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권신구 기자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 의지를 드러내는 가운데, 우리 정부의 외교력이 시험대에 오른 모습이다. 미국의 연이은 러브콜에 북한은 한국을 겨냥한 비난을 쏟아내며 이번 상황에서 한국을 배제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역시 북미대화의 중재자 역할을 거부하는 등 미묘한 기류를 내비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의 외교적 운신의 폭이 좁아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21일 북한 대외매체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여정 북한 조선노동당 부장은 전날(20일) 한미 연합훈련 축소와 관련해 “그리도 즐겨하던 전쟁놀이를 못하게 된 서울의 가긍한 처지”라는 담화를 발표했다. 김 부장은 “한국에 있어서 이번처럼 사전논의도 없이 시작되자마자 창졸간에 몸통이 잘린 반쪽짜리 연습, 노른자위가 빠진 빈껍데기 연습으로 되기는 사상 처음 있는 변고일 것”이라며 “한국의 처지는 그들이 자랑하던 ‘미한혈맹’의 주종 관계 구도를 선명히 그려주고 있다”고 비꼬았다.
이번 담화는 지난 19일 김 부장이 ‘주요국 문제들에 대한 입장’이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공개한 지 하루 만에 발표됐다. 김 부장은 해당 담화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연합훈련 축소를 지시했다는 것에 대해 “전혀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면서도 “(북미) 두 지도자들의 관계는 의연 훌륭하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대화의 의지를 연일 드러내는 상황에서 협상의 문을 완전히 닫지 않은 채 원하는 조건을 얻어내기 위한 전략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 북한, ‘한국 배제’ 노골화
이러한 맥락에서 북한이 우리 정부를 겨냥한 조롱 섞인 담화를 내놨다는 점은 분명한 의도가 담긴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과 북한이 직간접적으로 대화 가능성을 타진하는 상황에서 한국을 노골적으로 배제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한반도 정세에 대한 주도권을 갖겠다는 의지로도 해석될 수 있다. 과거 ‘민족’의 개념으로 남한을 대했던 것과는 달리 ‘적대적 두 국가’로서의 노선을 명확히 한데다가, 러시아와 밀착을 통해 외교적 자신감을 얻었다는 점도 이러한 전망의 개연성을 높이고 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연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친분을 과시하면서 동시에 한국에 대한 비판적인 메시지를 내놓는 것도 우리의 부담을 더하는 상황이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북한의 핵무기 개수를 언급하면서 북미대화 성사를 위해 북한 핵 동결을 시사하는 듯한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북미대화 국면에서 한국이 배제될 경우 한미 훈련 중단이나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 인정과 같은 우리 안보의 ‘최악’의 상황을 마주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관측이 나오는 까닭이다.
미국과 북한이 직접적인 대화에 나서는 상황에서 중국을 통해 외교적 공간을 확보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중국이 북미대화를 위한 ‘중재자 역할’에 대해 선을 그으면서다. 앞서 왕이 중국 공산당 정치국위원 겸 외교부장은 지난 19일 조현 외교부 장관과 회담 후 기자들을 만나 “(북미대화는) 북한과 미국 사이에 결정할 일”이라고 했다. 북한을 미·중 패권 경쟁 속 전략 카드로 활용하려는 중국으로선 당연한 입장이라지만, 우리 정부로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은 전날(20일) 왕 부장을 접견하고 조현 외교부 장관, 위성락 국가안보실장과 한중관계 및 한반도 문제 등에 대해 긴밀한 전략적 소통을 이어가 줄 것을 당부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북미대화 등에 대한 구체적 대화 여부는 전해지지 않았다. 다만 중국 관영매체 ‘신화통신’에 따르면, 왕 부장은 이 대통령을 접견한 자리에서 “중국을 포용하는 것은 미래를 포용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고 한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과 회담에서는 “한반도 긴장 해소의 근본적인 방법은 문제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고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적대적 정책을 포기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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