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탕, 탕, 탕……” 1948년 10월 19일, 여수 신월리에 때 아닌 총성이 울렸다. 이 곳에 주둔하고 있던 국군 제14연대 내에서 울려 퍼진 총성이다. 하사관 3명을 포함해 일부 장교들이 사망했다.
이유는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 때문이다. 당시 14연대 군인들은 이 파병을 우리 국민을 죽이게 되는 부당한 명령이라는 이유로 항명하며 봉기를 일으켰다. 전남 동부지역으로 봉기군은 확산했고, 이 과정에서 경찰과 우익인사 등이 피해를 당했다.
이후 이승만 정부와 군경의 진압과정에서 다수의 민간인이 적법한 절차 없이 피해를 당했다. 백운산과 지리산에서 봉기군의 빨치산 토벌에서도 밥을 해주거나 협력했다는 이유로 다수의 민간인이 집단으로 희생됐다.
이 여순사건은 그동안 진상규명을 두고 숱한 논란을 이어 왔다. 그러다 2020년 민간인 희생자에 대한 무죄가 광주지방법원에서 72년만에 확정됐다. 이후 2021년 6월29일, 여야의 합의로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여순사건 특별법)'이 제정됐다. 정부의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무고한 민간인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서다.
그럼에도 여순항쟁은 여전히 광범위한 진상규명과 오롯한 명예회복은 이루어지지 않은 실정이다.
이에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19일 "여순사건은 무고한 민간인이 국가 공권력에 의해 집단으로 희생된 현대사의 비극이다“라며 ”진상 규명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진실을 밝히고 명예를 회복하는 일은 국가의 마땅한 책무"라고 밝혔다.

박 대변인은 또 "오늘은 여수·순천 10·19사건 78주년으로 국가폭력에 스러져 간 희생자들의 넋을 기린다"며 “여순의 진실을 밝히는 일은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오늘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박 대변인은 계엄과 관련해서 “여순사건은 이 땅에 처음 계엄이 선포된 사건”이라며 “76년 뒤인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이 이 땅에 다시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계엄을 준비하며 만든 문건에는 여순사건을 '여수·순천반란'으로, 제주 4·3은 '제주폭동', 부마민주항쟁은 '부산소요사태'로 적은 것은 78년 전 국가폭력을 정당화하던 시선이 윤석열 내란 세력의 머릿속에 그대로 살아 있었던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아울러 “국가가 먼저 미신고 희생자를 찾아 나서고, 진상조사보고서를 차질 없이 완성해야 한다”라며 “국가폭력 피해 배상이 시효에 가로막히지 않도록 제도도 보완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더 이상 '반란'이라는 말로 희생자를 두 번 죽이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 낙인을 걷어내는 일 역시 내란을 극복하는 과정이다. 여순의 진실을 밝히는 일은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오늘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다”라고 밝혔다.
한편 여순항쟁 이후 원래부터 불길한 숫자로 취급받던 4는 대한민국 육군의 독립부대 명에는 절대로 들어가지 않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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