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만 역주행 있나? OTT 시대 새 생명 얻은 '유어 아너'·'디워' [MD포커스]

마이데일리
'유어 아너' / ENA

[마이데일리 = 이승길 기자] 문화계에서 ‘역주행’이란 주로 가요계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다. 발매 당시에는 빛을 보지 못했던 숨은 명곡이 직캠 영상, 숏폼 챌린지, 혹은 예능 프로그램 노출이라는 돌발적인 기폭제를 만나 음원 차트 정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현상을 뜻했다.

그러나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콘텐츠 유통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으면서, 역주행이 영화와 드라마 등 영상 미디어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다. 한 번 방영되거나 극장에서 내려가면 그대로 생명력을 다하던 과거의 소비 패턴이 붕괴하고, 알고리즘과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수년, 길게는 십수 년 전 작품이 화려하게 부활하는 이른바 '영상 콘텐츠 역주행'이 일상화되고 있다.

플랫폼 한계 갇혔던 '유어 아너'…넷플릭스 입성 6일 만에 1위 등극

OTT 시대 역주행의 대표적인 쾌거로 꼽히는 작품이 바로 손현주, 김명민 주연의 드라마 '유어 아너'다. 지난 2024년 ENA와 지니 TV를 통해 방송된 이 작품은 아들의 살인을 은폐하려는 판사와 아들을 죽인 범인을 쫓는 무소불위의 권력자의 대치를 그린 웰메이드 서스펜스로, 방영 당시 1.7%에서 출발해 최종회 6.1%까지 시청률 상승 곡선을 그리며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방영 당시 다시보기 서비스가 특정 IPTV 플랫폼(지니 TV)에만 갇혀 있어 대중적 접근성이 치명적으로 제한됐다는 한계를 겪었다. 뛰어난 완성도와 배우들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보고 싶어도 볼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아쉬움을 남긴 채 종영했던 것.

반전은 종영 2년 만인 지난 20일, 넷플릭스에 전편이 입성하면서 일어났다. 플랫폼의 족쇄가 풀리자마자 시청자들의 묵혀둔 갈증이 폭발했다. 공개 하루 만에 한국 톱 10 시리즈 9위에 진입하더니, 불과 엿새 만인 26일 '오늘 대한민국의 톱 10 시리즈' 1위 자리를 꿰찼다. 연출을 맡은 유종선 감독은 "방송한 지 2년 된 드라마가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명예"라며 벅찬 소감을 전했고, 주연 김도훈 역시 자축하며 역주행 열풍을 만끽했다.

'디 워' / 쇼박스

혹평과 논란 딛고 19년 만에…'디 워'의 반전

스크린 영역에서는 개그맨 출신 심형래 감독의 영화 '디 워(D-War)'가 19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는 기적적인 역주행으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007년 개봉 당시 '디 워'는 한국 SF 판타지 블록버스터 최초로 대규모 CG 기술을 도입해 국내에서 785만 관객을 모았으나, 서사의 개연성 부족과 애국주의 마케팅 논란, 제작사 부도 등 수많은 부침을 겪으며 영화계의 뜨거운 감자로 남았던 작품이다.

그러나 넷플릭스에 공개된 '디 워'는 플릭스패트롤 기준 넷플릭스 영화 부문 글로벌 6위에 오르고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주요 국가에서 2위까지 치솟으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외신들은 "20년 전의 부정적 평가를 뒤엎고 주말에 부담 없이 즐기기 좋은 킬링타임 괴수물로 재평가받았다"며 흥미롭게 보도했고, 넷플릭스 측 역시 "시대와 장르를 불문하고 콘텐츠의 생명력이 길어지는 계기"라며 고무적인 반응을 보였다.

유통 방식이 바꾼 콘텐츠 수명 주기

'유어 아너'와 '디 워'의 잇따른 역주행은 플랫폼의 접근성과 큐레이션 환경이 콘텐츠의 운명을 어떻게 뒤바꿀 수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초기 흥행 참패나 폐쇄적인 방영 채널 탓에 대중과 만나지 못했던 비운의 명작들이, 시공간의 제약이 없는 글로벌 OTT 아카이브를 통해 언제든 새로운 관객과 조우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셈이다.

방송 시청률이나 극장 개봉 첫 주의 스코어만으로 작품의 성패를 단정 짓던 시대는 끝났다. 이 건강한 역주행 공식은, 오늘도 치열하게 콘텐츠를 제작하는 창작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이자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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