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김두완 기자 정치권이 ‘호남 반도체 메가프로젝트’를 둘러싸고 공방이 거세다. 국민의힘은 정부의 800조원 투자 계획과 입지 선정 절차의 투명성을 문제 삼았고,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이 호남을 겨냥한 정치 공세와 지역 비하를 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같은 정부 발표를 두고도 여야가 서로 다른 프레임을 내세우며 충돌하고 있다.
◇ 정책 검증보다 지역 갈등 공방
국민의힘은 정부가 ‘대한민국 재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한 직후부터 권역별 반발을 이어가고 있다. 전날(29일)에는 대구·경북(TK)과 충청 정치권이 각각 ‘지역 패싱’과 ‘충청 홀대’를 주장했고, 30일 오전에는 부산·울산·경남(PK) 의원들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호남 반도체 메가프로젝트의 입지 선정 과정과 800조원 투자 규모의 근거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이날(30일) 국민의힘 부울경 의원들은 “호남 발전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면서도 “반도체는 표심으로 짓는 공장이 아니라 전력·용수·인재·협력사 생태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국가 전략산업”이라며 정부가 입지 평가 기준과 기업 투자 결정 과정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부가 공개한 ‘대한민국 재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를 보면 국민의힘의 ‘부울경 배제’ 주장과는 다소 다른 구상도 담겨 있다. 정부는 호남에 메모리 반도체 생산거점을 배치하는 동시에 충청권에는 AI 반도체용 고대역폭메모리(HBM) 패키징 거점, 동남·대경권에는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혁신거점, 울산에는 AI 데이터센터 등을 조성하는 권역별 산업 육성 방안을 함께 제시했다.
다만 국민의힘이 문제 삼은 800조원 투자 규모의 산정 근거와 기업 투자 결정 과정에 대해서는 정부 발표자료에서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정부는 서남권에 ‘총 800조원을 투자해 메모리 팹 4기를 구축한다’는 계획을 제시했지만 기업별 투자 규모와 투자 시기, 입지 선정 과정 등에 대한 세부 설명은 담지 않았다.
국민의힘의 잇따른 문제 제기에 더불어민주당은 논란의 본질이 투자 규모나 입지 선정이 아니라 ‘호남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다고 맞섰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정부의 권역별 산업 육성 전략 전체를 보지 않은 채 호남 반도체 메가프로젝트만 부각하며 지역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30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 열고 “정부의 메가프로젝트는 호남만을 위한 계획이 아니라 충청과 영남을 포함한 국가균형발전 전략”이라며 “국민의힘이 ‘왜 호남이냐’는 인식을 드러내며 호남을 다시 배제의 대상으로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호남에는 제2 반도체 생산거점, 충청에는 반도체 후공정과 AI 데이터센터, 영남에는 피지컬 AI와 소부장 혁신거점이 각각 배치됐다”며 특정 지역만을 위한 정책이라는 주장을 반박했다.
민주당의 반발은 국민의힘 공세가 권역별 반발과 개별 의원들의 의혹 제기로 확대된 데 따른 대응 성격이 짙다. 호남 반도체 투자 구상이 알려진 뒤 국민의힘 대구·경북 의원들은 “대구·경북 홀대”를 주장했고, 29일 정부 발표 직후에는 TK 의원들과 광역단체장들이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TK 패싱’을 문제 삼았다. 충청권 의원들과 김태흠 충남지사·김영환 충북지사도 같은 날 기자회견을 열고 “용수와 전력을 모두 갖춘 충청권이 아니라 만성 물 부족 호남을 선택한 근거를 밝히라”고 요구했다.
개별 의원들의 공세도 이어졌다. 안철수 의원은 29일 페이스북을 통해 호남 반도체 추진으로 예정 부지와 인근 상권·주거지의 땅값이 오를 수 있다며 정부 공직자와 민주당 인사들의 호남 지역 토지 보유 현황 공개를 요구했다. 나경원 의원도 같은 날 이번 사업을 ‘호텔경제학 시즌2’라고 규정하며 특검과 국정조사 추진을 촉구했다. 정점식 원내대표 역시 30일 원내대책회의에서 “1만원짜리 연어덮밥도 국정조사를 했는데 800조원 규모의 반도체 투자에 대해 못 할 이유가 없다”며 국정조사 필요성을 거듭 제기했다.
이처럼 국민의힘의 공세가 △TK 패싱 △충청 물 문제 △부울경 배제 △토지 보유 의혹 △국정조사 요구 등으로 번지자 민주당도 맞대응에 나선 것이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의 문제 제기가 단순한 투자 규모 검증을 넘어 호남 반도체 프로젝트 자체를 정치적 의혹과 지역 갈등의 대상으로 만들고 있다고 보고, 이를 ‘호남 비하’와 ‘국가균형발전 발목잡기’로 규정했다.
이런 공방 속에서도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나왔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30일 페이스북을 통해 “최근 반도체 투자 발표에 시비를 거는 것은 자업자득”이라며 “대구가 쇠락한 것은 지역 정치인들 탓”이라고 밝혔다. 이어 “30년 전 산업 대개편에 실패한 결과”라며 “갈라파고스가 더 이상 되지 말라”고 말했다.
정부의 메가프로젝트 발표 이후 정치권의 논쟁은 정책의 실효성보다 지역별 이해관계와 정치적 공방에 무게가 실리는 모습이다. 국민의힘은 권역별 형평성을 앞세워 공세를 확대했고, 민주당은 이를 호남 비하 프레임으로 맞받으면서 정책 경쟁보다 정치적 프레임 경쟁이 전면에 부상했다. 정작 국가 전략산업의 경쟁력과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정책 본질은 여야의 프레임 공방에 가려지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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