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식품업계가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 소비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기업이 정한 조리법을 그대로 따라 먹는 대신 소비자가 직접 재료를 더하거나 새로운 조합을 제안하는 방식이다. 기업 역시 이를 단순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제품 활용 방식이나 소비자 선호도를 확인하는 창구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실제 제품 출시를 전제로 소비자 레시피를 모집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기존 제품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거나 젊은 소비자와 접점을 넓히려는 사례도 등장한다. 목적은 조금씩 다르지만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아이디어를 내는 주체로 자리 잡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22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굽네가 신제품 '서울엄마 파기름떡볶이 치킨'을 활용한 '찰떡조합 오디션'을 진행한다.
지난 10일 출시한 치킨에 사이드 메뉴나 토핑을 더해 자신만의 조합을 제안하는 행사다. 복잡한 요리법을 개발할 필요는 없다. 눈꽃치즈나 쌀떡 같은 재료를 추가하거나 다른 사이드 메뉴와 함께 먹는 방식도 참여작이 된다.

굽네가 참여 문턱을 낮춘 이유는 기존 레시피 공모전과 달리 요리에 익숙하지 않은 소비자까지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굽네 관계자는 "별도의 복잡한 레시피를 개발하지 않아도 사이드 메뉴나 토핑 등을 활용해 자신만의 조합을 완성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며 "요리에 익숙하지 않은 소비자도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소비자가 만든 조합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개된다. 굽네는 접수작 가운데 최종 후보를 선정한 뒤 공식 인스타그램에서 소비자 투표도 진행한다. 여기서 나온 아이디어와 반응은 향후 메뉴 개발에 참고할 예정이다. 상품화 가능성이 있는 제안은 제품 특성과 실제 구현 가능성 등을 따져 내부 검토한다.
단순히 신제품을 알리는 것 외에 소비자가 제품을 어떻게 변형해 먹는지 살펴볼 수 있다는 점도 기업이 기대하는 효과다.
굽네 관계자는 "최근 모디슈머 트렌드가 확산하는 데 주목해 신제품 인지도를 높이고 소비자 참여를 확대하고자 기획했다"며 "소비자가 직접 제안하는 조합을 통해 선호도와 제품 활용 방식 등을 파악하고 향후 메뉴 개발에도 참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소비자의 아이디어에 기업 연구진의 전문성을 더하는 방식도 있다. 농심(004370)은 신라면 출시 40주년을 맞아 청소년 요리 경연대회 '고등셰프 시즌2' 참가자를 모집 중이다. 전국 고등학생과 2008~2010년생 청소년이 신라면을 활용한 자신만의 창작라면을 제안하는 행사다. 오는 27일까지 레시피를 받은 뒤 예선을 거쳐 본선 참가자를 선발한다.
농심 관계자는 "미래 셰프를 꿈꾸는 청소년에게 자신만의 창의적인 레시피를 선보일 기회를 제공하고 농심 R&D 연구원과 1대1 멘토링을 지원한다는 점이 핵심"이라며 "청소년의 참신한 아이디어와 농심의 식품 연구개발 노하우가 만나 라면 요리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농심은 이번 대회를 신제품 발굴 수단으로 보지는 않는다. 참가자가 제안한 레시피를 제품화할 계획도 현재로서는 없다.
농심 관계자는 "제품 출시 계획은 없다"며 "참가자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신라면의 새로운 활용 가능성을 확인하고 미래 셰프들을 응원하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대신 농심은 Z세대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히는 효과에 주목한다. 출시 40년을 맞은 장수 브랜드가 청소년에게 익숙한 '직접 만들고 공유하는 방식'을 활용해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는 셈이다.

과거 소비자의 기억을 다시 메뉴 개발 아이디어로 가져오는 기업도 있다. 한국파파존스는 오는 30일까지 '2026 파파존스 레시피 공모전'을 진행한다. 주제는 과거 판매가 끝난 메뉴 가운데 다시 만나고 싶은 제품을 현재 소비 트렌드에 맞게 재해석하는 것이다.
참가자는 단종 메뉴에 새로운 재료나 조합을 더해 메뉴명, 기획 의도, 재료, 조리법 등을 제안한다. 단순히 새로운 피자를 만드는 대신 소비자가 이미 경험한 제품을 다시 꺼내 현재 취향에 맞게 바꾼다는 점이 특징이다.
파파존스 관계자는 "단종 메뉴에는 현재 판매되는 메뉴와는 또 다른 고객들의 경험과 추억이 담겨 있다"며 "소비자가 좋아했던 메뉴를 다시 떠올리고 새로운 재료나 조합을 더해 자신만의 레시피로 재해석하는 과정 자체가 이번 공모전의 재미"라고 말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과거 판매 데이터만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소비자 반응을 다시 살펴볼 기회가 된다. 회사는 "소비자들이 과거 메뉴를 어떻게 기억하는지, 현재 어떤 맛과 조합을 원하는지 등 메뉴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니즈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파파존스가 이번 공모전에서 기대하는 효과는 상품 발굴 자체보다는 소비자와의 접점 확대다. 소비자가 직접 아이디어를 제시하도록 해 참여 경험을 넓히겠다는 취지다.
파파존스 관계자는 "고객이 직접 메뉴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브랜드 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마련해 보다 적극적으로 소통하고자 공모전을 기획했다"며 "다양한 아이디어와 의견을 접하는 동시에 고객이 파파존스를 보다 친숙하고 재미있는 브랜드로 경험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소비자 참여가 실제 신제품 출시까지 이어지는 사례도 있다. 배스킨라빈스는 올해 8회째 '그래이맛 콘테스트'를 진행했다. 소비자가 플레이버와 시럽, 토핑을 조합해 새로운 아이스크림 레시피를 제안하면 내부 전문가가 후보를 추린 뒤 다시 소비자에게 평가를 맡기는 방식이다.
올해 내부 심사를 통과한 31개 레시피를 대상으로 진행한 두 차례 대국민 투표에는 총 64만7752표가 몰렸다. 최종 우승작은 오는 10월 전국 매장에서 실제 제품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기업마다 참여 행사의 최종 목적은 다르다. 굽네는 신제품 활용 방식과 소비자 선호도를 확인한다. 농심은 Z세대와 접점을 만들면서 기존 제품의 새로운 활용 가능성을 살핀다는 전략이다. 파파존스는 과거 메뉴를 향한 소비자의 기억과 현재 원하는 맛을 확인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배스킨라빈스처럼 소비자 아이디어 자체를 실제 제품으로 만드는 곳도 있다.
공통점은 기업이 소비자를 완성된 제품을 평가하는 사람에만 머물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재료를 더하는지, 어떤 제품과 함께 먹는지, 어떤 옛 메뉴를 다시 원하는지까지 소비자의 행동과 아이디어 자체를 브랜드 활동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이른바 '모디슈머' 문화가 기업 마케팅 방식에도 변화를 주는 모습이다. 과거에는 온라인에서 우연히 인기를 얻은 소비자 조합을 기업이 뒤늦게 제품화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최근에는 아예 기업이 소비자에게 아이디어를 낼 무대를 마련하는 방식까지 등장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신제품 인지도를 높이는 동시에 소비자가 제품을 어떤 방식으로 소비하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참가자가 만든 레시피는 SNS에서 다시 콘텐츠가 되고, 투표와 댓글 등 후속 반응에서는 소비자 취향도 엿볼 수 있다.
다만 소비자 참여가 반드시 제품 출시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농심처럼 제품화를 염두에 두지 않은 행사도 존재한다. 대신 브랜드 경험 확대, 기존 제품의 새로운 활용법 발굴, 소비자 니즈 파악 등 각사가 원하는 목적에 맞춰 참여 방식을 달리하는 추세다.
제품을 어떻게 먹을지까지 기업이 정해주던 방식에서 소비자가 새로운 조합을 찾아내고 기업이 이를 다시 관찰하는 구조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식품업계의 소비자 참여형 행사가 단순 경품 이벤트를 넘어 제품과 브랜드를 시험하는 또 하나의 창구로 자리 잡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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