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이호빈 기자] 한미약품 창업주 차남인 임종훈 한미정밀화학 대표가 송영숙 한미그룹 회장·임주현 부회장 모녀 측에 힘을 실어주면서 경영권 구도가 다시 흔들리고 있다.
비오너일가이자 최대주주인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은 30%에 가까운 지분을 보유하고도 추가 우호 지분 확보와 내부 명분 확보라는 과제를 동시에 떠안게 됐다.
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임종훈 대표는 한미사이언스 주식 170만9788주, 지분 2.5%를 나우아이비 22호 펀드에 장외 매각하는 계약을 지난 2일 공시했다. 총 매각 대금은 약 820억7000만원이다. 매각이 완료되면 임 대표의 지분율은 5.09%에서 2.59%로 줄어든다. 나우아이비 22호 펀드는 창업주 일가에 우호적인 투자자로 알려졌다.
임 대표는 공시와 함께 낸 입장문에서 “아버님의 경영 철학과 뜻을 가장 진정성 있게 이어가기 위해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며 “어머니(송영숙 회장), 누님(임주현 부회장)과 함께 ‘제약보국’이라는 아버님의 꿈을 이어가기 위해 회사 발전에 보탬이 될 수 있는 모든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그는 형 임종윤 전 한미사이언스 사장과 함께 모녀 측과 대립하는 형제 측 핵심 인물로 분류돼 왔다. 그러나 임종윤 전 사장이 올해 초 한미사이언스 이사회에서 물러난 데 이어 보유 지분을 정리하면서 형제 측 영향력은 크게 약화됐다.
마지막까지 지분을 쥐고 있던 임종훈 대표마저 모녀 측과 함께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창업주 일가는 모녀 측을 중심으로 다시 결집하고 있다.
이번 지분 이동으로 한미사이언스 지분 구도도 달라지게 됐다. 임성기재단과 가현문화재단을 포함한 창업주 일가 지분은 31.05%로 파악된다. 여기에 모녀 측 우호 세력인 라데팡스 측 지분을 더하면 우호 지분은 40.86% 수준으로 올라간다. 한양정밀 보유분을 포함한 신 회장 측 지분 29.83%를 웃도는 규모다.
국민연금공단이 한미사이언스 지분 10.00%를 보유한 만큼 향후 주주총회 표 대결에서는 기관투자자와 소액주주의 판단도 변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구도상 신 회장 측이 독자적으로 판을 뒤집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신 회장의 선택지가 좁아졌다는 시각이 나오는 이유는 추가 지분 확보 여지가 줄었기 때문이다. 신 회장은 올해 2월 임종윤 전 사장 측 지분 6.45%를 2137억원에 사들이며 개인 지분을 22.88%까지 끌어올렸다. 한양정밀 보유분 6.95%까지 합치면 신 회장 측 지분은 29.83% 수준이다.
신 회장은 오너 일가 경영권 분쟁 국면에서 캐스팅보트로 평가받아 왔다. 지난해에는 모녀 측, 라데팡스파트너스와 4자 연합을 형성해 형제 측과 맞섰지만 이후 신 회장의 경영 개입 갈등이 커지면서 모녀와 라데팡스 측은 신 회장을 상대로 600억원대 위약벌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임종훈 대표 지분은 경영권 구도를 흔들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대형 매물로 꼽혀 왔다. 신 회장 측도 이 지분 확보에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임 대표는 모녀 측 우호 투자자에게 지분 일부를 매각했다.

앞으로 신 회장이 지분을 더 늘리려면 장내 매수나 공개매수, 새로운 우호 주주 확보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미 대규모 지분 매입에 자금을 투입한 데다, 판도를 바꿀 블록딜 매물을 찾기도 쉽지 않다. 지분율만 보면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우호 지분 경쟁에서는 수세에 몰린 구도다.
4자 연합 주주 간 계약에 지분 매각 시 사전 협의와 우선매수권 조항이 담긴 것으로 알려진 점도 변수다. 신 회장이 보유 지분을 처분하거나 추가 지분 확보를 추진하더라도 계약상 조건과 연합 내부 협의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신 회장이 풀어야 할 과제는 지분율에만 있지 않다. 한미그룹은 창업주 고 임성기 회장 시절부터 연구개발과 신약 개발 투자를 핵심 경쟁력으로 삼아 왔다. 경영권 분쟁이 길어질수록 지배구조 문제뿐 아니라 연구개발 전략과 조직 안정성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임종훈 대표가 입장문에서 “아버님의 경영 철학과 뜻”, “제약보국”, “한미를 한미답게” 등을 강조한 것도 이 같은 배경과 맞닿아 있다. 업계에서는 임 대표의 메시지가 창업주 일가의 모녀 측 결집과 향후 경영 안정화를 명분으로 내세운 행보로 해석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신 회장 측은 한미사이언스 최대주주로서 지배구조 안정과 주주가치 제고를 강조해 왔다. 그러나 경영 개입 논란과 한미약품 경영진과의 갈등이 이어지면서 조직 내부 부담도 커진 상황이다. 박재현 전 한미약품 대표와의 충돌, 일부 임직원의 경영 간섭 중단 요구 등은 경영권 갈등이 회사 내부로 확산된 사례로 꼽힌다.
한미약품은 비만·대사질환, 항암, 희귀질환 등 주요 파이프라인을 보유한 연구개발 중심 제약사다. 경영권 분쟁이 장기화할 경우 연구개발 투자와 글로벌 사업 전략의 일관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임 대표의 지분 이동으로 한미그룹 경영권 무게추가 모녀 측으로 결집하는 흐름이 뚜렷해진 가운데 신 회장은 최대주주 지위에도 불구하고 추가 지분 확보와 경영 안정성 확보라는 과제를 안게 됐다.
향후 한미사이언스 주주 구도가 실제 표 대결로 이어질지, 각 주체가 지배구조 불확실성을 줄일 해법을 찾을지가 한미그룹 경영 안정성을 가르는 관건이 될 전망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임종훈 대표의 지분 매각으로 신동국 회장의 입지는 한층 좁아진 모습”이라며 “신약 개발과 글로벌 파트너십이 중요한 회사인 만큼 분쟁 장기화 자체가 주주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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