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김두완 기자 우주가 전쟁의 출발점으로 자리잡고 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 위성 통신망 ‘비아셋(Viasat)’이 사이버 공격을 받으면서 이를 이용하던 우크라이나 통신망에 장애가 발생했다. 이후 우크라이나는 민간 위성망인 스타링크를 활용해 통신을 유지했고, 이 과정에서 위성 통신이 전쟁 수행의 ‘핵심 인프라’라는 점이 부각됐다. 이처럼 군 통신과 정찰 정보가 위성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우주는 더 이상 보조 수단이 아니다. 위성 신호가 교란되거나 통신이 끊기면 작전 수행 자체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 전장 기반 된 우주… ‘위험’ 아닌 ‘위협’
이 같은 변화가 20일 국회에서 ‘국방우주법’ 논의로 이어졌다. 국민의힘 유용원 의원은 “정밀 타격과 지휘통제의 핵심은 결국 통신이고, 그 중심에 우주가 있다”며 “우주를 기반으로 전쟁을 수행하는 시대가 됐지만 제도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술과 전력은 빠르게 발전했지만 이를 규율할 법은 뒤처져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핵심은 ‘우주 위험’에서 ‘우주 위협’으로의 변화다. 관점이 바뀌지 않으면 대응도 달라질 수 없다. 그동안 국내에서 우주는 운석 낙하나 우주 쓰레기 충돌 같은 자연적 위험 중심으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이제 현실은 다르다. 위성 신호를 방해하거나, 통신을 끊거나, 기능을 마비시키는 행위는 이미 기술적으로 가능하고 일부는 실제 사례로 보고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날 정영진 국방대학교 교수는 “우주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위험’이 아니라 ‘위협’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우주 자산의 성능을 저하시키거나 무력화하는 행위가 등장한 만큼 국가가 대응해야 할 안보 문제로 봐야 한다는 의미다.
문제는 이런 위협이 기존 군사 개념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리적 파괴가 아니라 전자·사이버 방식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공격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 위성 통신이 끊겼을 때 그것이 △자연 현상인지 △기술적 오류인지 △의도된 교란인지 즉각 구분하기 힘들다. 전쟁과 평시의 경계도 흐려진다.
김권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를 ‘회색지대’ 문제로 짚었다. 그는 “전시 상황에서는 긴급명령 등으로 대응이 가능하지만, 평시와 전시 사이의 애매한 구간에서는 법적 근거가 충분히 구체적이지 않다”며 “이 구간에서 군의 대응이 취약하다”고 분석했다. 전쟁이 공식적으로 시작되기 전 이미 우주에서는 충돌이 벌어질 수 있는데 이를 뒷받침할 법적 기준이 없다는 지적이다.
이 지점에서 ‘판단 기준’ 문제가 드러난다. 무엇을 공격으로 볼 것인지, 어느 수준에서 군이 개입해야 하는지, 어떤 절차로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없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우주 자산 이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통령에게 보고할 주체조차 불명확하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단순한 제도 미비가 아니라 위기 대응 체계의 공백이라는 의미다.
군 내부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우주 영역이 확대되면서 지상·공중·우주를 통합하는 작전 개념이 필요해졌지만, 이를 뒷받침할 법적 기반은 부족하다. 국민의힘 한기호 의원은 “영역이 우주까지 확장된 상황에서 역할과 체계를 어떻게 나눌 것인지 정리되지 않으면 전체 작전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누가 무엇을 할 것인가’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라는 얘기다.
여기에 구조적 문제가 하나 더 있다. 우주 인프라는 민간과 군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위성, 데이터, 지상국 등 대부분의 핵심 자산이 이중용도 형태로 운영된다. 민간은 시장 규모가 작아 독자적으로 투자하기 어렵고, 군은 자체 역량만으로 인프라를 구축하기 어렵다. 결국 서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헌주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우주에서의 전쟁은 어떻게 싸울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의 문제”라며 “민과 군은 함께 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우주개발진흥법, 우주항공청법, 민군기술협력 관련 법들은 산업과 연구개발 중심으로 설계돼 있어 민군 융합 인프라를 포괄하지 못한다.
결국 한국에 없는 것은 단순한 ‘우주 대응 법’이 아니다. 위협을 정의하고, 대응 기준을 세우고, 민군 인프라를 묶고, 부처 간 역할을 정리하는 전체 법적 틀이다. 정치권도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성일종 국회 국방위원장은 “우주 자산을 기반으로 전쟁을 수행하는 시대인데 우리는 아직 준비가 부족하다”며 “법과 제도가 정비되지 않으면 대응 자체가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상황은 분명하다. 우주는 이미 전장이 됐다. 위협은 물리적 충돌이 아니라 교란과 간섭 형태로 먼저 나타난다. 하지만 이를 판단하고 대응할 기준, 권한, 체계는 마련돼 있지 않다. ‘국방우주법’ 논의는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한 시도다. 새로운 전력을 만드는 법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전력을 어떻게 사용할지 정하는 법에 가깝다. 우주를 둘러싼 경쟁이 기술을 넘어 제도 경쟁으로 확장된 상황에서 한국 역시 더 이상 입법을 미룰 수 없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제는 전장이 바뀌었는데, 이를 다루는 법은 아직 그대로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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