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중동 사태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 확대를 강하게 경계, 향후 적절한 시기에 기준금리를 인상할 필요가 있다는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 기조를 명확히 했다. 반도체 경기 호조와 정부 추가경정예산(추경) 효과 등으로 국내 성장세가 예상보다 견조한 만큼 인플레이션 위험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다만 당장은 중동 사태의 전개 방향과 글로벌 파급 효과 등 불확실성이 높은 만큼 데이터를 좀 더 지켜보는 '기술적 기다림'을 택했다.

신 총재는 28일 기준금리 동결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중동 전쟁의 영향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은 증대된 반면 성장세는 우려와 달리 예상보다 확대됐다"며 "금융안정 측면에서도 리스크가 지속되고 있지만 중동사태 전개·파급 영향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높은 만큼 기준금리를 현 수준에서 유지하면서 추이를 점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이날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에서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연 2.50%에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결정에서는 장용성 위원과 유상대 위원이 기준금리를 2.75%로 인상해야 한다는 소수 의견을 냈다. 포워드 가이던스와 관련해 도입된 'K-점도표'에 대해서는 "위원 개개인의 주관적인 불확실성이 상당히 크게 표현된 것"이라고 부연했다. 금통위 다수는 동결을 선택했지만, 물가 상방 리스크 확대와 금융불균형 누적 가능성을 감안하면 추가 긴축 필요성을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는 의미다.
신 총재는 동결 배경에 대해 "인플레이션·성장 전망을 크게 높인 만큼 이 지표들이 예상대로 흘러갈지 살펴볼 지표 확인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금리 인상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금통위 내에서 대체로 인식을 같이했다"면서도 "공급 충격의 인플레이션 파급 정도나 IT 부문 의존도가 높은 성장세의 지속 기간에 불확실성이 큰 만큼 당장 올리기보다 데이터를 좀 더 지켜보자는 쪽에 무게가 실렸다"고 소수 의견과의 차이점을 짚었다.
스테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가능성에 대해서는 "견조한 성장세와 국내총생산(GDP) 갭의 내년 플러스 전환 전망 등을 근거로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 성장 2.6%·물가 2.7%로 상향…"낙수효과·임금도 같이 봐야"
한은은 수정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0%에서 2.6%로 크게 상향 조정했다. 신 총재는 "중동 전쟁이 올해 성장률을 0.4%포인트(p) 낮추는 요인이 되겠지만 예상보다 강한 반도체 경기와 IT 수출 확대가 성장률을 0.7%p 높이고 정부 추경(0.2%p)과 증시 호황(0.1%p)도 성장을 높일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서 제기된 국내 성장률의 일시적 반등 우려에 대해서는 "반도체 사이클의 지속 기간 등을 감안할 때 상당 기간 지속될 효과"라며 견조한 성장 초입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반면 인플레이션 전망치도 함께 치솟았다.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기존 2.2%에서 2.7%로 상향, 기술적 지표인 근원물가도 지난 전망치(2.1%)를 상당폭 상회하는 2.4%로 예상됐다. 유가 상승의 직접 효과뿐만 아니라 간접 효과·기대 인플레이션 자극 등 파급 효과가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신 총재는 "체감물가에 영향을 주는 생활물가 상승률이 지난달 기준 2.9%에 달해 인플레이션 상방 압력이 지속되고 있다"며 "인플레이션 정점은 대략 올해 하반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기대 인플레이션이 불안정해질 가능성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낙수효과 부재 지적과 관련해서는 "지난 1분기 실적 호조는 일차적으로 반도체 부문의 영향이 크지만 낙수효과가 없다는 것은 맞지 않다"며 "기업 수익이 개선되면 그만큼 법인세를 많이 내기 때문에 정부 세수가 상당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 이는 결국 국민 전체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낙수효과로 이어진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최근 타결된 삼성전자 노사 성과급 교섭에 대해서도 "대규모 성과급 지급에 따른 소득세 징수 역시 또 다른 형태의 낙수효과를 유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해당 성과급이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임금은 성장의 지속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구매력 증가를 통한 수요 견인 압력을 면밀히 살펴볼 것"이라면서도 "노사 간 합의가 중요하며 양극화를 심화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언급했다.
◆ 환율·NDF·집값…"금융안정 리스크 여전"
부동산과 가계부채와 관련해서는 "수도권 주택시장에서 공급 부족 우려 등으로 전월세·매매가격의 오름세가 확대됐고 추가 상승 기대도 다시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신 총재는 "금융권 가계대출은 전반적으로는 제한적인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으나 수도권 중·저가 주택을 중심으로 거래량이 늘면서 주택 관련 대출의 증가 규모는 다소 확대됐다"고 말했다. 금융안정 측면의 리스크가 금리 결정에서 여전히 중요한 고려요인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최근 1500원 안팎까지 치솟은 원·달러 환율과 관련해서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중동 정세"라며 "원유 수입국들이 공통으로 겪는 현상으로 중동 상황이 빠르게 진전되면 앞으로 원화가 강세로 갈 여지가 있다"고 피력했다.
특히 뉴욕 역외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에서 투명성이 부족한 거래로 인해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역외 시장이 현물환 시장을 흔드는)' 현상에 대해서는 "인지하고 있다. 향후 이에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시사했다.
NDF 시장은 국내가 아닌 국외(역외)에서 원화 선물환을 거래하는 시장으로 만기에 원화와 달러화를 실제로 주고받는 대신 계약 환율과 만기 시점 환율의 차액만을 달러화로 정산하는 도매 외환시장이다. 정규 거래 시간이 끝난 야간에도 글로벌 금융 중심지에서 24시간 거래가 이뤄지기 때문에 국내외 경제 충격이나 지정학적 리스크 발생 시 환율의 미래 방향성을 선반영하는 지표로 활용된다.
NDF 시장에서 역외 투기 세력의 대규모 자금 유출입에 따라 현물환 시장 대비 변동성이 과도하게 커질 경우, 오히려 역외 시장이 국내 외환시장을 흔드는 역전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한편 외국인의 대규모 주식 순매도와 미 달러화 강세가 겹친 상황이지만, 채권시장 안정화 조치에 대해서는 "현재 시장 메커니즘이 잘 작동하고 있어 고려할 상황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신 총재는 "인공지능(AI) 투자수요 확대 전망이 지속되면서 주요국 주가는 큰 폭으로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했다. 세계 경제가 인플레이션과 성장 둔화 압력에 동시에 노출돼 있지만, AI 투자를 중심으로 한 일부 국가의 호조가 차별화된 흐름을 만들고 있다는 진단이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과의 연계성에 대해서는 "미국도 중동전쟁의 영향으로 물가와 성장 전망에 상당한 불확실성을 안고 있다"며 "Fed 역시 데이터에 기반해 통화정책을 운용하겠다고 밝힌 만큼 한은도 우리 경제 여건에 맞춰 독립적으로 통화정책을 결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금리 수준, 환율과 자본 흐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주요국 중앙은행의 정책 방향은 계속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고 부연했다.
앞서 27(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리사 쿡 연준 이사가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열린 강연에서 "예상했던 디스인플레이션(물가 상승률 둔화)이 제때 나타나지 않는다면 금리를 인상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힌 바 있다.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