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發 춘투 쇼크, 산업계 강타… 흔들리는 K-제조업

마이데일리
삼성전자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 조합원들이 지난 4월 23일 오후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사업장 앞에서 열린 투쟁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마이데일리 = 심지원 기자] 국내 주요 산업계가 동시다발적인 노사 갈등에 몸살을 앓고 있다. 삼성전자의 총파업 위기부터 현대모비스의 사업부 매각 반발,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통합 갈등까지 겹치면서 올해 춘투(春鬪)는 단순 임금 인상 요구를 넘어 경영 전략과 지배구조 개편을 흔드는 복합 위기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초기업노조)는 오는 21일 총파업을 예정대로 진행할 계획이다. 앞서 삼성전자는 전날 공문을 통해 “조건 없이 다시 만나 대화하자”며 협상 재개를 제안했고, 사장단 역시 사과문을 내고 “노조를 한 가족이자 운명공동체라고 생각하며 조건 없이 열린 자세로 대화에 임하겠다”며 “노조 역시 국민 우려와 국가 경제를 고려해 조속히 대화에 나서달라”며 대화를 요청했다.

또 같은 날 전영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등 사장단이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노조 사무실로 직접 방문해 노조 관계자와 면담을 가지기도 했다. 사장단은 “교섭을 이어가자”는 뜻을 전했지만, 노조는 “핵심 요구에 대한 안건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맞서며 별 다른 소득 없이 자리가 마무리됐다.

현재 사측은 노조가 요구하는 성과급 투명화와 상한 폐지, 제도화 요구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기존 초과이익성과급(OPI) 제도를 유지하되 영업이익 10% 또는 경제적 부가가치(EVA) 20%를 선택할 수 있는 투명화 방안과 상한 없는 특별보상 제도 신설 등을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삼성전자 노조는 사측의 추가 협의 제안을 사실상 거부하며 총파업 강행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최승호 초기업노조 위원장은 사측 공문과 관련해 “(총파업이 끝나는) 6월 7일 이후 협의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노조가 예고한 총파업 기간이 오는 21일부터 내달 7일까지라는 점을 감안하면 예정대로 파업을 진행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총파업이 가시화되면서 정부 역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총파업이 현실화하면 삼성전자는 물론 1700개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협력업체가 직격탄을 맞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핵심 산업인 반도체의 경쟁력도 흔들릴 수 밖에 없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노동계의 반발이 우려됨에도 불구하고 긴급조정권이란 전례없는 카드를 꺼내들고 나선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긴급조정권은 노동쟁의가 공익사업이나 국민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을 때 정부가 쟁의행위를 중지시키고 조정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고용노동부 장관이 긴급조정권을 발동할 경우 노조는 30일간 모든 쟁의행위를 즉시 중단해야 한다.

청와대는 아직 신중한 입장이다. 이규연 청와대 홍보소통수석은 긴급조정권 발동 여부 등과 관련된 질문에 대해 “아직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고 노사 간 협의가 잘 마무리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노조의 강경 기조가 이어지면서 중앙노동위원회의 중재 시도 역시 쉽지 않을 전망이다. 중노위는 삼성전자 노사에 2차 사후조정 회의 재개를 요청했지만, 노조 측은 사후조정 당시 녹취록 일부를 공개하며 “중노위는 중재가 가능하다고 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에 삼성전자는 파업에 대비해 생산량을 조정하는 ‘웜다운(Warm-down)’ 작업에 착수하는 등 비상관리 체제에 돌입했다. 업계에서는 파업 장기화 시 손실 규모가 최대 100조원에 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서울 강남구 현대모비스 본사 앞에서 전국금속노조 소속 조합원들이 램프 사업부 매각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금속노조

삼성전자발 노사 갈등은 산업계를 순차적으로 타격하고 있다.

현대모비스 노조는 최근 사측이 추진 중인 램프사업부 매각 계획을 두고 “밀실 매각”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노조는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핵심 사업부를 분리하는 것은 고용 불안을 초래한다”며 총력 투쟁 방침을 밝혔다.

갈등은 현대모비스가 프랑스 자동차 부품업체 OP모빌리티와 램프사업부 매각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면서 본격화됐다. 회사 측은 인공지능(AI)·로보틱스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기 위한 전략적 결정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현장 분위기는 냉랭하다. 금속노조는 유니투스·모트라스·현대IHL 등이 현대모비스 100% 자회사인 만큼 매각 이후 고용 승계와 전환 배치, 임금·단체협약 유지 문제 등이 불거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결국 경주지부 현대IHL지회와 구미지부 김천현대모비스지회는 지난달 27일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업계에서는 현대IHL과 모트라스 노조 파업 여파로 일부 부품 생산량이 약 50% 감소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 13일에는 금속노조 현대모비스 사무연구직지회와 유니투스·현대IHL·모트라스 등 계열사 노조 소속 조합원 1000여명이 서울 본사 앞에서 상경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사측은 진화에 나섰다. 유니투스 노조는 사측이 제안한 ‘램프 사업 지속 성장 및 고용 안정 합의서’를 받아들이며 파업을 철회하고 생산에 복귀했다. 반면 현대IHL 노조는 인수사인 OP모빌리티의 서명이 없는 합의는 효력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강경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노조 내부에서는 이번 매각이 향후 범퍼·전동화·모듈 등 다른 사업부 재편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인천국제공항 활주로에서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양사 항공기가 오가고 있다. /뉴시스

하늘길도 불안하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노조는 통합 이후 적용될 ‘시니어리티(연공서열)’ 체계를 두고 사측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조종사 사회에서 연공서열은 기장 승격과 노선 배정, 임금 수준을 좌우하는 핵심 기준이다.

갈등의 불씨는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노조(APU)에서 시작됐다. 최도성 APU 위원장이 “아시아나항공 채용에서 탈락한 인력이 대한항공에 입사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 대한항공 조종사노조(KAPU)가 법적 대응 방침을 밝힌 것이다.

갈등의 배경에는 양사의 채용 기준 차이가 자리하고 있다. 민간 출신 부기장 채용 시 대한항공은 비행경력 1000시간을 요구하는 반면 아시아나항공은 300시간 수준이다. 대한항공 측 조종사들은 단순 입사일 기준으로 서열을 통합할 경우 비행 경력이 짧은 아시아나항공 출신 조종사가 먼저 기장으로 승진하는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대 쟁점은 군 경력 조종사의 연공서열 기준이다. 사측이 ‘입사일’ 기준 통합안을 제시하자 대한항공 군 출신 조종사들이 불리해졌고, 대안으로 ‘전역일’ 기준이 거론되자 이번에는 아시아나 군 출신 조종사가 대한항공 민간 경력직보다 앞서는 역전 현상이 발생했다.

대한항공 조종사노조는 지난달 정기총회에서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실시해 조합원 57.6% 찬성으로 쟁의행위를 가결했다. 업계에서는 과거 US항공과 아메리칸웨스트항공 합병 당시 조종사 서열 문제로 10년 가까운 법적 분쟁이 이어졌던 사례처럼 장기 갈등으로 번질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울산 동구 HD현대중공업 전경. /HD현대중공업

조선·철강 등 중후장대 업종에서도 파업 전운이 짙어지고 있다. HD현대중공업 노조는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 요구안에 ‘영업이익의 30% 성과급 지급’을 포함시켰다. 노조가 성과급 기준을 영업이익의 구체적인 비율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배경에는 조선업 슈퍼사이클에 따른 실적 호조가 있다. 지난해 영업이익 약 2조원을 기준으로 단순 계산하면 성과급 재원은 약 6000억원 규모로, 조합원 1인당 약 7500만원 수준에 달한다. 노조는 “경영 성과를 보다 투명하고 공정하게 공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요구안에는 기본급 14만9600원 인상과 상여금 100% 확대, 조합원 휴양시설 운영을 위한 경상비 20억원 출연 등 복지 확대 방안도 담겼다. 최근 산업계 화두인 AI 도입 대응 방안도 포함됐다. 생산 현장에 AI를 도입할 경우 노동권과 고용 안정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라는 요구다.

HD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조 역시 별도 교섭 요구안을 제출하며 원청과 동일 수준의 성과급 지급을 요구하고 있어 원·하청 갈등까지 겹친 상황이다.

포스코 역시 직고용 문제를 둘러싸면서 노사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포스코는 최근 포항·광양제철소 협력사 직원 약 7000명을 순차적으로 직접 고용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2011년부터 이어져 온 사내하청 불법파견 소송을 마무리하고 경영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그러나 신규 인력을 기존 정규직 체계와 분리된 별도 ‘조업시너지(S) 직군’으로 편입하는 방안이 거론되면서 현장 반발이 커지고 있다. 또 포스코 노조는 기존 경영엔지니어(P6), 생산기술직(E6)과의 형평성을 고려한 통합 임금체계 시뮬레이션 자료를 요구하고 있지만, 사측이 충분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복지 인프라 문제도 쟁점이다. 포항·광양 사업장 특성상 주거·의료·체육시설 수요가 높은데 대규모 인력 유입에 따른 대책이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결국 포스코노조는 지난 11일 쟁의권 확보를 위해 중노위에 조정을 신청했다. 중노위 조정이 결렬될 경우 창사 이후 첫 파업 가능성도 제기된다.

업계에서는 최근 이어지는 ‘파업 도미노’ 현상이 단순 임금 인상 요구를 넘어 AI 전환과 사업 구조 재편, 기업 통합 등 급변하는 산업 환경 속에서 누적된 갈등이 한꺼번에 분출되는 과정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는 조선업·반도체 호황을 배경으로 노조의 임금·성과급 요구가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황”이라며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노사 갈등이 장기화될 경우 대외 신인도 하락은 물론 미래 투자 재원 확보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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