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가을이 찾아오면 오랜 세월을 버텨온 은행나무들이 저마다의 색으로 계절의 변화를 알린다. 수백 년 된 나무 아래에서 마주하는 황금빛 풍경은 자연이 주는 감동을 넘어, 그 땅에 축적된 역사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되돌아보게 한다.

경북문화관광공사(사장 김남일)는 10월 '사진으로 만나는 경북 여행'을 통해 도내 은행나무 노거수 명소 9곳을 소개했다.
유서 깊은 서원과 사찰, 전통 정원 등에 자리한 거목들을 중심으로 가을철 자연경관과 지역 문화유산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장소를 선정했다.
이번에 소개된 명소 가운데는 수령 800년이 넘는 나무부터 독특한 생김새와 애틋한 전설을 간직한 나무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경주 강동면의 운곡서원 은행나무는 약 370년 동안 서원의 역사를 지켜온 나무다. 높이 30m, 줄기둘레 6m 규모로, 넓게 펼쳐진 가지가 전통 건축물과 어우러진다.
권산해의 억울한 죽음을 위로하기 위해 영주 순흥에서 가지를 옮겨 심었다는 유래도 전해진다. 가을철 서원 지붕과 마당을 물들이는 은행잎은 이곳을 찾는 사진 애호가들에게 인기 있는 촬영 소재다.
구미 옥성면 농소리의 천연기념물 은행나무는 약 400년의 수령과 25m의 높이를 지닌 거목이다.
줄기가 세 갈래로 갈라지는 형태가 독특하며, 사방으로 뻗은 가지가 넓은 그늘을 형성한다. 마을 한가운데에서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온 나무의 모습은 자연유산이 지닌 웅장함을 보여준다.
영양 입암면 서석지에서는 전통 정원과 고목이 어우러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조선 광해군 때 만들어진 서석지에 자리한 은행나무는 수령 약 440년으로, 넓은 그늘을 드리우며 연못과 정자의 운치를 더한다. 자연과 옛 조경 양식이 조화를 이루는 이곳은 가을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끼기에 적합하다.
상주 은척면 두곡리의 은행나무는 마을에서 '덕목'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약 470년 된 이 나무는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월선의 넋과 한수, 태중의 아이가 나무로 다시 태어나 세 그루가 하나로 얽혔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서로 맞물린 줄기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형상은 이 나무만의 특별한 볼거리다.
김천 대덕면 조룡리 섬계서원 뒤편에는 수령 약 600년의 천연기념물 은행나무가 자리한다. 높이 28m에 달하는 이 나무는 가지에서 아래로 길게 자라난 유주가 특징이다.
과거 인근 두 문중이 서로 조상이 심은 나무라고 주장하며 법적 분쟁을 벌였다는 일화도 남아 있다. 오랜 세월 지역 주민들의 관심 속에서 보존돼 온 나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영주 순흥면 소수서원에는 약 500년 된 은행나무 두 그루가 각기 다른 자리에서 서원 경관을 완성한다. 높이 21m의 수나무는 소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고, 25m의 암나무는 죽계천 언덕에 자리 잡았다.
암나무 밑동에서 여러 줄기가 새롭게 뻗어 나오는 모습에서는 오래된 나무가 이어가는 생명의 힘을 엿볼 수 있다.
영천 임고면 임고서원 입구에서도 수령 약 500년, 높이 30m의 은행나무가 방문객을 맞는다. 고려 말 충신 정몽주를 추모하는 서원과 어우러진 이 나무는 굵은 줄기와 넓은 수관이 인상적이다.
전통 한옥의 단정한 선과 가을철 노란 은행잎이 대비를 이루면서 서원 주변에 독특한 계절감을 선사한다.
안동 길안면 용계리의 은행나무는 자연유산을 지키기 위한 노력의 상징으로 꼽힌다. 1966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 나무는 높이 31m, 둘레 13.67m에 이르며 수령은 약 700년으로 알려져 있다.
임하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놓이자 나무가 자라던 곳에 흙을 쌓아 인공섬을 만들고, 나무를 수직으로 들어 올리는 대규모 보존 작업이 이뤄졌다. 개발 과정에서도 귀중한 자연유산을 지켜내려 했던 노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청도 청도읍 원리의 적천사 은행나무는 이번에 소개된 나무 가운데 가장 오랜 수령을 자랑한다. 약 840년 된 천연기념물로 높이는 29m에 달한다.
고려 시대 보조국사 지눌이 사찰을 다시 세운 뒤 지팡이를 땅에 꽂았는데, 그 지팡이가 뿌리를 내려 거목으로 자랐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오랜 역사를 지닌 사찰과 함께 세월을 견뎌온 나무의 모습에서 자연과 신앙이 어우러진 지역 문화를 느낄 수 있다.
김남일 사장은 "가을철을 맞아 경북의 자연을 직접 걸으며 경험해 볼 것을 권하며, 오래된 은행나무가 간직한 이야기와 계절의 풍경 속에서 휴식과 건강한 추억을 얻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번에 선정된 은행나무 명소들은 단풍을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역사와 설화를 함께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지닌다. 황금빛으로 물든 고목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경북의 자연과 문화유산을 새롭게 발견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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