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지구 끝단 ‘극지(極地)’의 환경은 이질적이다. 그중에서도 ‘남극’은 문명과 가장 동떨어진 곳이다. 얼음으로 뒤덮인 땅, 건조한 공기, 살을 에는 추위, 독특한 생태계 구성은 남극을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이곳에서 발생하는 과학 현상은 일반적인 환경과는 전혀 다른 결과로 흘러가곤 한다. 때문에 극지는 새로운 과학 연구의 ‘보물창고’라 불리기도 한다.
이 가운데 ‘LG전자’가 극지에서 새로운 ‘보물찾기’에 나선다. ‘시사위크’ 취재 결과, LG전자는 지난해 2월 ‘남극세종과학기지’를 방문, 친환경 세탁소재 개발 연구를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과감한 사업 전략으로 대중들에게 익숙한 LG전자가 극지라는 환경에서 얻은 새로운 성과에 이목이 집중된다.
◇ 세종기지서 3가지 세탁소재 검증… 미세조류 영향 등 테스트
본지 ‘남극특별취재팀’은 2024년 12월 14일부터 1월 10일까지 28일간 남극세종과학기지 현장을 취재했다. 펭귄, 해표, 남극도둑갈매기 등 극지토종생물부터 미생물, 극지자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 과학자들과 동행 취재를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LG전자 연구팀이 다음 달인 2월 신소재 성분 테스트를 위해 방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극지연구소와 LG전자 측에 따르면 LG전자 연구팀이 진행한 연구는 자체 개발한 ‘수용성 유리 소재의 극지환경 적용’이다. 극지 활동 연구자들 피복의 주요 오염원을 분석하고 수용성 유리 및 미네랄 친환경 세제가 실제 극지 미세조류 환경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해수 분석 등을 통해 진행하는 연구다.
12일 LG전자 측에 따르면 지난해 2월 테스트를 진행한 친환경 세탁소재는 △LG퓨로텍(PuroTec) △미네랄워시(Mineral Wash) △마린글라스(Marine Glass)로 총 3가지다. 연구를 진행한 부서는 LG전자 H&A 기능성 소재 사업실이다. 극지연구소의 도학원 책임연구원과 2명의 LG전자 연구원이 테스트를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각 소재는 현재 브랜딩 작업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먼저 ‘LG퓨로텍’은 LG전자가 자체 개발한 항균·항곰팡이 소재다. 병원균 등 미생물의 ‘집락형성(colonization)’을 막는 물질로 알려졌다. LG퓨로텍을 플라스틱이나 페인트, 고무 등 자재를 만들 때 소량 첨가하면 미생물에 의한 악취, 오염을 막을 수 있다. LG전자는 LG퓨로텍이 극지미생물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미네랄워시’는 이름 그대로 미네랄 이온을 활용한 세탁 원료 소재다. 이 소재는 물과 만나면 미네랄 이온을 방출해 세탁 효과를 내는 수용성 유리 파우더다. 알칼리성 미네랄 이온은 기름과 지방, 단백질 등 세탁물의 오염물질을 분해한다. 거품이 발생하지 않고 헹굼 횟수가 줄어드는 장점이 었어 물과 전력 사용량 저감에도 효과적이다. LG전자는 남극 지표종을 대상으로 일반 세제와 미네랄 세제의 영향 평가를 실시했다.
‘마린글라스’는 해양 식생에 영양분을 공급해 생장이 원활하도록 돕는 소재다. 물과 접촉 시 미네랄 이온으로 변하는 유리 소재라는 점은 미네랄워시와 유사하다. 하지만 결정적 차이는 해조류와 염생식물 생장에 맞춰 필요한 미네랄을 일정 양과 속도로 공급한다는 점이다. 즉, 세제를 사용해 세탁하면 환경오염이 발생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해양 식생 성장을 촉진하게 되는 것이다.
LG전자 관계자는 “LG전자는 극지연구소와의 협업을 통해 남극이라는 청정자연에서의 기능성소재 안전성과 효과를 검증했다”며 “이를 통해 갯녹음과 바다 사막화 현상 완화, 블루카본 흡수원 확대를 통한 탄소 저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고립된 남극 환경, 신소재 테스트에 적합… “향후 성과 공유 방안 검토”
그렇다면 LG전자가 ‘남극’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남극의 생태학적 특징이 주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남극은 환경적 영향으로 타 대륙과 철저히 고립된 곳이다. 때문에 전혀 다른 환경 구조를 지녔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나 ‘잔디’ 등 식물은 남극에 살지 않는다.
이에 LG전자 연구팀은 세종기지 인근 남극 환경을 직접 답사하며 실험을 진행했다고 한다. 특히 ‘위버반도’ 인근에서 남극의 해수를 직접 채취했다. 수용성 유리가 미세조류에 미치는 영향을 검증했다. 세종기지 바로 앞에 있는 위버반도는 남극 해수 속 미세조류 관련 연구를 진행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세종기지 인근에서 가장 거대한 빙벽인 ‘마리안 소만(Marian cove)’이 있기 때문이다. 남극의 미세조류들은 빙벽 지형 근처에서 다수 서식한다.
마리안 소만과 같은 빙하 아래 서식하는 미세조류들을 ‘해빙미세조류(Sea Ice algae)’이라고 한다. 이들은 동물플랑크톤과 어류 등 해양 생물의 먹이가 되어 극지 먹이 사슬 유지에 큰 역할을 한다. 즉, LG전자의 유리 소재가 이 미세조류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면 극지 환경 전체에서도 사용 가능한 친환경 소재라는 의미가 된다.
LG전자 연구팀과 극지연구소는 극지 연구자들의 피복 세탁과 관련된 연구도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남극특별보호구역(ASPA) No. 171 나레브스키 포인트’, 일명 ‘펭귄마을’을 방문한 연구자들의 피복이 주요 실험 대상이었다.
펭귄마을에는 ‘젠투펭귄(Gentoo penguin)’ ‘턱끈펭귄(Chinstrap penguin)’이 각각 4,000쌍, 2,500쌍이 서식한다. 또한 ‘남극바다제비’, ‘칼집부리물떼새’, ‘자이언트 패트럴’ 등 남극의 주요 조류종들이 다수 번식한다. 때문에 이곳을 방문하는 연구원들의 피복은 철저한 위생 상태가 유지돼야 한다. 동시에 동물들의 배설물로 쉽게 더러워질 수 있어, LG전자 세탁소재 실험에 알맞다.
LG전자는 채취한 해수·미세조류 샘플과 극지 연구자 피복 등의 테스트를 세종기지 내 연구실에서 진행했다. 기지 내 연구장비 뿐만 아니라 LG전자의 실제 가전제품으로도 테스트 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용된 제품은 LG전자 기능성세제적용 세탁기, 항균소재적용 냉장고, 스타일러 등이다.
LG전자 관계자는 “이번 남극에서 얻은 데이터를 통해 각 소재들의 유효성과 안전성 검증, 특허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며 “향후 학계 및 업계에 신뢰성 있는 성과를 공유하는 방안도 검토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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