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우주 환경에서 의약품을 생산하는 기술이 현실적인 산업 영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영국 정부가 우주에서 제조된 의약품을 환자 치료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제 경로를 제시하면서 차세대 바이오의약품 산업의 새로운 전환점이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궤도 내 제조' 제도화…우주 바이오 산업 본격화 신호탄
12일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지난 5일 우주 기반 의약품 제조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규제 체계를 세계 최초로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번 정책은 연구 단계에 머물러 있던 우주 의약품 제조 기술이 실제 치료 영역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다.

해당 발표는 영국 런던 엑셀(ExCeL London)에서 열린 유럽 최대 우주 산업 행사 중 하나인 '스페이스-컴 엑스포(Space-Comm Expo)' 기간에 공개됐다.
영국 정부는 이번 정책을 통해 '궤도 내 제조(in-orbit manufacturing)' 산업을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우주에서 생산된 의약품이 환자 치료까지 이어질 수 있는 명확한 규제 절차를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안전성과 품질 관리 기준, 승인 절차 등 규제 틀을 체계적으로 정비할 계획이다.
우주가 제약·바이오 업계의 새로운 연구 공간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미세중력(microgravity)' 환경 때문이다. 지상에서는 중력의 영향으로 대류나 침전 현상이 발생해 정밀한 구조 분석에 한계가 있지만, 우주에서는 이러한 물리적 영향이 크게 줄어들어 단백질 결정 구조를 보다 정밀하게 확보할 수 있다.
이같은 특성은 단클론항체, 백신, 인슐린 등 단백질 기반 바이오의약품 연구와 제조에 특히 유리한 환경을 제공한다. 미세중력 상태에서는 약물의 결정화 구조와 안정성, 용해도, 순도 등이 개선될 가능성이 있어 보다 효율적인 약물 전달이 가능하며 제조 과정의 위험성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기술이 상용화될 경우 암이나 희귀질환 치료제 등 정밀의학 분야에서 의미 있는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또한 의약품의 안정성을 높여 원격지나 재난 상황에서도 안정적인 의약품 공급 체계를 구축하는 데 활용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우주의약 산업 성장 기대…글로벌 제약 생산 방식 변화 예고
영국 정부는 우주 의약품 산업 육성을 위해 주요 규제기관 간 협력 체계도 구축했다. 영국 우주청(UK Space Agency)을 중심으로 의약품·의료제품 규제기관인 MHRA, 과학혁신기술부(DSIT) 산하 규제혁신국(RIO), 민간항공청(CAA)이 참여하는 협력 구조다.
이들은 규제 가이드라인 마련과 사례 연구, 규제 샌드박스 운영, 공급망 참여 확대 등을 추진해 기업들이 보다 명확한 규제 환경 속에서 연구개발을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기술 개발을 위한 투자도 병행되고 있다. 영국 우주청은 우주 환경에서 바이오의약품 결정화를 활용한 암 치료 기술을 연구하는 스타트업 ‘바이오오빗(BioOrbit)’을 포함해 3개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했다. 이 가운데 바이오오빗의 궤도 내 의약품 제조 기술 연구에는 약 25만 파운드 규모의 초기 개발 자금이 투입됐다.
현재 대부분의 의약품 규제 체계는 지상 생산을 전제로 설계돼 있다. 그러나 우주에서 의약품을 생산하는 기술이 등장하면서 기존 규제가 새로운 생산 환경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이에 영국 정부는 우주에서 생산된 의약품도 지상 의약품과 동일한 수준의 안전성과 품질 기준을 충족하도록 규제 체계를 정비할 방침이다. 특히 MHRA가 도입한 분산형·모듈형 제조 규제 프레임워크를 기반으로 새로운 생산 방식에도 적용 가능한 규제를 마련할 계획이다.
우주 의약품 연구는 이미 일부 기업과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국제우주정거장(ISS)을 활용한 단백질 결정 성장 실험과 바이오 제조 연구가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도 관련 연구가 점차 확대되는 분위기다. 우주의약 기업 스페이스린텍은 자체 개발한 우주 연구 모듈 'BEE-PC1'을 활용해 ISS에서 자동 단백질 결정화 실험을 수행하고 모듈을 지상으로 회수했다고 밝혔다. 한국 기업이 ISS 미세중력 환경에서 단백질 결정을 확보하고 실험 운용까지 완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제약기업 보령 역시 우주 환경을 활용한 신약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보령은 미세중력을 활용해 암과 노화 관련 신약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2022년 미국 우주 기업 액시엄 스페이스(Axiom Space)에 투자하고 합작 법인을 설립해 우주 헬스케어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밖에도 동아에스티 자회사 앱티스는 우주에서 생산된 항체를 활용한 항체약물접합체(ADC) 개발 연구에 참여하고 있으며, 입셀 역시 인체 유래 유도만능줄기세포(iPSC)를 기반으로 조혈모세포와 인공혈액을 만드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우주 기반 바이오 연구가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성장 잠재력은 매우 크다고 평가한다. 미세중력 환경에서 확보되는 정밀한 단백질 구조 데이터가 신약 개발의 효율을 높일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의약품 생산 방식 자체를 변화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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