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코리아] ‘사건’ 아닌 ‘시간’을 바라보다

시사위크
영화 ‘하나 코리아’가 관객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 트리플 픽쳐스
영화 ‘하나 코리아’가 관객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 트리플 픽쳐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북한에 홀로 어머니를 남겨둔 혜선(김민하 분)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한국에 온다. 하나원에서 정착 교육을 받은 그는 간호사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공부와 생계를 병행하며 하루하루를 버텨 나간다. 낯선 환경 속에서 과거의 기억과 죄책감은 끊임없이 그를 흔들지만, 혜선은 조금씩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하나 코리아’는 낯선 삶 속에서도 끝내 앞으로 나아가려는 탈북 여성 혜선(김민하 분)의 여정을 담은 영화다. 한국과 덴마크 제작진이 함께 완성한 작품으로, 연출은 덴마크 출신 영화감독 겸 뮤지션 프레드릭 쇨베르가 맡고 최성재(샤론 최) 작가가 공동 각본으로 참여했다.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플래시 포워드 부문 관객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탈북민을 소재로 한 영화라고 하면 흔히 국경을 넘는 긴박한 탈출이나 극심한 차별, 처절한 생존기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하나 코리아’의 시선은 조금 다르다. 영화가 응시하는 것은 탈북이라는 ‘사건’이 아니라, 그 이후 한국 사회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혜선의 ‘시간’이다. 

영화는 혜선이 한국에 오기까지의 지난한 과정보다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집중한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일은 결코 녹록지 않다. 간호사라는 꿈을 향해 나아가면서도 가족에게 보낼 돈과 생계를 걱정해야 하고, 과거의 상처 역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인물을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세우거나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다. 담백할 정도로 담담한 시선으로 혜선의 하루를 비춘다.

절제는 오히려 더 큰 울림으로 이어진다. 눈물을 강요하거나 비극을 자극적으로 소비하지 않는데도 혜선이 느끼는 외로움과 불안, 작은 희망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인물의 감정을 설명하기보다 그 시간을 묵묵히 따라가는 연출 덕에 관객은 혜선을 동정하기보다 그의 하루를 함께 살아낸다.

호연을 펼친 배우들.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민하와 안서현, 김주령. / 트리플 픽쳐스
호연을 펼친 배우들.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민하와 안서현, 김주령. / 트리플 픽쳐스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방식 역시 인상적이다. 혜선의 정착을 돕는 사람들은 분명 선의를 베푼다. 하지만 그 선의는 마냥 따뜻하게만 다가오지 않는다. 혜선을 위한 현실적인 조언과 규칙은 새로운 삶을 위한 과정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방인인 혜선이 넘어야 할 또 하나의 벽처럼 느껴진다. 

선의만으로 채우지도 않는다. 말투를 듣고 수군거리는 손님, 성적으로 희롱하는 인물까지 혜선이 마주하는 노골적인 편견과 차별도 숨기지 않는다. 누군가는 도움을 건네고 누군가는 상처를 남기는, 그 다양한 얼굴이 공존하기에 영화가 비추는 한국 사회는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덴마크 감독이 담아낸 한국의 풍경도 흥미롭다. 앞서 해외 감독이 연출한 몇몇 한국 배경 영화가 익숙한 공간임에도 어딘가 이질적인 느낌을 주곤 했는데, ‘하나 코리아’는 서울을 낯설게 만들기보다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거리와 건물, 사람들의 표정과 공기를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외부인의 시선이 덧입혀진 한국이 아니라 혜선의 눈을 통해 다시 발견한 한국에 가깝다. 

혜선을 연기한 김민하는 영화를 끌고 가는 가장 큰 힘이다. 감정을 크게 드러내기보다 담담한 표정과 시선으로 혜선이 품고 살아온 상처와 고통, 그럼에도 삶을 이어가려는 단단한 의지를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 그래서 마지막 감정이 터져 나오는 순간이 더 오래 남는다. 숙희 역의 김주령, 보미로 분한 안서현도 제 몫을 충실히 해낸다.

‘하나 코리아’는 탈북민의 고통을 전시하는 영화가 아니다. 상처를 안은 채 오늘을 살아가는 한 사람의 시간을 조용히 기록하는 영화다. 프레드릭 쇨베르 감독은 “혜선의 여정을 통해 ‘다시 시작한다는 것’의 진짜 의미를 함께 생각해 보길 바란다. 그의 고독과 작은 승리들, 그리고 어딘가에 속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을 함께 품고 극장을 나섰음 한다”고 전했다. 러닝타임 105분, 오는 7월 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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