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필 '에세이'] H에게- 노년의 친구

시사위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프랑스의 문학평론가이면서 기호학자인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1915~1980)는 1980년에 펴낸 그의 마지막 책 『밝은 방(Camera Lucida)』에서 '푼크툼(punctum)'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네. 라틴어 ‘punctum’은 “찔린 자국이고, 작은 구멍이며, 조그만 얼룩이고, 작게 베인 상처”를 뜻하지(김웅권 옮김, 42쪽). 그래서 푼크툼이란 사진 속의 어떤 요소가 사진을 보는 사람(구경꾼)의 기억과 감정을 강하게 건드리는 것을 말해. 바르트는 『밝은 방』에서 어머니의 어린 시절 사진인 <온실사진>으로 푼크툼을 설명하고 있지. 오늘은 컴퓨터 저장 파일에서 꺼내 볼 때마다 내 가슴을 뾰족한 송곳으로 찌르는 것 같은 아픔을 주는 두 장의 사진 이야기를 하고, 우리 같은 노인에게도 왜 친구는 여전히 소중한 존재인지를 말하려고 하네.

사진을 찍으러 다니다 보면 많은 노인을 만나게 되네. 대부분 아직 건강한 사람들이지. 하지만 몸이 좋지 않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노인들도 가끔 만나.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대수명은 남녀 모두 80세가 넘은 지 오래되었지만, 건강수명은 아직도 70세 정도밖에 되지 않아. 노인들 대다수가 10년 이상 병을 갖고 살다가 간다는 뜻이야. 그러니 아픈 노인들이 자주 눈에 띌 수밖에 없는 거지.

첫 번째 사진은 작년 가을에 안산 대부도에 있는 바다향기수목원에서 봤던 매우 감동적인 광경을 찍은 것이지. 두 남자 노인이 언덕을 오르고 있는데, 한 분은 지팡이를 짚고서도 제대로 걷지 못했어. 앞에 가는 노인은 뒤에 따라오는 친구의 속도에 맞추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더군. 뒤에 가는 친구의 지팡이는 수목원에서 주운 나무막대기였어. 수목원에 가을 꽃구경을 왔는데 걷기 힘드니 아무거나 주어서 임시로 사용할 수밖에. 그런 지팡이를 보자 갑자기 마음이 찡해지더군. 나와 비슷한 또래의 노인들이고, 절뚝거리며 언덕을 오르는 노인이 나랑 비슷한 처지였기 때문에 더 그랬는지 몰라. 나도 그때 척추협착증으로 인해 제대로 걸을 수 없어서 거북이처럼 아주 천천히 언덕을 오르고 있었거든. 두 노년의 친구가 이야기를 나누며 달팽이 걸음으로 언덕길을 올라가는 다정한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서 중얼거렸지. 인생 말년에는 서로 기댈 수 있는 가까운 친구가 하나쯤 있어야 한다고.

다른 사진은 2023년 봄에 경남 고성에서 찍은 거야. 두 발로 걷기 힘들어 유모차를 밀고 가는 노인과 그 옆에서 아주 천천히 걷고 있는 친구가 있는 사진이지. 서쪽 산 너머로 해가 지는 석양에 오순도순 이야기하면서 걸어가는 두 노인의 모습이 아름다워서 가까이 다가가 물었네. 두 분이 어떤 사이냐고. 어렸을 때부터 한마을에서 자란 불알친구라는 거야. 친구가 아파서 제대로 걷지 못해 저녁마다 함께 산책한다는 말도 덧붙이더군. 친구가 집에만 있으면 답답할 것 같아서 날마다 저녁밥 먹기 전에 함께 들판을 한 바퀴 돈다는 거야. 그러면 밥맛도 좋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노인의 얼굴이 매우 행복해 보였어.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하는 봄날 오후, 보리밭 사이로 길게 뻗어있는 농로를 따라 동네 쪽으로 걸어가는 두 분을 보면서 한참 동안 서 있으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더군. 도시에서는 보기 드문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이었기 때문이지.

마음은 아프지만 따뜻한 우정으로 가득 찬 두 장의 아름다운 사진을 보면서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의 <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에 나오는 ‘不室而妻, 匪氣之弟(불실이처 비기지제)’라는 말을 떠올렸네. 원래는 선귤자(蟬橘子) 이덕무(李德懋, 1741~1793)가 한 말이야. 벗이란 “함께 살지 않는 아내요, 피를 나누지 않은 형제”라는 뜻이지. 여기에다가 같은 연암 그룹의 일원인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 1750~1805)는 『야숙강산(夜宿薑山)』의 제3수에서 “사람이 하루라도 벗이 없다면 두 팔을 잃은 것과 다름없다(人無一日友, 如手左右失)”라는 말을 덧붙였네. 이덕무와 박제가는 오십 대에 죽었기 때문에 팔과 다리가 말을 듣지 않기 시작하는 칠십 대 노인의 사정은 잘 알지 못했을 걸세. 하지만 그들이 말한 친구 사이는 우리 같은 70대 노인들에게 더 잘 들어맞을 것 같네.

작년에 허리 병으로 제대로 걸을 수 없었을 때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네. 집에서 나와 좀 멀리 달아나고 싶었거든. 야생화를 보러 산에도 가고, 동해 바닷가에 가서 답답한 마음을 파도에 하소연하고도 싶었어. 그래서 조금 좋아지자마자 대부도에 있는 수목원에도 가고 동해 바닷가에도 갔지. 그러고 났더니 몇 개월 동안 막혔던 숨통이 확 트여 살 것 같더라고.

아프면서 절실하게 반성하고, 혼자 결심한 것들이 많네. 친구가 혼자 자유롭게 집밖에 나갈 수 없을 때, 위에서 말한 두 사진 속의 친구들처럼 함께 걷고, 함께 수목원이나 바닷가를 산책할 수 있는 벗 역할을 내가 먼저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한 것도 그중 하나야. 그러려면 가까운 곳에서 살아야겠지. 운전을 할 수 있으면 더 좋고. 너무 멀리서 떨어져 있으면 마음은 있어도 실천하기 쉽지 않거든. 내 의지대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모르겠지만, 사랑하는 친구들의 “함께 살지 않는 아내요, 피를 나누지 않은 형제”로 살다가 가고 싶네. 진심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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