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방금숙 기자] 12일 오후 가락시장 출하장. 배추와 무를 가득 실은 15톤 트럭이 쉴 새 없이 오가고, 수산물 시장 한쪽에서는 상인들이 새우젓을 소분하느라 분주했다.
김장철을 앞두고 배추 가격은 내렸지만, 김장 부담이 가벼워진 것은 아니다. 양념 재료 가격이 오른 데다 직접 김치를 담그는 수요도 줄고 있어서다.
가락시장에서 30여년간 배추를 팔아온 70대 상인은 “올해 태풍이 거의 없어 배추를 비롯한 주요 농산물 가격이 전반적으로 많이 내렸다”고 말했다.
반면 젓갈 판매점의 한 상인은 “어획량이 줄어 새우젓값이 지난해 김장철보다 두 배나 뛰었다”면서 “태풍이 없어 해수면 온도가 올랐기 때문이라고 들었다”고 한숨을 쉬었다.


실제로 올해 배추 가격은 하락세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지난 8일 기준 배추 한 포기 소매가는 5833원으로 평년 대비 18.6% 낮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도 올가을 배추 생산량을 전년 대비 19.3% 증가한 122만2000t(톤)으로 전망했다. 이달 가락시장 배추 도매가격도 10㎏당 8000원 선으로, 평년보다 21% 낮을 것으로 예상했다.
문제는 김장에 들어가는 속재료 가격이다. 8일 기준 무 소매가격은 개당 2292원으로 1년 전보다 9.6% 올랐다. 새우젓은 어획 부진으로 전년보다 23.4% 급등한 1kg당 1만8984원을 기록했다. 국산 깐마늘 가격도 9.2% 올랐다. 고춧가루는 1% 안팎의 소폭 상승에 그쳤다.
배추에서 아낀 비용이 양념 비용으로 빠져나가는 셈이다. 이에 정부는 오는 25일 김장재료 수급안정대책을 발표하고 본격적인 김장철이 시작되는 내달 무 비축물량 방출과 할인 지원에 나설 계획이다.

김장 수요 자체도 둔화하는 추세다. 농경연 가구패널 조사를 보면 이달 배추 구매의향지수는 97.0, 김치는 91.2로 모두 기준선인 100을 밑돌았다. 기준선보다 낮으면 구매를 줄이려는 가구가 늘었다는 뜻이다.
지난해 김치를 직접 담근다는 가구 비율은 62.3%로 줄어든 반면, 완제품 포장김치를 구매한다는 비율은 32.5%로 늘었다.
김장을 이어가는 가구도 손이 덜 가는 쪽으로 방식을 바꾸고 있다. 농경연 조사에서 김장용 절임배추를 산다는 응답은 58.9%로 전년보다 늘었다. 양념을 직접 만든다는 응답은 85.8%로 1년 새 10.7%포인트 하락했다. 배추를 절이는 수고를 덜어낸 데 이어 양념까지 구매하는 가정이 늘어난 것이다.

유통업계는 이 같은 변화에 대응해 절임배추와 양념을 묶은 김장 키트를 앞세워 소비자 공략에 나섰다.
롯데마트·슈퍼가 이달 1일 시작한 1차 절임배추 예약은 닷새 만에 준비 물량이 모두 소진됐다. 절임배추 5㎏과 양념 1.5㎏으로 구성한 2만9900원짜리 간편 키트도 1차 예약분이 동났다. 롯데마트·슈퍼는 올해 절임배추 물량을 지난해보다 20% 늘리고, 소규모 가구를 위한 간편 키트도 선보였다.
이마트는 이달 하순 2차 예약에 들어가고, GS더프레시는 본격적인 김장철이 시작되는 내달부터 아홉 차례에 걸쳐 절임배추와 김장 키트를 예약 판매할 예정이다.

가구가 소형화되면서 김치 소비 양상도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 소포장 제품이 전체 김치 매출 신장을 이끌고 있다.
컬리의 7~9월 포장김치 거래액은 35% 늘었는데, 100g~1㎏대 소포장은 39%로 중간용량(26%)과 대용량(18%)을 앞섰다. 이마트의 1㎏ 이하 포장김치 매출도 6.6% 늘었다.
사 먹는 김치의 가격 문턱도 낮아지고 있다. GS25는 최근 포기김치 5㎏을 제휴카드로 사전 결제 시 1만원 깎아 1만9900원에 판매했다. 행사 시작 후 완제품 김치 예약 누적 주문액은 2억원에 달한다.
이날 가락시장 다농마트 김치 코너에서도 ㎏당 가격을 꼼꼼히 비교하며 포장김치를 고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 소비자는 “원래는 김치를 담가 먹었는데, 가격과 수고를 생각하면 사 먹는 게 낫다”며 “무말랭이나 열무김치처럼 그때그때 먹고 싶은 김치를 산다”고 말했다.
여기에 프리미엄 김치 시장도 성장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급호텔과 김치 명인을 앞세운 제품이 선택지를 넓히는 모습이다.
조선호텔앤리조트는 지난해 김치 매출 540억원에 이어 올해 620억원을 목표로 잡았다. 앞서 롯데호텔앤리조트는 6월부터 주기에 맞춰 김치를 배송받는 정기구독을 선보였고, 현대백화점은 오는 13일 1㎏에 3만원인 ‘명인명촌 김치’ 12종을 내놓는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1~2인 가구 증가와 고령화가 맞물리면서 필요할 때마다 사 먹는 소용량 제품 수요가 늘고 있다”며 “미식 경험을 중시하면서 프리미엄 김치에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는 소비자도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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