을 얻으려다가 사랑에 빠지는 역설적인 상황, 칼날 위에 서 있는 듯 위태로운 연인들의 가슴 아픈 러브스토리가 있다. 알콩달콩한 로코(로맨틱 코미디) 시퀀스가 있는가 하면, 숨 쉴 틈도 없이 몰아치는 첩보 액션 시퀀스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제국의 야욕과 모던의 열기 속에서 일어, 영어, 중국어가 혼재하던 경성을 배경으로 통역생이라는 신분을 가진 주인공들이 활동하는 까닭에 외국어로 소통하는 장면이 많다는 점도 독특하다"며 "통역이라는 소통의 과정과 첩보가 결합하면서 발생하는 독특한 서스펜스를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조국의 독립이라는 대의를 위해 자신을 던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면면히 흐르고 있다. 오래도록 남을 묵직한 감동을 전해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무엇보다 유 감독은 주요 배우들을 향한 깊은 애정과 신뢰를 드러냈다.
먼저 김유정에 대해서는 "반짝이는 기지와 순발력, 능청스러운 연기력, 그리고 감출 수 없는 미모. 이가경을 묘사하는 단어들을 나열해 보면 김유정 배우가 얼마나 이 역할에 딱인지 새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가경이라는 인물이 가진 에너지다. 지긋지긋한 가난과 혹독한 멸시도 그의 생기를 꺾을 수 없다. 터지기 직전의 샴페인처럼, 이미 불이 붙어버린 불꽃처럼, 세상을 향해 날아오르려는 그의 의지를 무엇도 막을 수 없다"며 "실제로 만난 김유정 배우에게도 바로 그런, 어떤 임계점에 다다른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리고 예상대로 이 드라마에서 김유정 배우는 말 그대로 터져 나오고 날아오르고 불꽃처럼 타오른다. 그 빛나는 모습을 시청자 여러분께도 보여드릴 수 있어서 설렜다"고 극찬했다.
박진영이 연기한 '사토 히데오/김태웅'에 대해서는 캐릭터의 불안과 순수함에 주목했다. 유 감독은 "자기 정체성에 대한 깊은 고민으로 흔들리는 청년이다. 겉보기엔 일본인으로 살기 위해서 아등바등하는 것 같지만, 그 내면은 조선인으로서의 자의식과 번민으로 가득 차 있다. 그의 양심이 아직 때 묻지 않고 고결하다는 뜻이고, 한마디로 순진하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이어 "박진영 배우는 너무나도 맑은 눈을 가졌다. 그 눈을 보고 있노라면 '청춘'이라는 단어가 바로 떠오른다. 사토 히데오가 상처받거나 흔들리거나 감동할 때, 배우 박진영의 눈이 미세하게 떨리고 눈물이 비치는 순간마다 마치 내가 언젠가 같은 감정을 느꼈던 바로 그 순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는다"며 "그런 느낌을 줄 수 있는 배우는 드물다고 생각한다. 허세가 없는 깨끗한 연기와 맑은 심성 때문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현주가 맡은 '유소란'은 배우 본연의 아우라가 캐스팅의 결정적인 이유였다. 유 감독은 "정말로 가혹한 시련을 겪었고 오로지 복수만을 생각하며 한계까지 스스로를 몰아붙인 인물이다. 그러니 그 내면이 지옥이 되어 있어도 이상할 게 없는데, 구국단의 리더로서 사람들에게 믿음과 힘을 주는 성숙한 사람"이라며 "수다스럽지 않고 표정이 많지도 않은 인물이니 유소란을 연기할 배우 본인에게 그와 같은 아우라가 없다면 이 인물을 시청자들에게 설득하기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또 "김현주 배우는 깊고 따뜻한 사람이다. 수선스럽지 않고 스스로를 꾸며내지 않는 진솔한 사람이다. 바라보고 있으면 믿음이 가고 기대고 싶은 느낌이 있다. 그런 느낌은 절대로 단기간에 만들어질 수 없다. 스스로의 내면을 오래 가다듬어온 배우의 시간이 김현주의 크기와 깊이를 만들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고 신뢰를 드러냈다.
이무생에게서는 특유의 선과 분위기를 높이 평가했다. 유 감독은 "이무생 배우를 볼 때마다 '선이 좋다'는 느낌을 받는다. 조각 같은 얼굴에도, 서 있는 전신 샷에도 선이 살아 있다. 수트와 중절모 차림으로 조명 속에 서 있는 모습을 보면 누아르 장르의 그래픽 노블 속 한 페이지를 보는 것 같다. '이무생 로랑'이라는 별명은 단지 이름 때문만은 아닌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무생 배우는 어느 장면에서나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적확한 감정을 연기하면서도 어딘가 예상을 벗어나는 신선한 해석을 보여준다. 그만큼 항상 놀라움과 궁금증, 좋은 긴장감을 장면에 불어넣는 귀한 배우"라고 덧붙였다.
극 중 최종 빌런을 연기한 진선규는 카메라 밖에서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줬다고 한다. 유 감독은 "실제로 만나보니 과연 듣던 대로 유쾌하고 선량한 사람이었다. 현장에 나타나기만 해도 웃음꽃이 피어나는 배우가 두 명이 있었는데, 진선규 배우가 그중 한 명이었다. 다른 한 명은 '방꽃님' 역의 김라희 배우였다"고 떠올렸다.
이어 "그가 맡은 '사토 신이치'는 이 드라마의 최종 빌런이고 극악한 전범인데, 혹시 너무 착하게 보이면 어쩌나 슬그머니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이미 보셨다시피 터무니없는 기우였다. 편집실 화면 안에는 이글거리는 욕망과 악의에 불타는 섬뜩한 인간 사토 신이치가 있었다. 누구보다도 치열한 준비와 몰입의 결과였을 것"이라며 감탄했다.

유 감독은 작품 속 주요 장치인 '기송관'의 탄생 배경도 공개했다. 지난 방송에서는 조선총독부의 '기송관' 공사 현장이 등장해 시청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유 감독은 "조선총독부 내에 기송관 시스템이 건설되었다는 것은 실제 역사와는 다른 상상의 산물"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총독부 청사는 서구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일제의 열망과 '근대적 문명화'라는 식민 지배 명분을 거대한 스케일과 최신 기술(철근 콘크리트, 화강암 외장, 중앙집중식 난방, 엘리베이터 등)로 과시해 보이려는 의도가 깃든 건물이었던 만큼, 이미 미국과 일본에서 널리 사용된 기송관 시스템을 총독부를 중심으로 조선에도 구축하려 했다는 설정에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또 "서양의 최신 기술을 도입했기 때문에 통역이 필요한 상황이 많이 발생하고 흥미로운 첩보전의 소재가 되기 좋다고 생각했다"며 "극 중에서는 이 기송관 시스템 개통 행사가 총독부에서 심혈을 기울이는 중요한 사업으로 등장하며, 매우 긴장감 넘치는 이벤트의 배경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유 감독은 스무몇 해, 서른몇 해의 짧은 생을 조국에 바친 독립운동가들을 떠올리며 "그분들이 끝내 떼어놓고 나왔을 가족들의 따뜻한 손, 타국의 찬바람과 도망길의 고단함과 끔찍한 옥살이를 상상하면 그만 진저리가 쳐지곤 했다. 그분들은 젊디젊었고 나라를 잃어버린 책임도, 목숨 걸고 독립운동에 뛰어들어야 할 의무도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선택까지 가게 되었을까. 그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우리는 과연 그 마음에 공감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어 "이 드라마가 감히 그 대답을 찾았노라고는 말씀드릴 수 없고, 다만 그 질문을 마음에 품은 채로 열심히 그려낸 이야기라고는 말씀드릴 수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살아남기 위해 수많은 거짓말을 하지만, 자신의 양심과 사랑 앞에서 절대로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의 사랑은 뜨겁고 진실하다"며 "시청자분들이 그들의 뜨거운 마음에 조금이라도 닿을 수 있다면, 그래서 훗날에도 가끔씩 이 드라마를 떠올릴 때마다 그 뜨거움으로 마음을 덥힐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이 작품은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작품에 담긴 메시지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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