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김두완 기자 “사과를 바라시니까.”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순직 소방관의 빈소를 조문한 뒤 내놓은 말이다. 소방을 ‘재정 빨대’에 빗댄 표현은 실수라고 인정하면서도 사과에는 상대방의 요구를 이유로 붙였다. “의도와 다르게 전달됐다면”이라는 단서까지 달면서 자신의 발언보다 이를 받아들인 사람들의 해석을 문제 삼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불렀다. 국민의힘은 사퇴를 요구했고 민주당에서도 다시 진정성 있는 사과를 촉구했다.
◇ 국민의힘 “책임 전가” 비판, 장동혁은 사퇴 요구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18일 페이스북을 통해 추미애 경기도지사를 향해 “끝까지 오만하다”며 “‘사퇴’를 바라시니까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추 지사가 전날 “사과를 바라시니까”라고 한 말을 되받은 것이다. 장 대표는 이를 “등 떠밀려 내놓은 사과”라고 비판한 뒤 “도정은 내팽개치고 중앙정치에 더 바쁘다”며 “진짜 ‘재정 빨대’는 추미애 본인”이라고 공세를 폈다.
논란은 지난 1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시작됐다. 추 지사는 국가직으로 전환된 소방공무원의 인건비 등을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는 문제를 설명하며 “소방이 가장 큰 골치 아픈 재정 빨대 같다”고 말했다. 소방노조가 공식 사과를 요구한 가운데 16일 부천 공장 화재로 소방관들이 진화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했고, 고(故) 김진석 소방관은 17일 끝내 순직했다.
추 지사는 소방노조의 사과 요구가 이어지던 16일 화재 현장에서도 관련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취재진이 ‘재정 빨대’ 발언에 대한 노조의 반발을 묻자 “그런 얘기 하지 마시죠”라고 말을 끊었다. 직접 사과는 이튿날 김 소방관의 빈소를 조문한 뒤에야 나왔다. 추 지사는 “표현상의 실수”를 인정하면서도 “제 의도와 다르게 전달됐다면 깊은 유감의 말씀을 드린다”며 “사과를 바라시니까 정말 마음을 다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전날 대응에 대해서는 화재 현장에서 사과를 언급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취지였다며 사과할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국민의힘은 추 지사의 해명이 발언의 책임을 듣는 사람에게 돌린다고 비판했다. 최수진 원내수석대변인은 18일 논평에서 “의도와 다르게 전달됐다면 유감”이라는 말을 “사과의 탈을 쓴 또 다른 책임 전가”라고 규정했다. 이어 “문책의 화살을 ‘자신의 발언’이 아닌 ‘오해한 국민’에게 돌리는 공직자의 태도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며 “잘못을 온전히 인정하는 겸허한 반성”을 요구했다.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재정 부담을 설명하려 했다는 해명 자체를 짚었다. 그는 같은 날 논평에서 “재정 부담이 문제라면 정부에 지원을 요구하고 제도를 개선하면 될 일”이라며 “의도가 아니었다는 말로 부적절한 발언에 대한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국가와 지방의 재정 분담을 개선하는 문제와 소방을 ‘골치 아픈 재정 빨대’로 표현한 잘못은 구분해야 한다는 취지다.
◇ 민주당에서도 재사과 요구, 도정 소통 문제까지 지적
민주당에서도 추 지사의 대응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서영석 경기도당위원장은 18일 지역위원장 긴급 연석회의에서 “상처받으신 소방공무원과 유가족 그리고 도민 앞에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해 주시기 바란다”고 요청했다. 추 지사가 빈소에서 사과한 이튿날 소속 도당위원장이 다시 사과를 요구한 것이다.
서 위원장은 “그 본의와 관계없이 우리 당 소속 도지사의 발언으로 소방공무원과 가족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서 깊은 상처를 받으셨다”며 고개를 숙였다. 발언의 의도와 별개로 상처를 준 데 대한 사과가 필요하다고 밝힌 것으로 ‘폄훼할 의도는 없었다’는 추 지사의 해명과 차이를 보였다.
지적은 사과 방식에 그치지 않았다. 서 위원장은 도청·도의회·당 사이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목소리가 여러 차례 있었다며 “이번 일도 결국 현장과 도민의 마음을 충분히 살피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이어 “경기도에서의 민심 이반은 전국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추 지사가 표현상의 실수라고 설명한 사안을 도정의 소통 문제로까지 짚은 셈이다.
앞서 정성호 의원도 17일에 ‘구화지문 설참신도(口禍之門 舌斬身刀·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를 인용하며 해명에 앞선 사과를 촉구했다. 그는 “말의 본뜻이 그게 아니다라고 해명할 일이 아니라 그 말로 상처받은 분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먼저 하시는 게 도리”라고 지적했다. 정 의원은 해명보다 사과가 먼저라고 지적하면서도 추 지사가 사과한 데 대해서는 ‘정말 잘하셨다’고 밝혔다
소방노조가 요구한 것은 사과만이 아니다. 경기소방지부는 지난 14일 성명에서 소방 예산을 도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필수 투자라고 강조하며 처우 개선과 충분하고 안정적인 예산 확보를 촉구했다. 서 위원장도 “사과는 말로 끝나서는 안 된다”며 인력과 장비 확충, 처우 개선을 약속했다. 발언의 의도를 해명하는 것과 별개로, 현장의 요구에 예산과 대책으로 답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고 김진석 소방관은 아내와 내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딸을 남겼다. 화재 진압에 나선 아버지는 가족에게 돌아오지 못했다. 소방 인력과 장비에 쓰는 예산에는 시민의 생명뿐 아니라 현장에 나선 소방관이 가족에게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할 책임도 담겨 있다. 추 지사가 ‘골치 아픈 재정 빨대’라고 부른 소방 예산의 쓰임이다. 소방관이 가족에게 건넨 출근 인사가 마지막 인사가 되는 비극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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