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업 현장에서 의미 있는 변화가 감지된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하는 수준이 단순히 업무 도구의 문제를 넘어 인사평가와 성과 지표에 실제로 반영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직원들의 AI 도구 사용 현황을 추적하거나 평가 항목에 "AI 활용도"를 포함시키는 방안을 도입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아마존이 직원들의 AI 도구 사용 빈도와 내용을 내부 시스템으로 파악해 승진 시 참고 자료로 활용하거나, 메타가 AI로 생성한 코드 양과 생산성 개선 효과를 평가해 성과급에 반영하는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한국 기업에서도 이와 유사한 흐름이 감지된다. 한글과컴퓨터(한컴)는 전사 핵심 성과지표(KPI)의 약 30~50%를 AI 기반 업무 혁신 성과로 할당했다. 이는 단순 도구 사용 여부가 아니라 AI를 통해 무엇을 만들어냈는지를 수치로 증명하도록 요구하는 변화다.
AI 도구의 보급 속도는 빠르다. 국내 기업 의사결정권자 10명 중 9명이 업무에 AI를 활용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상위 500대 기업 중 약 87%는 이미 인사 업무 전반에 AI를 활용하고 있으며, 5곳 중 1곳은 AI 기반 채용 도구를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AI가 더 이상 단순한 보조 역할을 넘어서 업무 혁신의 엔진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일부 기업에서는 에이전틱 AI처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고도화된 AI 에이전트를 업무에 배치해 보고서 작성, 데이터 분석, 반복 업무 자동화까지 수행하면서 생산성을 크게 높이고 있다.
이처럼 일터 곳곳에 AI가 스며들면서 인사평가의 기준도 재정의되고 있다. 과거에는 상사와 구성원 간의 정성 평가가 주요했다면, 이제는 데이터로 남는 업무 패턴과 AI 활용 성과가 정량적으로 점수화되는 경향이 강해졌다. 다만 이는 장단점이 모두 존재한다. 데이터 기반 평가는 평가의 일관성과 객관성을 높일 수 있지만, AI 활용을 잘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의 격차를 명확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특히 중장년층 직장인을 중심으로는 이러한 기준 변화가 체감 불균형을 낳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일부 AI 기반 인사 시스템은 '회의 발언량', '응답 속도', '디지털 도구 사용 패턴' 등 즉각적으로 측정 가능한 지표에 가중치를 두는데, 이는 디지털 중심의 업무 방식에 익숙한 젊은 직원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여지가 있다.
AI 활용 능력이 평가 지표로 자리잡는 것은 단순히 기술의 도입을 넘어 조직 문화와 업무 매커니즘 자체를 바꾸고 있다. AI를 활용해 반복적이고 단순한 업무를 자동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창의적 문제 해결과 성과 창출까지 AI 역량의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기업들은 "AI를 도구로만 쓰는 것"을 넘어, 그 활용 수준이 실제 성과로 이어졌는지를 입증하는 구조로 성과 평가를 재편하는 중이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평가의 본질적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평가란 조직과 개인 간의 약속이자, 성과와 보상, 성장 기회를 연결하는 중요한 매커니즘이다. AI 활용도 자체가 장려되어야 할 능력임은 분명하지만, 평가 기준이 AI 사용의 양적 지표만으로 환원되어서는 안 된다. 기술 활용 능력과 더불어 협업, 갈등 조정, 고객 대응과 같은 정성적 성과 요소들도 균형 있게 평가되어야 한다.
또한 AI가 만들어내는 결과물의 질과 윤리적 측면을 함께 고려하는 기준 마련도 필요하다. AI는 숫자로 표현 가능한 성과를 쉽게 드러낼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편향 가능성과 설명 불가능성이 존재한다. 평가 시스템은 이러한 한계를 인지하고 체계적인 설명과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지금 기업들은 묻고 있다. "AI를 얼마나 활용했는가"가 아니라, AI 활용을 통해 무엇을 만들어냈는가를. 그리고 그것이 개인의 성장과 조직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AI는 업무의 효율성을 높여주지만, 그 효율을 어떤 가치로 결합할지는 다시 사람의 몫이다. 평가 시스템의 의미는 그 속에서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이윤선 인력경영학자/원광대 미래인재개발처 초빙교수
Copyright ⓒ 프라임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