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준규의 ESG 모델링 27] 수요 예측의 혁신上 쉬인(Shein)의 데이터 기반 온디맨드 생산 모델

마이데일리

[ESG 경영컨설턴트 심준규]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10%를 패션 산업이 차지한다. 항공과 해운산업을 합친 것보다 많은 수치다. 연간 생산되는 의류는 약 1000억 벌인데, 그중 약 30%는 정가에 팔리지 못하고 대폭 할인되거나 소각·매립된다.

이런 비효율적 생산 구조의 핵심 원인은 ‘선생산 후판매’ 방식이다. 전통적인 패션 기업은 수요가 확인되기 6~9개월 전에 생산량을 결정한다. 예측이 빗나가면 재고가 쌓이고, 대폭 할인이나 폐기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 재고는 단순한 비용 손실이 아니라 만드는 데 들어간 에너지·물·원자재까지 함께 낭비되는 환경 부채라 할 수 있다.

자라(Zara)는 이 문제를 구조적으로 깨는 데 앞장섰다. 스페인 본사 인근 공장에서 생산하는 수직 통합 방식으로 기획부터 판매까지 2~3주로 단축하면서 패스트패션의 기준을 세웠다.

H&M의 리드타임이 6주, 기존 패션 업계 평균이 6개월이었던 시절, 자라가 2주를 실현한 건 당시로서는 혁명이었다. 지금도 매주 약 230개의 신제품을 출시하며 업계 최상위 속도를 유지하고, 최소 발주 단위는 2000벌 기준 30일 납기다.

최근 주목을 끌고 있는 쉬인(Shiein)은 자라보다도 빠른 리드타임을 보여준다. 협력 공장에 100벌만 발주하고 5~7일 안에 납품받는다. 자라가 ‘빠르다’고 인정받던 기준을 절반 이하로 줄인 셈이다.

속도보다 더 본질적인 차이는 생산 결정의 순서에 있다. 자라와 H&M도 트렌드를 빠르게 반영하지만 여전히 예측 기반으로 먼저 생산하고 판매하는 흐름인 반면, 쉬인은 소비자 반응이 확인된 뒤에만 생산을 확대한다.

이를 LATR(Large-scale Automated Test and Reorder, 대규모 자동화 테스트 및 재주문 시스템)이라 부른다. 신제품 하나당 100~200벌만 먼저 만들어 플랫폼에 올리고, 클릭률·장바구니 담기·구매 전환율 등 수십 가지 행동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한다. 반응이 좋은 제품은 며칠 안에 증산에 들어가고, 반응이 없는 제품은 조용히 목록에서 사라진다.

이 사이클이 하루 수천 건씩 동시에 돌아간다. 쉬인은 매일 평균 6000개 이상 신제품을 등록하는데, 자라의 연간 신제품 수 3만5000개를 불과 며칠 만에 달성하는 규모다.

플랫폼에 올라온 상품의 70%는 출시 후 3개월 이내에 판매가 결정되거나 중단된다. 생산 결정이 예측이 아니라 실제 수요 데이터에 근거하기 때문에 가능한 속도다.

이 구조가 작동하려면 방대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처리하는 기반이 먼저 갖춰져야 한다. 틱톡·인스타그램·핀터레스트 같은 소셜 미디어와 구글 검색 트렌드를 상시 스크래핑(Scraping, 인터넷에서 데이터를 자동으로 수집하는 기술)해 특정 스타일이나 색상에 대한 언급량, 해시태그 증가 속도, 유사 제품의 판매 추이까지 분석한다.

예를 들어 소셜 미디어에서 특정 트렌드가 급부상하면 48시간 안에 해당 스타일 제품을 디자인하고 샘플 생산까지 연결한다. 2024년 초 ‘발레 코어(Ballet Core)룩’이 틱톡에서 바이럴되자 이틀 만에 관련 제품이 플랫폼에 등장했다. 전통 패션 기업이 트렌드를 확인하고 기획·발주·생산하는 데 수개월이 걸리는 것과 완전히 다른 시간 구조다.

데이터 수집은 소비자 행동에만 그치지 않는다. 협력 공장에는 쉬인이 자체 개발한 MES(Manufacturing Execution System, 생산 실행 시스템)이 설치되는데, 재료 조달부터 생산 진행 상황, 재고 잔량, 품질 검수 결과까지 모든 정보가 실시간으로 쉬인 본사 시스템과 연동된다. 공장 입장에서는 무엇을 얼마나 만들지 별도로 판단할 필요가 없다. 예측의 불확실성을 데이터 공유로 대체한 구조다.

쉬인은 협력사 관계도 치밀하게 설계했다. 생산량, 납기 준수율, 불량률, 신제품 성공률 등을 기준으로 공급사를 5단계로 등급화하고, 하위 30%는 정기적으로 교체한다. 반면 상위 협력사에는 패턴 제작 비용을 직접 부담하거나 공장 설비 구매 자금을 지원하며, 대금 지급도 2주 또는 1개월 단위로 빠르게 정산한다. 협력사 입장에서는 수요 예측 부담을 덜고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확보할 수 있어, 데이터 공유와 빠른 납기에 협조할 동기가 생긴다.

피터 페르노-데이 쉬인 글로벌전략 총괄은 “머신러닝으로 수요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5400개 모든 협력사가 소비자 선호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받아 생산에 반영한다”고 공개 석상에서 밝혔다.

그 결과 재고 비율은 한 자릿수로, 패션 업계 평균인 30~50%와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재고 폐기율도 2% 미만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업계 평균이 17~20%임을 감안하면 구조적으로 다른 설계다.

수요예측이 적용된 사업 성과도 뚜렷해졌다. 2023년 매출은 325억 달러(46조원)로 전년 대비 40% 성장했고, 같은 해 앱 다운로드 횟수는 2억 3800만 회로 전 세계 패션 앱 중 1위를 기록했다. 이 성장의 기술적 기반이 바로 데이터 수집-분석-생산 연동 사이클이다. 재고 리스크를 구조적으로 낮추면서 상품 다양성을 최대화하는 방식이 동시에 작동한 결과다.

물론 매출만을 내세우기에는 쉬인에도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2023년 탄소 배출량은 1670만 톤으로 석탄 발전소 4기가 1년 동안 내뿜는 양과 맞먹고, 항공 배송 의존도가 높아 단위당 탄소 발자국이 크다. 협력사 노동 환경 점수도 71%가 최하위 등급을 받았다. 데이터 기반 생산 효율이 아무리 뛰어나도 사회(S)와 거버넌스(G) 측면의 과제는 별개다.

그러나 팔릴지 모르는 상품을 대량 생산하고 팔리지 않으면 소각하는 구조와, 팔린다는 신호를 먼저 확인한 뒤 생산을 확대하는 구조 사이의 차이는 단순한 효율 문제가 아니다. 전자는 환경 비용을 외부화하고, 후자는 내부화한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보고서에 폐기물 감소 목표를 적어 넣는 것과, 애초에 팔릴 제품만 만드는 구조를 설계하는 것은 전혀 다른 접근이다. 데이터 수집과 분석 역량이 생산 의사결정과 직접 연결될 때, ESG는 캠페인이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 그 자체가 된다.

|심준규. 인하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 더솔루션컴퍼니비 대표. <녹색금융으로 읽는 ESG 이야기>, <그린북>, <실천으로 완성하는 ESG 전략> 저자. 기업의 ESG 역량 강화 프로그램 개발과 ESG경영컨설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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