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부산=이영실 기자 배우 양자경이 40여 년의 시간을 지나 세계 영화계의 중심에 서기까지 멈추지 않고 도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영화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열정이다. 여전히 새로운 경험을 꿈꾸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그는 “영화는 내 인생 자체”라며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7일 부산시 해운대구 우동 영화의전당 비프힐에서는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BIFF)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자 양자경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은 아시아 영화 산업과 문화 발전에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보인 아시아영화인 또는 단체에 수여하는 상이다. 올해 수상의 영예는 홍콩 영화의 부흥기부터 할리우드까지 동서양을 오가며 독보적인 발자취를 남겨온 양자경에게 돌아갔다.
1985년 ‘예스마담: 황가사저’로 스크린에서 본격적인 첫발을 내디딘 양자경은 ‘폴리스 스토리 3: 초급경찰’(1992), ‘영춘권’(1994) 등을 통해 남성 중심이었던 액션 장르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했다. 이후 ‘007 네버 다이’(1997), ‘와호장룡’(2000)을 거치며 세계적인 스타로 자리매김했고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2018),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2021), ‘위키드’(2024) 등 장르와 역할을 넘나들며 활약을 이어왔다.
특히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로 2023년 아시아계 배우 최초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을 품에 안으며 새로운 역사를 썼다. 올해에는 제76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 여성 최초로 명예 황금곰상을 수상하며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부산국제영화제와도 인연이 깊다. 2002년 PPP(부산프로모션플랜, 현 아시아프로젝트마켓)를 시작으로 ‘북극’(2007), ‘검우강호’(2010), ‘더 레이디’(2011), ‘엽문 외전’(2018),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 등 여러 작품으로 부산과 인연을 이어왔다. 직접 부산을 찾은 것은 ‘더 레이디’ 이후 15년 만이다.
이날 양자경은 “이렇게 환대해 주셔서 감사하다.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받게 돼 감사하고 뜻깊다”며 “부산국제영화제와는 오랜 시간 함께 걸어왔다. 아시아에서 시작해 글로벌로 나아가고 우리의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목표를 함께 이뤄온 것 같아 감사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세계적인 배우로 자리매김하기까지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과정을 돌아보기도 했다. 아시아 배우에게 주어진 한정적인 역할과 마주해야 했던 커리어 초반을 떠올리며 양자경은 “가장 큰 충격은 아시아인이 마이너리티로 여겨진다는 사실이었다”며 “당시 영화 속 아시아 배우들은 스테레오타입화된 역할이 대부분이었다”고 회상했다.
변화의 시작은 ‘007 네버 다이’였다. 양자경은 “유명한 첩보영화 시리즈 ‘007’에 출연하면서 처음 문이 열렸다고 생각한다”며 “이후 ‘와호장룡’을 할 때 같은 역할만 계속 들어온다면 그런 배우로만 소비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사람들에게는 대수롭지 않아 보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선택들을 하면서 역할의 폭을 넓혀왔다”고 돌아봤다.
그렇게 쌓아온 시간은 결국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이라는 역사적인 순간으로 이어졌다. 양자경은 자신의 성취에 앞서 윤여정을 떠올렸다. 그는 “무엇보다 아시아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윤여정이 먼저 그 길을 열어주셨다고 생각한다”며 “그 흐름 속에서 좋은 감독님을 만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감동이었고 오스카에서 경쟁할 수 있었다는 사실도 감사하다. 가끔은 꿈처럼 느껴질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수상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돼준다고 생각한다”며 “한국 영화가 정말 잘하고 있고 우리가 따라야 할 좋은 모범 사례가 되고 있다. 계속 그 방향으로 나아가며 자부심을 가지고 걸어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양자경의 영화 세계를 만날 수 있는 특별기획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양자경이 직접 선정한 ‘검우강호’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산디와라’와 신작 ‘우리 할머니는 큐브왕’까지 총 네 편이 관객과 만난다.
‘우리 할머니는 큐브왕’에서는 실제 나이보다 훨씬 많은 80대 인물로 변신했다. 양자경은 “큐브라는 것 자체가 많은 가능성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삶도 마찬가지다. 기회는 계속 찾아오는데 ‘아니야’라고 하면 그 문이 닫혀버린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족에 대한 사랑과 무조건적인 지지, 그리고 친구를 찾는 이야기”라며 “어떤 상황에 있든 곁에 친구가 있다는 게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부연했다.
양자경의 도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를 계속해서 움직이게 하는 힘은 영화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다. 양자경은 “저에게 이건 그냥 ‘일’이 아니다. 매일 아침 새로운 도전을 꿈꾸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며 “심장이 뛰게 만드는 일이라면 기꺼이 하고 싶다. 저를 더 배우게 만드는 것들, 새로운 경험들을 계속 원한다”고 힘줘 말했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도 과거에서 찾지 않았다. “가장 행복한 순간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있다고 생각한다”는 답을 내놨다. 40여 년의 시간을 지나온 지금도 그의 시선은 여전히 다음을 향하고 있었다. 양자경은 “영화는 제 삶의 선택이었고 예상치 못한 장소로 저를 데려다주고 많은 기억을 선물해 줬다”며 “상상도 못 했던 역할과 작품들을 만나면서 세상에는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정말 많다는 걸 믿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는 정말 제 인생 자체다. 영화 없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영화 작업은 저에게 열정 그 자체”라며 “매일 배우게 해주는 이 일, 그리고 영화와 삶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가 없다”고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끝으로 “15년이나 기다리지 않고 이보다 더 일찍 다시 부산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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