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재 판결] 불법 계엄 가담한 법무장관, 16년 감형한 법원

시사위크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이 내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 항소심에서 징역 9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위헌 계엄에 적극 가담했다고 인정하면서도 일부 혐의를 무죄로 판단해 1심보다 형량을 16년 줄였다. / 뉴시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이 내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 항소심에서 징역 9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위헌 계엄에 적극 가담했다고 인정하면서도 일부 혐의를 무죄로 판단해 1심보다 형량을 16년 줄였다. / 뉴시스

시사위크=김두완 기자  내란전담재판부가 ‘사전 준비에 그쳤다’는 점 등을 들어 16년 감형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의 항소심 판결 이야기다. 재판부는 박 전 장관이 계엄의 위헌성을 알면서도 적극 가담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실제 구속과 출국금지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은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 내란 실행을 준비한 행위의 위험성보다 실행되지 못한 결과를 앞세워 책임을 줄였다는 비판이 나온다.

◇ 정치인 신병 확보 준비, 실행 안 됐다고 책임 줄어야 하나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윤성식)는 21일 내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기소된 박 전 장관에게 징역 9년을 선고했다. 1심 징역 25년에서 16년을 줄였다.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 중 일부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 전부가 무죄로 바뀌었다. 그러나 법무부 장관이 위헌적인 계엄임을 알고도 집행에 필요한 지시를 내렸다는 핵심 판단은 유지됐다.

재판부는 박 전 장관이 국회와 정당의 활동을 금지한 포고령을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를 막는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했다고 판단했다. 이를 알고도 출국금지팀을 출근시켜 대기하도록 하고 수도권 교정시설에 추가로 몇 명을 수용할 수 있는지 검토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의 신병 확보와 이를 위한 선제적 출국금지가 계엄 계획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봤다. 단순한 상황 파악이 아닌 위헌적인 포고령의 집행을 준비한 행위로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양형에서 박 전 장관의 지시가 사전 준비행위에 그쳤고 실제 구속과 출국금지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 같은 준비행위가 유죄 판단에서는 내란의 중요한 임무로 양형에서는 실행에 이르지 않은 행위로 평가됐다. 문제는 박 전 장관이 스스로 지시를 철회하거나 실행을 막았다는 판단이 없는데도 실행되지 않은 결과를 그에게 유리하게 반영했다는 점이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의 항소심 재판부는 1심에서 유죄로 인정된 서울구치소 수용거실 현황 검토 지시와 합동수사본부 인력 파견 지시 관련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 전부를 무죄로 판단했다. / 그래픽=이주희 기자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의 항소심 재판부는 1심에서 유죄로 인정된 서울구치소 수용거실 현황 검토 지시와 합동수사본부 인력 파견 지시 관련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 전부를 무죄로 판단했다. / 그래픽=이주희 기자

오히려 재판부는 박 전 장관이 법무부 간부회의에서 포고령의 위헌성을 지적받고도 자신이 내린 지시에 대해 “최소한의 유보적인 태도조차 취하지 아니”했다고 밝혔다. 위헌적인 지시임을 지적받은 뒤에도 물러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 구속과 출국금지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결과는 그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내란 집행을 준비하고도 이를 거두지 않은 장관에게 계획이 실행되지 못한 결과까지 감형 근거로 인정한 판단이다.

정치권에서도 재판부가 인정한 가담 행위에 비해 처벌은 관대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21일 “일부 혐의에 대한 판단이 달라졌어도, 법무부 장관의 적극적인 내란 가담이라는 핵심은 그대로”라고 지적했다. 이어 “말로는 엄중히 꾸짖고 형량은 절반도 안 되게 낮춘 판결을 강력히 비판한다”고 밝혔다.

노정현 진보당 수석대변인은 22일 실제 구속과 출국금지가 이뤄지지 않은 것은 시민들이 계엄군을 막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박 전 장관이 실행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계엄이 저지되면서 실행하지 못한 만큼 이를 감형 사유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임명희 조국혁신당 대변인도 이번 감형이 “헌정 질서를 무너뜨리려 했던 세력에게 책임의 무게를 경감시키는 나쁜 선례로 기록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 내란 위한 위법 지시, 직권남용은 아니라는 법원

재판부는 박 전 장관이 출국금지팀을 출근시켜 대기하도록 한 지시에 대해 직권을 남용한 행위라고 인정했다. 위헌적인 포고령을 집행하려는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직권남용죄가 성립하려면 권한을 부당하게 사용한 데 더해 상대방에게 의무 없는 일을 시켰다는 점도 인정돼야 한다. 재판부는 직원들에게 출근하고 대기할 의무가 있었다며 이 요건은 충족하지 않았다고 봤다.

2024년 12월 3일 오후 10시 23분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무장한 군인이 국회 본회의장을 봉쇄하기 위해 나타났던 상황이다. 사진은 당시 본관 출입문 앞에서 무장한 군인들이 국회 본관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국회 당직자와 시민들, 그리고 취재진이 뒤엉켜 밀고 밀리는 모습이다. / 시사위크 DB
2024년 12월 3일 오후 10시 23분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무장한 군인이 국회 본회의장을 봉쇄하기 위해 나타났던 상황이다. 사진은 당시 본관 출입문 앞에서 무장한 군인들이 국회 본관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국회 당직자와 시민들, 그리고 취재진이 뒤엉켜 밀고 밀리는 모습이다. / 시사위크 DB

재판부가 제시한 근거는 비상근무다. 계엄이 요건을 갖추지 못했더라도 당시 상황은 공무원 복무규칙상 비상근무 사유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상상황에 대비해 출근하는 것과 위헌적인 포고령에 따른 출국금지 요청을 처리하려고 대기하는 것은 목적이 다르다. 재판부도 박 전 장관이 후자를 지시했다고 인정했다. 직원들에게 비상근무 의무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지시를 수행할 의무까지 인정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다.

교정시설에 추가로 몇 명을 수용할 수 있는지 검토하라는 지시도 마찬가지다. 재판부는 이 작업이 평소 집계하던 통계도 실무자가 즉시 작성할 수 있는 자료도 아니라고 밝혔다. 간부회의 자료를 준비하려 했다는 해명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직권남용 판단에서는 직원들이 작성한 문건을 수용자 증가에 대비한 일반적인 검토로 평가했다. 작성 과정에서 법령상 원칙이나 절차를 어겼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두 혐의의 성립 요건이 다른 만큼 내란 가담은 유죄, 직권남용은 무죄라는 결론 자체가 모순은 아니다. 다만 이번 사건에서 직원들이 준비한 행위는 재판부가 내란의 중요한 임무로 인정한 업무다. 지시가 내려진 목적을 떼어놓고 출근이나 자료 작성이라는 업무 형태만으로 판단하면 내란을 위해 부하들을 움직인 행위도 평소 시킬 수 있는 일이었다는 이유로 직권남용 처벌에서 빠질 수 있다. 재판부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할 부분이다.

약 30년간의 공직 경력을 유리한 정상에 포함한 점도 의문을 남긴다. 재판부는 박 전 장관의 경력에 비춰 계엄과 포고령의 위헌성을 잘 알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불법임을 알 수 있었던 근거가 형량을 정할 때는 유리한 사정으로도 반영된 것이다. 법을 지켜야 할 장관이 오랜 경험과 지휘권을 내란 집행에 사용한 사건에서 그 공직 경력이 왜 선처할 이유가 되는지 설명이 필요하다.

박 전 장관의 지시는 말에 그치지 않았다. 재판부가 인정했듯 공무원들은 심야에 출근해 출국금지에 대비하고 수용공간을 검토했다. 실제 구속과 출국금지가 없었어도 법무부 조직을 내란 준비에 동원한 행위는 이미 이뤄졌다. 법원이 엄중히 물어야 할 책임도 여기에 있다. 실행되지 않은 결과와 오랜 공직 경력을 참작하기에 앞서 그 지위와 권한으로 내란에 가담한 책임을 충분히 물었는지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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