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주권과 권력통제… 제헌절이 남긴 헌법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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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만에 공휴일로 복원된 제헌절은 단순한 공휴일의 귀환을 넘어 헌법의 위상과 국경일의 상징성을 회복한 입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사진=김두완 기자
18년 만에 공휴일로 복원된 제헌절은 단순한 공휴일의 귀환을 넘어 헌법의 위상과 국경일의 상징성을 회복한 입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사진=김두완 기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2항 -

시사위크=김두완 기자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의 출발을 알린 헌법 공포일인 제헌절이 18년 만에 공휴일로 돌아왔다. 2008년 공휴일에서 제외된 이후 역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반복 발의됐지만 번번이 폐기됐던 제헌절은 올해 ‘공휴일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해 공휴일 지위를 되찾았다.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조기대선을 거치며 헌법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부각된 시점이라는 점에서 이번 복원은 휴일 하루를 늘린 것보다 헌법의 상징성과 국경일의 위상을 회복한 입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 ‘빨간날’보다 커진 의미… 18년 만에 돌아온 제헌절

제헌절은 1949년 ‘국경일에 관한 법률’ 제정과 함께 국경일로 지정됐고, 1950년부터 공휴일로 적용됐다. 이후 58년간 공휴일로 운영됐지만 주 5일 근무제 도입에 따른 공휴일 조정 과정에서 2008년부터 제외됐다. 당시 정부는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생산성 저하와 기업 부담, 여름휴가 기간과의 중복 등을 이유로 제헌절을 공휴일 목록에서 뺐다. 이에 따라 제헌절은 5대 국경일(삼일절·제헌절·광복절·개천절·한글날) 가운데 유일하게 쉬지 않는 국경일로 남았다.

공휴일에서 제외된 뒤 국회에서는 제헌절의 지위를 되돌리기 위한 입법은 끊이지 않았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공휴일 재지정이 논의된 이후 관련 법률안은 모두 17건, 청원은 2건 제출됐다. 제17대 국회부터 여야 의원들이 국경일을 공휴일로 규정하거나 제헌절을 공휴일 목록에 추가하는 법안을 잇달아 냈지만 대부분 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됐다. 제22대 국회에서도 여야 의원들이 각각 개정안을 발의하며 초당적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지난해까지만 해도 관련 법안은 소관 상임위원회에 머물러 있었다.

올해 법 개정은 17년 넘게 이어진 입법 시도가 처음 결실을 맺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제헌절 공휴일 재지정은 특정 정당이 새롭게 제시한 정책이라기보다 여러 국회에 걸쳐 여야가 반복적으로 추진해 온 과제였다. 정치권이 극한 대치를 이어가는 상황에서도 헌법의 가치와 국경일의 위상을 회복해야 한다는 데에는 비교적 넓은 공감대가 형성됐고, 결국 법률 개정으로 이어졌다.

2008년 공휴일에서 제외됐던 제헌절은 역대 국회의 반복된 입법 시도 끝에 올해 공휴일 지위를 회복했다. / 그래픽=이주희 기자
2008년 공휴일에서 제외됐던 제헌절은 역대 국회의 반복된 입법 시도 끝에 올해 공휴일 지위를 회복했다. / 그래픽=이주희 기자

제헌절이 7월 17일인 이유도 헌법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제헌국회는 1948년 7월 12일 제헌헌법을 의결했고 닷새 뒤인 7월 17일 이를 공포했다. 제헌절은 국회가 헌법안을 의결한 날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최고 규범인 헌법을 국민 앞에 공식적으로 선포한 날을 기념한다. 정부는 이듬해(1949년)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면서 7월 17일을 제헌절로 정했다. 헌법이 국회의 의결을 넘어 국가 공동체의 기본질서로 공식 출범한 날이라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제헌헌법의 의미는 1948년 한 해에만 머물지 않는다. 제헌헌법에 담긴 민주공화국과 국민주권의 원칙은 1919년 대한민국 임시헌장과 임시정부의 헌정질서를 계승했다. 현행 헌법 제1조가 규정한 민주공화국과 국민주권 역시 제헌헌법을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진 대한민국 헌정질서의 핵심이다. 제헌절은 단순히 한 문서가 만들어진 날이 아니라 국가권력의 정당성이 국민에게서 나오고 권력도 헌법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확인하는 날인 셈이다.

올해 제헌절의 상징성이 더 크게 평가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해 비상계엄 선포와 대통령 탄핵심판, 조기대선을 거치는 동안 헌법은 정치적 논쟁의 배경이 아니라 국가 운영의 직접적인 기준으로 작동했다. △대통령의 권한과 한계 △국회의 권능 △헌법재판소의 역할 △국민의 기본권과 주권 원리가 현실 정치의 중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국민 역시 헌법이 평상시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국가권력이 흔들리는 순간 최종적인 판단 기준이 된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했다.

이런 상황에서 제헌절 공휴일 복원은 달력에 빨간색 하루를 추가된 것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헌법의 가치가 위기의 순간에만 소환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정기적으로 되새겨야 할 공동체의 기준이라는 점을 국가가 다시 확인한 조치에 가깝다. 공휴일 재지정으로 5대 국경일이 모두 공휴일이 되면서 제헌절이 다른 국경일보다 낮은 지위에 놓여 있다는 상징적 불균형도 해소됐다.

전문가들은 제헌절 공휴일 복원이 헌법의 상징성을 회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헌법교육과 시민 참여를 확대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사진=김두완 기자
전문가들은 제헌절 공휴일 복원이 헌법의 상징성을 회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헌법교육과 시민 참여를 확대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사진=김두완 기자

해외 주요국은 헌법을 기념하는 방식에서 서로 다른 선택을 하고 있다. 일본은 헌법이 시행된 5월 3일을 ‘헌법기념일’로 정해 법정 공휴일로 운영한다. 스페인도 국민투표로 헌법이 승인된 12월 6일을 ‘헌법의 날’로 지정하고 공휴일로 삼고 있다. 미국은 9월 17일을 ‘헌법의 날과 시민권의 날’로 법률에 규정했지만 연방공휴일로 지정하지는 않았다. 대신 9월 17일부터 23일까지를 헌법주간으로 운영하며 학교와 공공기관이 헌법과 시민권의 의미를 교육하도록 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은 별도의 헌법 공휴일을 두지 않는다.

해외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헌법 기념일의 성패가 공휴일 지정 여부에만 달려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일본과 스페인은 휴일을 통해 헌법의 상징성을 강조하고 미국은 교육과 시민 참여 프로그램을 통해 헌법을 일상적으로 접하도록 한다. 국내에서도 제헌절 공휴일 복원이 실질적인 의미를 가지려면 국회 경축식이나 기념사에 머물지 않고 국민이 헌법을 직접 이해하고 체험할 수 있는 제도가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헌법교육도 조문을 외우는 방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국민주권과 기본권, 권력분립과 권력 통제가 실제 생활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도록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학교와 공공기관이 제헌절을 계기로 토론과 시민교육을 진행하고, 지방자치단체와 민간 영역에서도 헌법의 의미를 생활 속 사례와 연결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제헌절을 하루 쉬는 날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의 구성원으로서 권리와 책임을 확인하는 날로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다.

제헌절 공휴일 복원은 오랜 입법 논의를 마무리한 결과이지만, 헌법을 기념하는 방식에 대한 논의는 이제 시작에 가깝다. 18년 만에 달력 위에는 다시 빨간색이 칠해졌다. 그러나 제헌절의 진정한 복원은 국민이 하루를 더 쉬는 데 있지 않다. 헌법이 계엄과 탄핵 같은 국가적 위기 때만 등장하는 규범이 아니라 국민의 권리와 국가권력의 한계를 일상에서 확인하는 기준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가 공휴일 복원의 가치를 결정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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