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미정 기자·장고은 인턴기자 출판계는 인공지능발(發) 변화를 마주하고 있다. AI 기술은 도서 제작의 생산 효율성을 크게 높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동시에 저품질 도서 생산과 저작권 침해, 창작 생태계 훼손 등의 다양한 문제를 낳아 책에 대한 신뢰를 흔들 수 있다는 위기감도 존재한다. AI 시대를 맞아 출판계는 책에 대한 신뢰를 어떻게 확보해 나갈 수 있을까.
◇ AI 출판물 확대… 독자들 경계감 높아져
최근 출판계엔 대전 오월드에서 탈출한 늑대 ‘늑구’ 이야기를 다룬 동화책이 연달아 출간됐다. 늑구는 지난달 8일 사파리 철조망 아래 흙을 파고 탈출해 야산과 민가를 배회하다가 17일 새벽 생포돼 동물원으로 돌아왔다. 이러한 이야기를 소재로 책은 늑구가 생포된 지 2주도 되지 않은 시점에 잇따라 출간됐다.
독자들 사이에선 갑론을박이 무성했다. 책 제작엔 기획과 원고 작성, 그림, 디자인, 편집, 인쇄까지 여러 단계가 필요한데 단기간 출간이 이뤄진 것이 의아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AI 활용한 이른바 ‘딸깍출판(AI를 활용해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책을 찍어내는 방식을 비판한 신조어)’이 이뤄진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고개를 들었다. 실제로 e북 형태로 나온 한 도서는 ‘AI 활용 제작 도서’라는 설명을 밝히기도 했다. 다만 어느 정도로 AI가 활용됐는지에 대해 밝히지 않았다.
독서 모임을 2년 가까이 운영한 정수연(23) 씨는 늑구와 관련된 책이 단기간에 출간된 후 논란이 불거진 것과 관련해선 “‘과연 원고도 직접 썼을까’하는 의심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이 출간될 때 자료 조사부터 엄청나게 공을 들이고 수많은 수정 과정을 거치는데, AI를 통해 단기간에 책이 완성된다면 출판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정씨는 독자가 AI 활용 여부를 잘 알기 어려운 상황에 답답함을 토로하며 “음식에도 성분표가 있듯, 책에도 AI 활용 범위를 공개해 독자에게 믿음과 신뢰를 줘야한다”고 말했다.
◇ 일반인 응답자 96% “AI 활용 책, 별도 표시 필요”
‘시사위크’는 4월 22일부터 5월 22일까지 한 달간 일반인 118명을 대상으로 AI 활용 도서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기 위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응답자 86.5%는 ‘AI 활용 사실을 밝히지 않고 출판한 경우,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특히 ‘매우 문제’라고 답변한 응답율은 72.9%에 달했다.
또한 전체 96.6%의 응답자는 ‘AI가 활용된 책에 별도의 표시(라벨, 인증)가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세부적으로 보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응답율이 66.1%,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응답율이 30.5%의 비율을 보였다.
AI를 주요하게 활용해 원고를 작성한 경우, AI를 ‘저자’로 인정할 수 있느냐에 대한 질문에는 ‘조건부로 인정할 수 있다’는 답변이 49.2%로 가장 높게 나왔다. 이어 △인정할 수 없다(36.4%) △인정할 수 있다(14.4%) 순의 답변율을 보였다.
AI의 글쓰기 참여와 관련해, 수용 가능한 범위를 물어본 질문에선 △인간이 초안을 작성한 후 AI가 검수 및 수정하는 경우가 53.4%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어 △인간이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AI가 초안을 작성하고, 사람이 이를 토대로 수정한 경우 34.7%의 응답률을 보였다. AI가 원고 작성에 대부분을 참여한 경우는 8.4%의 낮은 응답율을 보였다.
도서의 유형(문학과 비문학)에 따라 독자 수용성에도 차이를 보였다. 소설이나 시와 같은 문학 작품의 경우 비문학보다 더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39.8%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인간의 사유를 담아내는 문학 창착 영역에 AI 활용의 경계감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AI 활용에 따른 문제를 묻는 질문(주관식)에는 글의 획일화, 책임 소재, 정확성, 저작권 문제 등을 지적하는 답변이 많았다. AI 출판에 대해서 일부 응답자는 출판 영역에서 AI를 활용이 확대되면 인간의 생각하는 힘이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반면, AI가 활용된다고 해도 인간의 감정과 경험, 창작은 대체되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왔다. 아울러 AI 출판에 대한 윤리 강령이나 투명성 확보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다수 제시됐다.
◇ “출판 신뢰 강화를 위한 ‘리포지셔닝’ 필요”
출판 전문가 역시 AI활용 도서 투명성 확보를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한국출판인회의 AI미래전략위원장인 윤성훈 클레이하우스 대표는 전화 인터뷰를 통해 “누구나 AI 활용은 자유롭게 할 수 있지만, 텍스트 생성까지 관여했을 경우 투명하게 밝히자는 게 (출판계의) 큰 틀의 입장”이라며 “현재 AI 활용 여부를 표시하는 방식이나 활용 범위에 따라 출판물을 구분하는 것과 관련해서 출판계 의견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 대표는 출판물을 △인간 저자의 저작물 △인간 저자의 통제와 검증을 받은 AI 생성 저작물 △검증 없이 AI에 의해 생성된 저작물 등 3단계로 구분하는 방식도 고려해볼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한주리 서일대학교 미디어출판학과 교수는 “출판사는 콘텐츠가 얼마나 질적으로 가치가 있는지를 가려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출판은 전문성과 독자가 깊이 신뢰할 수 있게 하는 경험을 중시하는 영역”이라며 ‘출판시장의 결과물은 믿고 신뢰할 수 있다’는 인식을 확산시켜 독자의 신뢰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리포지셔닝’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교수는 납본제도의 정비 필요성도 언급했다. 그는 “AI를 활용해 딸깍출판 형태로 구조만 맞춘 책들이 많아지고 있으나 현재의 납본 기준은 어렵지 않다”며, “납본 제도 정비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AI는 출판 환경 전반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AI 확산과 함께 편집자부터 작가의 역할도 새롭게 정의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업계가 AI 시대를 맞이해 출판윤리 기준의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노대원 제주대 국어교육과 및 인공지능융합교육전공 부교수는 “AI가 예술의 마이너스라고 보는 사람도 있는 한편, 기술이 사회와 문화를 긍정적으로 바꿀 거라고 보는 입장이 공존한다”고 말했다. 노 교수는 “기술을 통해서 새로운 예술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잠재력도 분명히 있다”며 “다만 앞으로 윤리적인 고민은 더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출판계는 현재 AI 활용 표시 기준을 놓고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다만 기술이 출판 환경 전반을 바꾸고 있는 만큼, 출판이 어떤 가치를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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