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방금숙 기자] 대형마트에서 구입한 계란에서 세제나 화장품 등 화학약품 냄새가 나는 ‘화학약품맛 계란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경기도 용인시와 이천시 등 주로 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는데, 피해를 호소하는 소비자들은 우후죽순으로 늘고 있지만 대다수는 구입처에서 단순 반품·환불 조치에 그치는 등 지자체,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신고와 원인 규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8일 유통업계과 식약처 등에 따르면 최근 대형마트와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 구매한 계란에서 화학약품과 같은 냄새와 맛이 난다는 소비자 불만이 잇따르고 있다. 추석 연휴를 전후해 관련 제보<[단독] “마트 계란에서 세제 냄새가?”…논란 확산에 A업체 “문제 없다”>가 집중된 가운데, 이후에도 ‘계란에서 악취가 난다’는 이유로 환불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경기도 용인에 사는 A씨는 <마이데일리>에 “얼마 전 구입한 계란에서 고약한 화학약품 냄새가 나 반품하고 환불받았다”며 “판매처에서 조치했다는 말을 믿고 지난 5일 같은 계란을 다시 구입했는데, 동일한 냄새가 나서 어제(7일) 다시 환불받았다”고 제보했다. A씨가 구매한 계란은 용인동백이마트에서 판매하는 ‘후레쉬 동물복지 유정란’이다.
경기도 이천에 사는 B씨는 문제의 계란을 먹고 설사와 두드러기가 나는 등 상황이 더 좋지 않았다. 지난달 15일 이천의 한 이마트 매장에서 계란 2판을 구매한 B씨는 조리 과정에서 세제나 소독약을 연상시키는 강한 화학 냄새를 느꼈다고 주장했다.
특히 B씨는 마트 고객센터의 안일한 대응에 더 화가 치민다고 했다. 제품 이상을 알리고 반품 후 환불을 받았지만, 실제 냄새 원인 확인과 피해 보상을 위해 식약처 신고를 하는 과정에서 이마트 측이 해당 제품을 폐기, 문제가 된 계란 원물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B씨는 “설사와 두드러기가 난 문제의 계란을 이마트 자체 전수조사나 식약처에 신고하지 않고 단순히 폐기해 버리는지 몰랐다”며 “이마트에 계란 로트번호(생산 고유번호)와 유통업체, 농장명·주소 등의 정보를 요청했으나 납품업체인 ‘조인’의 고객센터 연락처만 전달받은 게 전부”라고 설명했다.

결국 B씨는 문제 제품이 확보되지 않은 데다 제품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도 바로 확보하지 못하면서 식약처 신고와 원인 규명을 진행하기 어려웠다.
B씨는 “마트에 알리고 절차를 밟아 결과를 기다렸지만 원인이 밝혀지지 않으면서 SNS에서 마치 가짜 이슈를 만드는 ‘블랙컨슈머’ 취급을 당했다”면서 “다행히 온라인을 통해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댓글이 50개 넘게 달리면서 오해를 벗을 수 있었다”고 토로했다.
◇ “악취 계란 구매시 반품·폐기가 끝 아냐”…“원물 확보 뒤 지자체 위생과, 식약처 등 신고할 때 제출해야”
문제 제품과 제품을 특정할 정보가 사라지는 경로는 반품이나 폐기만이 아니다. 계란은 구매 후 포장을 벗겨 냉장고에 보관하는 경우가 많아 이상을 발견했을 때 이미 포장지나 표시사항을 버렸거나, 냄새가 이상하다며 남은 계란까지 폐기하면 생산·유통 경로를 확인하기 어려워진다.
SNS에서도 비슷한 이상을 경험한 소비자들 사이에서 “냉장고에 넣으면서 포장을 버렸다” “냄새가 이상해 전부 버렸다”는 반응이 나왔다.
납품업체를 둘러싼 입장도 엇갈린다. B씨가 제보한 통화 녹취에서 이마트 담당자는 계란 생산·공급업체인 ‘조인’은 농장에서 계란을 받아 유통하는 업체라며 고객센터 연락처를 전달했다. 그러나 B씨가 지난달 28일 조인에 문의하자 조인은 “자사 제품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조인은 이달 1일 공식 입장문에서 SNS상 제기된 사례 가운데 자사 공급 제품으로 확인된 것은 1건이라고 못박았다. 이는 제보가 1건뿐이라는 뜻이 아니라, 조인이 공급한 제품으로 확인된 사례가 1건이라는 의미다. 조인은 자체 생산 외에도 계약 농장에서 생산한 계란을 받아 선별·포장해 유통하는 계란 전문기업이다.

조인은 “제보 제품을 수거해 공인 검사기관에 의뢰한 결과 농약과 항생제가 검출되지 않았고, 생산·공급 과정에서도 공정 이탈이 없었다”고 밝혔다. 또 계란 껍데기의 미세한 기공을 통해 외부 냄새가 배어들 수 있다는 일반적인 가능성 정도만 언급했다.
이마트 역시 “컴플레인이 발생한 상품에 대해 내부 검사와 유통 과정 전반에 대한 점검을 진행했지만 외부 전문기관 검사 결과에서도 특이사항은 없었다”고 밝혔다.
다만 두 업체 모두 소비자가 언급하는 악취의 직접 원인을 특정하지는 못했다.
전문가들은 문제 발생 당시 제품을 확보하는 것이 원인 규명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경기도의 한 계란 생산업계 관계자는 “이상이 있을 때 폐기하지 말고 보관했다가 신고하는게 반드시 필요하다”며 “집하·보관·판매 과정에서 다른 화학 물질 근처에 뒀다면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귀띔했다.
또 그는 선별·세척·포장 공정은 자동화돼 있어 이 단계에서 소독약 조절 실패 등의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봤다.

식품당국은 피해가 발생하면 무엇보다 원물의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번 같은 경우도 문제가 되는 계란을 소비자가 확보한 뒤 부정·불량식품 신고는 질병관리청 콜센터(1399) 외에 관할 지자체나 지방청에 신고할 수도 있으며, 접수된 신고는 내용에 따라 식약처와 관할 지자체, 지방청 등이 나눠 조사하게 된다.
신고 과정에서는 소비자가 직접 제품 정보와 판매업체 등 관련 사항을 기재하고, 현품이나 사진 등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함께 제출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식약처 측은 이번 계란 악취 문제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관련 신고가 정식으로 접수되지 않아 사실관계 확인이 우선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9년 전에도 ‘화학약품맛 계란사태’…‘판박이 사고’에도 대책은 오리무중
계란의 화학약품 냄새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7년 6월에도 당시 이커머스 업체인 티몬이 판매한 계란에서 화장품·매니큐어·소독약 같은 냄새가 난다는 소비자 문의가 30건 이상 올라왔다.
당시 티몬은 AI 방역 약품이 묻었을 가능성을 거론했지만, 농림축산식품부는 방역 약품이 계란에 닿을 가능성은 낮다고 반박했다. 티몬은 환불 처리를 진행했지만 문제 계란을 수거하지 않았고, 보도 시점과 이후에도 명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통상적으로 유통된 계란의 안전성과 냄새 원인 규명은 식약처 소관으로 알려져있다.
축산물 위생관리법은 위해 축산물로 확인된 경우 영업자가 회수·폐기하고 관계기관에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소비자의 냄새 제보 단계에서 판매업체가 반드시 해당 제품을 자체 수거해 식약처에 신고해야 한다고 명시하는 규정은 없어, 제품 확보와 원인 규명으로 이어지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식품과학회 식품안전분과 위원장인 육현균 중앙대 교수도 “문제가 발생했던 당시의 제품을 확보하지 못하면 사후 검사를 해도 원인을 파악하거나 증명하기 어렵다”며 “당시 유통된 제품을 확보해 검사하거나 유통 과정에서 샘플링해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그는 “계란 외부 세척에 쓰이는 차아염소산나트륨의 냄새가 소비자 단계까지 남는 일은 거의 없다”며 “사육 중 사용한 약품이 계란 내부로 들어갈 가능성도 거의 없지만, 약품 처리가 닭을 거쳐 계란으로 옮겨갈 가능성까지 아예 배제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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