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김윤혁 기자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대법관 임명 절차를 명시한 헌법 제104조 제2항의 해석을 놓고 국정감사에서 여야가 충돌했다. 법제처장은 대통령의 재제청 요구에 문제가 없으며, 대법원장은 대법관 공석 해소를 위한 헌법상 책무를 다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야당은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무력화하는 해석이라고 반발했고, 여당은 대법원장의 직무 유기와 탄핵까지 거론했다.
◇ 법제처 “대통령의 재제청 요구는 해석상 당연한 결론”
1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법제처 국정감사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의 대법관 후보자 임명 거부와 재제청 요구의 적법성이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법령 해석을 담당하는 기관의 수장인 조원철 법제처장이 어떤 판단을 내놓을지에 관심이 쏠렸다. 이날 조 처장은 대법원장의 제청을 일종의 ‘추천’과 ‘제안’으로 설명하며, 대통령이 제청된 후보자를 반드시 임명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조 처장은 법률상 대법원장의 제청이 곧 임명을 강제하는 것이 아닌 만큼, 대통령에게 후보자를 받아들일지 판단할 권한이 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이에 따라 만약 대통령의 임명 거부 의사가 명확하다면 국회에 임명동의안을 보낼 필요도 없다고 봤다. 국회의 동의는 대통령이 임명하려는 인사에 대한 절차이므로, 임명할 의사가 없는 후보자에 대해 동의를 요청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논리다.
이러한 해석은 곧 대법원장의 재제청 책임으로 이어졌다. 김동아 민주당 의원이 ‘대법원장이 대통령이 재제청 요구에 응하지 않는 것은 헌법상 의무를 저버리는 것 아니냐’는 취지로 질문하자, 조 처장은 “제청권을 행사하지 않아 대법원 구성과 운영에 차질이 생겼다면 헌법상 책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재제청 요구가 가능하다는 해석을 넘어 공석 해소에 대한 조 대법원장의 책임을 보다 직접적으로 지적한 것이다.
야당은 강하게 반발했다. 김태규 국민의힘 의원은 대통령의 재제청 요구를 뒷받침할 명문 규정이 있는지 추궁했다. 조 처장은 “해석상 당연히 도출되는 결론”이라고 답했고, 이에 김 의원은 “법제처장의 독단적인 해석”이라고 맞받아쳤다. 대통령의 임명권에 재제청 요구 권한까지 포함되는지를 놓고 견해가 갈린 것이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도 대통령의 임명권을 대법원장의 제청권보다 우선하는 해석이라며 “입법 독재적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대통령의 재제청 요구를 인정하면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사실상 무력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형수 국민의힘 의원은 “대통령이 원하는 사람 나올 때까지 계속 반려하면 제청권은 무슨 의미가 있냐”고 따져 물었다. 헌법이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국회의 동의권을 규정한 것은 대통령의 자의적인 임명을 견제하기 위한 것인데, 임명권만 앞세우면 이러한 취지가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다.
반면 여당은 대통령의 재제청 요구가 임명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장치라고 맞섰다. 김의겸 민주당 의원은 대통령에게 임명 의사가 없는데도 국회에 동의안을 보내도록 하면, 동의안이 통과된 뒤 다시 임명을 거부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에게 임명 여부를 판단할 권한이 있는데도 이러한 절차를 강제하는 것은 불필요한 정치·사회적 비용을 키우고, 임명권을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거부권으로 축소한다"는 주장이다.
논쟁은 조 대법원장의 재제청 불이행이 직무유기나 탄핵 사유에 해당하는 지로 확대됐다. 김의겸 의원은 대법관 공석 장기화로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에 피해가 발생한다”며 그 영향이 일반 공무원의 직무유기보다 중대하고 광범위하다고 주장했다. 이성윤 민주당 의원 역시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는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아 직무유기로 기소됐다”며 “225일째 대법관 제청을 하지 않고 있는 대법원장은 직무유기라고 생각하지 않냐”고 캐물었다.
이에 대해 조 처장은 명확한 판단을 피했다. 직무유기 해당 여부에는 “입장을 표명하는 것 자체가 조금 조심스럽다”고 답했고, 탄핵 여부도 “헌법재판소가 판단할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정치적으로 평가받고 판단해야지 형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좋은 방향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재제청 문제에서 여당의 주장과 방향을 같이하면서도 구체적인 형사책임을 묻는 단계에서는 거리를 둔 모습이다.
결국 이날 국정감사에서도 대통령의 임명권과 대법원장의 제청권, 국회의 동의권을 둘러싼 견해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수개월째 이어진 정쟁이 자리만 바꿔 되풀이됐을 뿐, 교착을 풀 구체적 해법은 드러나지 않았다. 같은 헌법 조항으로 각자의 권한과 상대의 책임을 강조하는 동안 공석 장기화에 따른 부담은 국민에게 돌아가고 있다. 향후 국정감사를 통해 이 같은 입장 차이를 좁히고 임명 절차를 진전시킬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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