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김두완 기자 촉법소년 연령 하향을 둘러싼 논쟁은 언제나 ‘몇 살까지 처벌할 것인가’에 머문다. 그러나 23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한 연구자와 현장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연령을 낮추는 것이 해답인지 묻기 전에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문제 자체가 제대로 이해된 것인지부터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논의는 한 문장으로 정리된다. 문제는 나이가 아니라 시스템이다.
◇ 핵심은 ‘나이’가 아냐… 강한 처벌, 오히려 낙인효과
먼저 소년범죄를 둘러싼 인식부터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승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확산된 ‘소년범죄 흉포화’ 담론이 통계 해석의 오류에서 비롯됐다고 짚었다. 촉법소년 범죄 가운데 강력범죄 비율은 3~4% 수준에 불과하고, 절도 등 비교적 경미한 범죄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특히 언론과 정치권이 인용하는 수치는 경찰이 법원으로 송치한 건수인데, 촉법소년은 법적으로 모두 송치 대상이기 때문에 실제 범죄의 심각성을 반영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즉, 숫자는 늘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곧 범죄의 질적 악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연구위원은 논쟁의 핵심 개념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사회에서 ‘촉법소년’과 ‘형사미성년자’가 혼용되면서 “어차피 처벌받지 않는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는 것이다. 형사미성년자는 14세 미만으로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집단을 의미하지만, 촉법소년은 그 가운데 10세 이상 13세 이하로 소년법에 따라 보호처분을 받는 대상이다. 보호처분은 단순한 훈방이 아니라 소년원 송치, 보호관찰, 수강명령 등 자유를 제한하는 강제조치가 포함된다. 그럼에도 두 개념이 뒤섞이면서 “처벌 공백이 있다”는 오해가 확대됐고, 이것이 연령 하향 여론을 자극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회 입법 발의 주된 방향인 엄벌주의의 효과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평가가 이어졌다. 현장과 연구자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것은 처벌 강화가 재범 억제에 큰 효과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강한 처벌은 낙인을 강화하고, 청소년이 스스로를 범죄자로 인식하게 만들어 사회 복귀를 어렵게 만든다는 연구 결과가 제시됐다.
교육복지 현장에서 오랜 기간 청소년을 만나온 실무자 역시 같은 경험을 전했다. “처벌 때문에 바뀌었다는 청소년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발언은 논쟁의 방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처벌은 일시적으로 행동을 멈추게 할 수는 있지만, 근본적인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피해자 보호 문제 역시 단순히 처벌 강화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 강조됐다. 성폭력 피해 지원 현장에서 활동해 온 탁틴내일 이현숙 대표는 형량이 높아질수록 오히려 유죄 입증이 어려워지는 역설적 상황을 설명했다. 형량이 무거울수록 법원이 더 엄격한 증거를 요구하게 되고, 그 결과 무혐의나 불송치로 끝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피해자가 더 큰 상처를 입는 경우도 발생한다는 것이다.
실제 현장에서는 피해자들이 강한 처벌보다 왜곡된 관계의 회복, 일상으로의 복귀, 2차 피해의 차단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처벌이 곧 피해 회복으로 이어진다는 전제 자체가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국제적 흐름도 국내 논의와는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형사책임 연령을 낮추지 말고, 오히려 상향을 검토하라는 권고를 지속적으로 내고 있다. 실제로 덴마크는 연령을 낮췄다가 재범률 증가를 경험한 뒤 다시 상향했고, 스코틀랜드 역시 연령을 올리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정했다. 즉, 연령 하향은 이미 여러 국가에서 한계를 드러낸 정책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여전히 ‘강하게 처벌해야 줄어든다’는 직관적 믿음이 정책 논의의 중심에 서 있다.
◇ 분절된 정부 지원체계… 사각지대 해소 필요
논의를 더 깊게 파고들면, 결국 문제의 핵심은 개인이 아니라 환경이라는 데 도달한다. 연구자들은 청소년 비행의 주요 원인으로 빈곤, 가족 기능 약화, 또래 관계, 학교 부적응 등 복합적 요인을 지목했다. 현장에서 만난 청소년들이 “심심해서 범죄를 했다”고 말하는 사례 역시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관계와 돌봄이 부재한 상태를 반영한다는 해석이다. 덕성여자대학교 김시아 겸임교수는 “청소년이 처벌받는 동안 우리는 그들이 돌아갈 환경을 얼마나 바꾸고 있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처벌을 강화하는 정책은 이 질문을 비켜가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적 원인을 해결할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진보당 손솔 의원 역시 같은 문제의식을 제기했다. 손 의원은 “촉법소년 논쟁이 연령 문제로만 좁혀지면서 정작 필요한 정책 논의는 뒤로 밀리고 있다”며 “아이들을 처벌할 것인가를 묻기 전에, 왜 아이들이 그 지점까지 밀려났는지를 먼저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토론에서는 현재 청소년 지원 체계가 보건복지부, 교육부, 법무부, 여성가족부 등으로 분절돼 있고, 기관 간 정보 공유와 연계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이 반복적으로 지적됐다. 위기 청소년이 발견되는 경로에 따라 지원 내용이 달라지고, 어떤 아이는 중복 지원을 받는 반면 다른 아이는 사각지대에 놓인다. 특히 13세에서 19세 사이 연령대는 공공 사례관리 체계가 사실상 비어 있는 구간으로, 촉법소년 논쟁의 핵심 대상이 되는 연령대와 정확히 겹친다.
현장의 목소리는 더욱 절박하다. “아이를 만나야 하는데 시스템이 아이를 만나지 못한다”는 발언처럼 제도는 존재하지만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피해 청소년조차 갈 곳을 찾지 못하고, 가해 청소년은 복지시설과 보호시설을 오가며 표류한다. 기관들은 “우리 업무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개입을 미루고, 그 사이에서 아이들은 사라진다. 이런 상황에서 연령을 낮추는 정책이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해 현장에서는 회의적인 시선이 지배적이다.
이날 토론이 던진 질문은 단순하다. 우리는 왜 ‘나이’를 바꾸려 하는가. 연령 하향은 가장 빠르고 단순한 대응이지만, 동시에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비껴가는 선택일 수 있다. 재범을 줄이기 위한 해법은 이미 제시돼 있다. △조기 발견 △지역사회 기반 사례관리 △가족 개입 △회복적 사법 △통합 지원 체계 구축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제들은 시간과 비용 그리고 정책적 결단을 요구한다.
그래서일까. 연령 하향 논의는 오히려 역설적으로 들린다.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현실을 바꾸기보다 책임의 방향을 더 어린 연령으로 돌리는 선택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처벌하는 기준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지지하고 변화시킬 구조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촉법소년 논쟁의 본질은 결국 여기에 있다. 아이를 처벌할 것인가, 아니면 아이를 바꿀 것인가. 그리고 그 선택의 기준은 나이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어떤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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