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같이 놀자①] 분리수거하는 날, 박스로 기차 만들어 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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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 역시 아이들의 중요한 권리라는 것을 아시나요? 잘 먹고, 잘 크고, 공부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노는 것도 절대 소홀해선 안 됩니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데요.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들이 더 잘 놀 수 있게 할까 늘 고민하는 삼남매 아빠의 고군분투를 담아봅니다. [편집자주]

박스로 만든 기차를 타고 놀이터로 향하는 아이들. / 권정두 기자
박스로 만든 기차를 타고 놀이터로 향하는 아이들. / 권정두 기자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포근하지만 공기는 탁한 일요일. 모처럼 온 가족 다 같이 늦잠이나 자면 좋으련만, 아이들은 주말이라고 신이나 일찍 일어났다. 별달리 생각해둔 일정도 없는데 어쩌나 고민이 시작된다. 그런데 일단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오늘은 분리수거 날이다. 

어김없이 버릴 게 많다. 특히 박스는 왜 이렇게 많은지. 온라인 쇼핑이 편하긴 한데 박스가 너무 많이 생긴다. 그런데 문득 좋은 생각이 났다. 오늘은 이 박스로 애들이랑 무언가 해볼까? 너무 어렵지 않고 별다른 재료 없이 간편하게, 또 재밌게 금방 만들어 볼만한 게 있을까? 자동차, 집, 배, 이것저것 떠올려봤다. 기차가 좋겠다. 박스 하나에 한 명씩 들어가게 하고 연결해서 동네 한 바퀴 ‘칙칙폭폭’ 해보자.

“오늘은 뭐해?”, “어디 갈 거야?”, “키즈카페 가고 싶다” 슬슬 조르기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일단 분리수거부터 하러 가자고 했다. 밖으로 나간다니 금세 신이 난다. 후다닥 분리수거를 마친 뒤 집으로 들어가기 아쉬워하는 아이들에게 “우리 박스로 기차 만들기 할래?” 하고 제안했다. 순간 세 아이의 눈이 반짝이더니 새로운 ‘미션’에 큰 관심을 보인다. 방금 전까지 들어가기 싫다며 사방팔방 돌아다니던 아이들이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일요일은 분리수거하는 날이다. 이제 제법 큰 아이들이 많은 도움을 준다. / 권정두 기자
일요일은 분리수거하는 날이다. 이제 제법 큰 아이들이 많은 도움을 준다. / 권정두 기자

기본적인 계획은 지극히 단순하다. 박스는 아래 위가 모두 열리게 하고, 아래쪽 덮개 부분은 잘라낸다. 그리고 양쪽에 구멍을 내 손잡이를 만들고, 각자 꾸미고 싶은 대로 꾸민 뒤 3개를 연결한다. 자기 박스에 들어가 줄이 끊어지지 않게 속도를 맞춰 졸졸졸 걸어가면 된다.

첫 번째 박스에서 잘라낼 부분들을 잘라내는 동안에도 아이들은 이걸 해야 하고 저걸 해야 한다며 흥분해있다. 이어 첫 번째 박스의 손잡이 구멍을 만들려고 하는데, 논쟁이 붙었다. 원래는 작은 손잡이 구멍을 내서, 박스 바깥으로 팔을 빼 붙잡을 수 있게 하려고 했는데, 지켜보던 둘째가 다른 의견을 낸다. 아예 팔을 끼울 수 있게 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이다. 기차를 하나씩 입는 것처럼 말이다. 좋은 아이디어다.

그렇게 구멍을 조금 더 크게 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박스를 가로로 길게 두고 양쪽에 구멍을 냈더니 아이들의 몸집이 작아 공간이 빈다. 둘째가 말한 대로 기차를 입은 것처럼 딱 껴지지 않는다. 다행히 둘째는 괜찮단다. 어쨌든 다음 박스부터는 세로로 길게 해서 구멍을 냈다. 크기가 딱이었다. 아직 어린 막내는 좀 더 작은 박스로 만들었다.

아이들과 함께 박스의 어디를 자르고 어디를 붙일 지, 또 어디에 구멍을 낼지 토론하며 기차를 만들어보고 있다. / 권정두 기자
아이들과 함께 박스의 어디를 자르고 어디를 붙일 지, 또 어디에 구멍을 낼지 토론하며 기차를 만들어보고 있다. / 권정두 기자

그동안 기차를 타봤었던 이야기도 하고, 다음엔 기차 타고 어디 가보자는 이야기도 하며 박스를 3개나 작업하다보니 조금 시간이 흘렀다. 처음엔 반짝반짝 흥분했던 아이들이 살짝 지루해진 모양이다. 아이들답다. 기껏해야 15분 정도 된 거 같은데 언제 완성해서 나가 노냐고, 너무 오래 걸린다고 살짝 투정을 부린다. “우리는 가족이 많아서 그렇지. 세 개나 만들어야 하잖아”라며 달래자 “그래서 더 좋아. 더 많이 만들어서 재밌잖아”라고 누군가 말한다. 그러자 투정을 부리던 아이도 “맞네”하며 멋쩍은 듯 웃었다. 한숨 돌렸다.

아빠가 해줘야 할 기본 작업은 끝났다. 이제는 간단히 꾸며보기다. 좀 더 많은 재료로 제대로 꾸며볼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시간도 더 많이 걸리고 일도 커질 것 같다. 잘못하면 제대로 완성도 못하고 아우성에 휩싸일 수 있다. 오늘은 가급적 간단히, 빠르게 완성하는 쪽으로 해보자.

각자 박스 앞부분은 앞으로 접어 붙여 기차 이름이나 번호를 쓰기로 했다. 기차 이름은 뭐로 할까. 이런 저런 아이디어들이 나왔고, GTX로 결정됐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가 아니고, ‘권씨네’ 기차라 GTX다.

각자 기차 이름과 번호를 쓰고, 간단히 꾸며보기도 한다. 구멍을 내고 남은 박스 조각으로는 도넛 가게 놀이가 시작됐다. / 권정두 기자
각자 기차 이름과 번호를 쓰고, 간단히 꾸며보기도 한다. 구멍을 내고 남은 박스 조각으로는 도넛 가게 놀이가 시작됐다. / 권정두 기자

그리고 또 하나의 논쟁이 불거졌다. 바로 기차 번호다. 첫째가 번호도 정해야 한다고 하자 둘째는 박스에 숫자 5가 쓰여 있는 걸 보고 5번으로 하자고 했다. 첫째는 그게 아니라며 1004로 하고 싶단다. 첫째는 ‘열차번호’를 말하는데 둘째는 ‘객실번호’를 말한 거다. 두세 번 이야기해도 통하지 않자 첫째가 답답해한다. 그래서 차분히 설명해주자고 했다. 

“우리 부산에 KTX타고 갔을 때, 쭉 연결돼서 같이 간 열차도 번호가 있고, 각각 객실 칸도 또 번호가 있는 거야. 123번 열차의 3번 칸, 5번 칸처럼”이라고 차근차근 설명하니 둘째가 이해했다. 유심히 듣던 막내도 “우리는 5번 칸이었잖아”하고 거든다. 열차번호는 누나가 원하는 1004로 하기로 했고, 객실번호는 각각 3번, 4번, 5번으로 하기로 했다.

기차 이름도 쓰고, 열차번호와 객실번호도 썼다. 각자 색칠도 좀 하고 그림도 그리는 등 살짝 꾸며보기도 했다. 이제 무엇으로 어떻게 연결하느냐가 마지막 과제로 남았다.

그때 새로운 놀이가 전개됐다. 팔을 끼우기 위해 동그랗게 잘라낸 박스 조각을 본 첫째가 “이걸로 뭐 할 거 없을까?” 하더니 잠시 조용히 뭔가 사부작사부작 하고 있다. 동그란 박스 조각의 안쪽도 잘라낸 뒤 도넛을 만들었다. 둘째도 관심을 보인다. 도넛모양으로 자른 박스 조각을 색연필로 칠해 시럽과 스프링클을 뿌려준다. 또 다른 장난감을 가져와 오븐이라며 안에 넣고 굽기도 한다. 갑자기 도넛 가게 놀이가 시작됐다.

아이들이 잠시 다른 놀이를 하는 사이 마지막 과제를 풀기 위해 고민을 시작했다. 박스에 구멍을 내서 줄을 끼워 연결할까? 어떤 줄을 써야 할까? 그때 마침 집에 있는 캠핑용품이 떠올랐다. 양쪽 끝에 갈고리가 달린 탄성로프다. 약간씩 늘어나기도 해서 더 안성맞춤일 거 같았다. 적당한 위치에 칼집을 내고 갈고리를 끼웠다. 생각했던 대로 딱이다.

완성된 박스 기차를 타고 놀이터도 가고 근처 공원 산책도 했다. 어른들이 보기엔 별거 아니고 엉뚱하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즐겁다. / 권정두 기자
완성된 박스 기차를 타고 놀이터도 가고 근처 공원 산책도 했다. 어른들이 보기엔 별거 아니고 엉뚱하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즐겁다. / 권정두 기자

도넛 가게 놀이가 따분해질 때쯤 아이들에게 “이제 기차 타러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다시 신이 난 아이들이 서둘러 신발을 신는다. 서로 속도와 방향을 잘 맞춰야 한다는 유의사항을 알려주고 가까운 놀이터로 출발했다. “칙칙폭폭”, “뿌뿌” 하며 나란히 잘 간다. 길에서 마주친 두 어른이 귀엽다며 웃는데, 9살인 첫째는 조금 쑥스러워 하고 둘째와 셋째는 더 크게 기차 소리를 낸다.

놀이터에 도착해 기차를 잘 주차시켜 두고 놀았다. 잠시 후 다시 기차에 몸을 넣고 가까운 공원에서 가볍게 산책도 했다. 재료비도 안 들고 별거 아닌 만들기였는데 아이들은 아주 재밌었나보다. 그날 저녁에도, 다음 날에도 계속 이야기를 하고 다음엔 다른 걸 만들어 보자고도 한다. 잘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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