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세대교체 ④] 안으로 들어온 김택진, 밖에서 판 짜는 장병규

마이데일리

[편집자 주] 국내 IT(정보 기술) 산업이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창업자가 직접 회사를 이끌던 시대에서, 전문경영인이 전면에 나서 실행을 책임지는 구조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AI) 확산과 글로벌 경쟁 격화가 이러한 변화를 가속하고 있다. 마이데일리는 ‘IT 세대교체’ 시리즈를 통해 네이버·카카오 등 플랫폼 기업과 넥슨·엔씨 등 게임사를 중심으로 권력 구조 변화의 실체를 짚어본다. 창업자는 왜 뒤로 물러났고, 최고경영자(CEO)는 어떻게 전면에 섰는지, 그리고 그 변화가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한다.

김택진 엔씨 대표(왼쪽),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 /각사. 박성규 기자

[마이데일리 = 박성규 기자] 게임업계의 세대교체 바람 속에서도 창업자들의 존재감은 여전히 견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창업자의 리더십 발휘 방식은 각 사별로 엇갈린다. 김택진 엔씨 대표가 조직과 브랜드, 사업 구조를 다시 손보며 회사 안으로 깊숙이 파고든다면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은 투자와 자본 배분, 글로벌 네트워크를 설계하며 외연 확장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14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엔씨와 크래프톤은 모두 전문경영인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최근 1년간 주요 전략 변화는 여전히 창업자 리더십의 연장선에서 읽힌다는 평가가 나온다. 엔씨는 창업자가 내부 재정비를 주도하는 구조인 반면 크래프톤은 이사회와 투자 네트워크를 통해 방향이 설정되는 구조에 가깝다.

◇ 김택진, 다시 내부로…엔씨 ‘리빌딩’ 직접 지휘

엔씨의 변화는 김택진 대표가 회사 안으로 더 깊게 관여하며 구조를 재정비하는 흐름으로 나타난다. 엔씨는 2024년 창사 이후 처음으로 김택진·박병무 공동대표 체제로 전환했다. 당시 회사는 김택진 대표가 게임 경쟁력 강화와 글로벌 사업 협력에 집중하고, 박병무 공동대표가 경영 내실화와 시스템 구축, 투자와 M&A를 맡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역할은 나뉘었지만 전략 방향 설정에서는 김 대표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흐름도 같은 맥락이다. 엔씨는 3월 주주총회에서 사명을 ‘엔씨소프트’에서 ‘엔씨(NC)’로 변경했다. 박병무 공동대표는 주총에서 레거시 IP 가치 극대화, 글로벌 신규 IP 확보, 모바일 캐주얼 확장을 3대 핵심 전략으로 제시했고, 김택진 대표는 이후 사내 메시지에서 ‘NC’를 ‘Next & Creative’로 설명하며 방향성을 재정의했다. 브랜드 변화와 전략 메시지가 동시에 제시된 점에서 창업자 리더십이 반영된 사례로 해석된다.

김 대표는 공동대표 체제에서도 게임 개발과 창작, 글로벌 전략 방향에 집중하고 있다. 김택진 대표는 창업주이자 대표이사로서 최고창의력책임자(CCO) 역할을 함께 수행하며 신작 개발과 콘텐츠 경쟁력 강화에 관여하고 있다. 회사 역시 김 대표가 신규 게임 개발과 글로벌 확장, AI 기반 제작 역량 강화 등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창업자가 콘텐츠와 전략 방향을 맡고, 전문경영인이 실행을 담당하는 구조다.

지배구조 역시 김 대표 중심이다. 금융감독원 공시 기준 김 대표와 특수관계인 지분은 약 12%대 초반으로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주요 주주로는 사우디 국부펀드(PIF) 계열 투자사(약 9%대), 넷마블(약 9%대), 국민연금(약 8%대) 등이 있다. 외부 자본 비중이 확대됐지만 단일 최대주주로서 창업자 지위는 유지되는 구조다.

사내 역할 분담도 명확하다. 박 대표는 법률·투자·통신업 경력을 기반으로 경영 효율화와 투자 실행을 담당하고 있다. 회사는 박 대표에게 데이터 기반 경영 시스템 구축, 글로벌 사업 기반 강화, IP 확보 및 신성장 투자 역할을 맡겼다. 김 대표가 창작과 방향을 맡고, 박 대표가 조직과 투자 실행을 담당하는 구조다.

최근 김 대표의 행보를 두고 업계에서는 내부 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창업자라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엔씨의 변화는 외부 확장보다 내부 체질 개선과 포트폴리오 재편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리니지 이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창업자 역할이 강화되는 흐름으로 해석된다.

엔씨 주주 현황. 2025년 사업보고서 기준. /박성규 기자

◇ 장병규, 회사 밖에서 판 짠다…지배력 유지 속 ‘이사회형 설계자’

크래프톤은 이사회 중심의 거버넌스 구조를 기반으로 장병규 의장이 전략 방향을 맡고, 김창한 대표가 경영을 총괄하는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사회를 이끄는 장 의장은 중장기 전략과 투자 방향을 조율하고, 김 대표가 CEO로서 사업 운영과 실행을 담당하는 구조다. 전문경영인이 경영 전면에 서고, 이사회가 이를 뒷받침하는 형태다.

금융감독원 공시 기준 장 의장과 특수관계인 지분은 약 22%대 수준으로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텐센트 계열인(IMAGE FRAME INVESTMENT(HK) LIMITED)는 약 14%대 지분으로 2대 주주에 올라 있다. 지분 격차는 존재하지만, 최근 상법 개정에 따른 의결권 제한 이슈 등으로 지배구조 변수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크래프톤은 이사회 규모 상한을 명시하는 등 지배구조 안정성을 강화하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이는 향후 이사회 구성 변화 가능성을 제한하고 경영권 안정성을 유지하려는 조치로 해석된다.

최근 행보도 이러한 역할과 맞닿아 있다. 장 의장은 약 100억원 규모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밝히며 시장에 신호를 보냈다. 회사 측은 이를 중장기 전략과 성장 방향에 대한 신뢰를 반영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직접 경영에 나서기보다 이사회 차원의 메시지를 통해 방향성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크래프톤의 전략 역시 이 구조와 연결된다. 회사는 ‘배틀그라운드’ 이후 단일 IP 의존도를 낮추고 멀티 프랜차이즈 체제로 전환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를 위해 AI, 퍼블리싱, 외부 스튜디오 투자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방향 설정이 이사회 중심에서 이뤄지는 구조로 보고 있다.

장 의장의 경영 스타일은 창업 초기부터 ‘사업 설계자’에 가까웠다. 네오위즈 공동창업, 검색엔진 ‘첫눈’, 투자사 본엔젤스, 블루홀(현 크래프톤) 창업으로 이어진 이력은 새로운 사업 구조를 설계하는 데 강점을 보여준다. 현재도 크래프톤 내부 운영보다는 투자, 글로벌 확장, 신사업 방향 설정에 무게를 두고 있다.

대외 네트워크도 중요한 축이다. 크래프톤은 네이버, 미래에셋 등과 투자 협력에 참여했고, 인도 시장을 중심으로 현지 산업 및 정부와의 접점을 확대해왔다. 크래프톤이 게임을 넘어 콘텐츠·기술·지역 투자로 확장하는 흐름은 이러한 외부 연결망과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전략을 보면 방향이 더욱 분명해진다. 크래프톤은 ADK그룹 인수를 계기로 애니메이션 IP 확장 가능성을 열었고, 인도를 핵심 성장 거점으로 삼아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게임 개발 중심에서 콘텐츠와 투자 영역으로 외연을 넓히는 흐름이다.

크래프톤 주주 현황. 2025년 사업보고서 기준. /박성규 기자

◇ 같은 창업자, 다른 방식

김택진 대표와 장병규 의장은 모두 창업자지만 회사에 남는 방식은 다르다. 김 대표는 공동대표 체제와 조직 개편, 브랜드 재정비를 통해 엔씨 내부를 재설계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반면 장 의장은 CEO를 전면에 세운 채 투자와 네트워크를 통해 크래프톤의 외연을 확장하는 데 역할을 두고 있다.

이 차이는 게임업계 세대교체의 현실을 보여준다. 창업자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더 이상 같은 방식으로 남아 있지 않는 다는 것이다. 내부를 직접 손보는 창업자가 있는가 하면, 이사회와 자본, 네트워크를 통해 회사를 움직이는 창업자도 있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게임 산업은 IP와 투자 판단이 핵심이라 창업자의 역할이 완전히 사라지기 어렵다”며 “세대교체 이후에도 오너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회사 방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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