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방금숙 기자] “방부제 없이 상온에서 9개월간 보관할 수 있는 밥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축구장 70개 크기인 49만㎡ 규모의 국내 최대 가공식품 생산거점인 충북 진천군 CJ블로썸캠퍼스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지난 21일 햇반 출시 30주년을 앞두고 찾은 이곳은 거대한 식품공장보다 첨단 반도체·바이오 생산라인을 연상케 했다. 천장에 설치된 헤파(HEPA) 필터가 공기를 정화하고, 미생물을 철저히 차단하는 클린룸, 100%에 가까운 자동화 공정 속에서 매일 수백만개의 ‘갓 지은 밥’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 30년간 68억개…네모난 용기에서 시작된 햇반
생산라인에 앞서 들른 ‘햇반 뮤지엄’. 입구에는 쌀 12종과 밥 짓기 도구가 전시돼 있었다. 공장보다 농업 박물관에 가까운 분위기다. 청동기 시대 시루와 삼국시대 가마솥, 1970년대 압력밥솥을 거쳐 1996년 햇반에 이르기까지 밥 짓기의 변천을 따라가다 보면 한국인의 식생활 변화도 엿볼 수 있다.

햇반 개발은 1980년대 말 알파미에 뜨거운 물을 부어 먹는 방식을 검토하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갓 지은 밥맛을 재현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무균포장 방식으로 방향을 틀었다. 당시 투자액은 100억원 이상으로, 연간 영업이익의 10%에 달하는 규모였다.
선제적인 투자 끝에 1996년 12월 12일 국내 첫 무균포장밥이 출시됐다. 초기 제품은 비상식으로 판매됐던 만큼 보관과 적재가 쉬운 네모난 용기를 사용했다. 이후 전자레인지에서 열이 고르게 전달되도록 원형으로 바뀌었다.
방부제 없이 상온 9개월 보관이 가능한 이유에 대해 도슨트는 사과에 비유했다. 사과를 깎아 두면 갈변하듯 쌀도 시간이 지나면 산패하는데, 이를 막고 미생물을 제어하는 기술이 햇반의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 현미로 들어와 당일 도정…밥맛의 출발점
본격적인 생산라인에 들어서자 자체 도정 시설이 눈에 띄었다. 공장에 들어오는 쌀은 벼의 껍질만 벗긴 현미 상태다. 지방 산화를 막기 위해 15도에서 저온 보관하다가 밥을 짓기 직전 도정한다.
CJ제일제당은 2010년부터 당일 도정한 쌀로 24시간 이내에 밥을 짓는 원칙을 지켜왔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연구원들이 매년 햇곡 수매 시기에 전국 산지를 방문해 쌀 상태와 벼의 건조·보관 과정을 점검한다”며 “찰기와 식감을 분석해 밥맛 품질을 유지하는 연구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밥을 담는 용기에도 과학이 숨어 있다. 햇반 용기는 전자레인지 가열 시 열이 고르게 전달되고 수분 손실을 최소화하도록 제작됐다. 외형에 잡힌 20개의 각은 유통 과정 중 용기가 찌그러지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용기는 자동 포장라인을 따라 이동하며 이물질 제거 장치를 거친다. 이후 쌀이 자동으로 계량돼 담기면 본격적인 살균 공정이 시작된다.
◇ “용기째 밥 짓는다”…스팀 살균 단계만 8차례
핵심은 밀폐된 챔버에서 이뤄지는 고온 스팀 살균이다. 쌀이 담긴 용기가 설비 안으로 들어가자 온도와 압력을 높이는 과정이 반복된다.
김동준 진천BC 햇반 생산팀장은 “쌀이 담긴 용기에 고온 스팀을 가해 온도와 압력을 올리는 살균 과정을 총 8회 반복한다”고 설명했다.
살균을 마친 용기는 ‘커다란 밥솥’ 설비인 취반기로 이동한다. 집에서 냄비에 쌀과 물을 넣고 밥을 짓듯 용기 안에서 쌀을 익히는 방식이다. 이 설비는 단 30분 만에 햇반 4200개를 동시에 지어낸다.

갓 지어진 밥은 곧바로 클린룸으로 옮겨진다. 외부 공기와의 접촉을 최소화한 환경에서 용기 위에 밀봉 필름을 씌우는 공정이다.
김 팀장은 천장에 설치된 헤파 필터를 가리키며 “반도체 공장 수준의 청결도를 유지하고 있다”며 “일반 대기의 먼지는 1제곱피트당 약 2만개지만, 클린룸은 100개 이하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용기와 밀봉 필름 역시 아기 젖병 소재로도 쓰이는 폴리프로필렌(PP)에 산소 차단층을 더해 외부 환경 변화를 완벽히 차단한다”고 덧붙였다.
◇ 뒤집힌 햇반 15분…불량품은 무게로 가려내
밀봉을 마친 햇반은 예상 밖의 모습으로 다음 공정에 들어간다. 용기가 뒤집힌 상태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밥을 지은 뒤 용기 바닥에 모인 수분을 밥 전체에 골고루 퍼뜨리기 위한 ‘뜸 들이기’ 과정이다. 햇반은 이 상태로 15분간 이동하며 밥맛의 균일도를 높인다.

이후 15분간 냉각조를 통과한다. 이때 포장에 미세한 균열이 있는 제품은 물이 스며들면서 무게가 달라진다. 설비는 이 차이를 감지해 불량품을 자동으로 걸러낸다.
검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중량·금속·엑스레이 검사를 거친 제품은 무인 자율주행 로봇(LGV·RGV)을 통해 자동창고로 이동한다. 출고 전 미생물 검사도 진행한다. 당일 생산한 제품의 샘플을 35도 가온 보관실에 두고 두 달간 품질을 확인하는 검증 절차도 거친다.
자동화 라인에서 작업자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설계 단계부터 자동화를 적용해 인력 개입을 최소화했기 때문이다. 진천BC는 1996년 햇반을 처음 생산한 부산공장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생산 체계를 고도화했다.

◇ 연간 국내서 7억개 생산…해외 판매량도 1억개 넘어
진천BC에서는 햇반 생산라인 6개가 가동 중이다. 올해 기준 연간 약 2억8000만개, 중량으로는 6만2000톤을 생산한다. 부산공장 10개 라인에서 연간 약 4억개(8만5000톤)를 추가 생산한다. 두 공장을 합치면 국내에서 연간 약 7억개의 햇반이 만들어진다.
햇반 브랜드의 지난해 소비자 환산 기준 매출은 1조1800억원이다. 2023년 처음 1조원을 넘어선 뒤 성장세를 이어갔다. 제품 구성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국내 햇반 매출에서 잡곡밥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10%대에서 지난해 30% 가까이로 확대됐다.
해외 시장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햇반 해외 판매량은 2021년 약 6300만개에서 지난해 1억1600만개로 늘었다. 북미에서만 1억개 이상 팔렸다. 해외 매출 비중도 2021년 8%에서 지난해 15%로 높아졌다.

제품 개발의 방향도 맛과 식감을 넘어 영양까지 설계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단백질과 식이섬유를 높이거나 탄수화물과 칼로리를 낮춘 제품이 대표적이다.
오예진 CJ제일제당 수석연구원은 “단순히 맛있는 밥을 넘어 소비자가 식생활과 영양관리 목적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식품으로 발전시키려는 시도”라며 “쌀과 곡물 연구를 바탕으로 맛·식감·영양을 함께 고려한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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